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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명리학 - 열두 번째, 육친의 현대적 해석

사주에 대한 질문글 내용을 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다.


 " 제 사주에 편관이 많아요. 상관이 있어요. 원진이 있어요. 그래서 안좋을까요? 힘들지 않을까요?" 


 이러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육친법을 배우면서 편관, 겁재, 상관, 편인, 편재의 부류는 정관, 비겁, 식신, 정인, 정재의 부류에 비해 안좋은 쪽, 잘못된 쪽, 나쁜쪽으로 해석되게 배웠다. 실제로도 한쪽으로 쏠린 생각과 배움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 안맞거나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사회는 다문화, 다가치의 사회이다. 획일화된 다수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특화되고 독특한 사고도 인정을 받는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배웠던 육친을 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고대의 사주 육친이라는 것은 농경사회에 적합한 것이다.


  역학이 만들어 지고 운영된것은 천문학과도 이어지지만 농경사회와도 맞물려 있다고 본다. 명리학은 3천 여년 지속되어온 동양의 학문이며 농경사회와도 연관지을 수 있다. 인류가 정착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농경이 가능했기 때문인데 벼농사가 중심으로 경작을 하다보니 물관리와 날씨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너무 더워도, 너무 비가 안와도 문제였고, 특히 치수가 중요했기 때문에 혼자서 농사를 짓는것은 불가능하거나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집단거주를 통해 협동하여 물을 관리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협업은 당연한 것이였고 홀로 튀는 행동은 눈치를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해진 날씨에 정해진 시기에 협업하여 농사를 지어야 했고 수렵의 생활은 필요가 없었다. 그러기에 이동하며 활동하는 것은 불안한 것이며 정착하여 사는 것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은 상업 유통을 했던 장돌뱅이와 같은 일부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부락이 커지면서 국가를 형성하여 백성의 안위를 보장하기위해 대표성을 지닌 왕한테 충성을 다함으로써 백성의 안위를 보장받았고 국가를 관리 통치하기 위해 도덕과 윤리에 엄격한 잣대위에서 사람의 능력을 구분하려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적합한 요소를 육친에서 찾아본다면 비견, 정관, 정재, 정인의 모습일 것이고 이게 정답이자 바른 생활이였을 것이다. 게다가 사회가 발전하며 규칙과 법규가 생기면서 이를 따라야 했으니 정관적인 것이 바른 것이라고 못밖았을 것이다. 반대로 남과 다른 생각으로 농사를 한다던가 조직의 협동에 누가 되는 생각이나 행동을 했다면 안좋게 받아 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가 편관, 편인, 상관, 편재, 겁재였을 것이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나타내려 한것도 단체, 집단에 입장에서는 저해요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광대이니 잡기를 가진 부류로 계급차이를 둔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치면서 현대의 사회는 농경사회와는 다르다. 산업화로 이동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먼거리도 쉽게 오갈 수 있고, 농사 뿐만 아니라 상공의 다른 일로써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농사할때 처럼 집단을 형성할 필요도 없고 내 능력과 의견이 맞는 사람들의 조합이 더 중요해 졌다. 더욱 다양한 그룹을 만들 필요가 있는 셈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육친은 특별하다.


  보다 근대화로 접어 들면서 생각의 범위도 많이 달라졌다. 많이 움직이는 일을 해도, 집을 떠나 살아도, 남을 도우며 살아도, 나의 재능을 펼치면서도 이원적인 가치관이 다원적인 가치관으로 바뀌어 틀렸다기 보다 다양함이라는 프레임으로 변화하였다. 혼자 일하며 부를 축적하거나 원하는 사업이나 결과를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안좋게 봐왔던 육친 또는 신살이 좋은 방향으로 보여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옛 시대의 육친과 신살의 해석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도화살을 보자. 도화살은 매력을 발산하는 신살인데 예전에는 기생이나 남자 잡아먹는 살이라고 불렀다. 남자에게 도화가 있으면 주색에 빠져 집을 망하게 하고, 여자에게 있으면 음란하여 일신을 망친다고 했다. 하나 요즘은 도화살을 연예인살이라고도 한다. 연예계의 재능이라는 것이 남에게 나를 어필하여 알리고 나의 매력을 통해 사람들을 혹하게 만들어야 그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도화살은 지금에 있어서 최고의 재능의 살이기도 하다. 물론 너무 과하면 화류계로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육친의 성향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학사랑방이라는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일지에 편관이 들어서 안좋다. 겁재가 많아서 나쁘다 등의 말을 많이 하고 걱정스런 질문을 많이 던지고 있고 답변도 안좋다. 나쁘다. 헤어져라 이렇게 툭 던지듯이 말하는 사람이 많다. 


 과연 편관이라는 육친이 현대에와서 안좋은 것일까? 생각해 보자. 편관은 기존의 가치관이나 규칙을 벗어나 나름에 규칙으로 엄격하게 잣대를 드리운다. 그래서 성품이 강직하고 명예심이 뛰어나지만 많으면 나를 치는 살이라고 하여 '칠살' 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성향으로 여성에게 편관이 있으면 정관인 남편을 치거나 잘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옛 어른의 말인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안되니 편관은 그저 좋은 것은 아닐것이다. 여장부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강한 성향때문에 장수, 군인이 되었다면 지금은 의사, 판검사, 경찰에 적합한 사주라고 본다. 그리고 기존의 틀을 깨어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소셜미디어라던가 메신저에서 대화채팅앱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기존 택시업체를 대신한 타다 또는 우버와 같은 것도 비슷한 예이다. 전화기능만 있던 휴대폰에서 다양한 앱기능이 융합되면서 스마트폰을 만든 아이폰도 편관의 작용을 통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1인 사업자도 많은데 기존 조직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이 만들어진것이니 이또한 편관의 발현이라 볼 수 있겠다. 기존의 관점에서 보면 회사(정관)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안좋게 볼 수 있으나 이또한 현대에서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이자 사업활동이다. 편관을 적절하게 사용한 결과로 볼 수 있겠다. 


 또 다른 안좋게 보는 육친 중 하나가 상관일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내고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식신과 상관이라면 식신은 기존의 틀에서 깊게 파고들어 무언가 만들어내는 능력이라면 상관은 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진보적인, 발전적인 생각을 통해 나름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식신이 외톨이 연구가의 스타일이라면 상관은 주변을 다니며 물어보고 호기심을 채우기위에 열심히 다니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만에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상관이 너무 많으면 사회로부터 격리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 튀기 때문에 그래서 인성의 생조가 적절히 섞여 있으면 상관은 창조의 별이라고 불릴만하다. 예를 들어 유투브나 틱톡에서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유투버, 인스타그램의 스타 등등 혼자서 자기만에 스타일로 영상을 만들어 사업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내는 화가, 예술가 등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옛 농경사회에서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필요가 없었다. 화가는 그저 당시의 상황을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기에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보다 보여지는 것을 잘 그리기만하면 되었다. 상관적인 기질은 표출하면 안되는 기질인 셈이다. 그렇기에 상관이 있으면 관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고 여자에게 상관이 많으면 윗사람에게 대들고 안좋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모든것이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뭐가 나쁘다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를 받쳐줄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긍정적으로 발현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표출할 것이다. 


  결국  현대에 와서는 명리학도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관이 좋고 편관은 나쁜것이라는 이분법적으로 볼것이 아니라 정관의 특성과 편관의 특성을 말하고 생조의 분위기가 있는지 없는지로 해석이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뭐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양성에서 뭐가 강력하고 뭐가 약한지, 강한것은 누그러뜨리고 약한것은 보호해주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는게 맞다고 본다. 사주역학을 공부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이 있다.


"나쁜 사주는 없다. 나쁜 운때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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