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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파주까지 통일걷기 2일차

길위에 여행 in DMZ

출발 : 송정 캠핑장

경유지 :  송강저수지 - 건봉사 - 가마골길 - 광산리 - 소똥령마을  

도착 : 소똥령야영장      



 오늘같은 이런 날이 좋아, 비가 오니까...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아니 어제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아침까지 이어졌다. 캠핑의 꽃이라는 우중 숙박을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전에 캠핑가려해도 비오는 날은 피해왔기 때문이다. 젖은 텐트를 어찌할 수 없으니... 그런데 여기서는 그러한 걱정도 없다. 텐트를 내가 정리하지 않고 스탭분들이 수고해주신다고하니 왠지 마음이 편하다. 텐트를 치고 들어오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밤새 내리는 빗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둘쨋 날이다 보니 아직은 몸상태는 괜찮다. 발바닥만 살짝 불편 할 뿐... 비오는 아침 풍경은 좋지만 식사할 만한 비를 피할 장소가 부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수대에 모여 식사를 하고 부리나케 비켜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또한 따스한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듯 밥을 먹고 자리를 비워줬다. 그리고 출발을 위해 짐을 정리했다.



 둘쨋날, 인제 진부령을 향해...


  둘쨋날 코스는 진부령을 향해 가는 길이다. 고성에서 인제로 넘어가려면 미시령이나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데 고성에서 가까운 곳이자 그나마 언덕처럼 보이는 길이 진부령이다. 그 옆에 소똥령이 있는데 이를 따라 갈 것으로 보인다. 출발하여 건봉사로를 따라 오르막길에 올라섰다. 오늘도 역시나 선두는 빠르다. 내 기준이긴 하지만 장기간 걸을때는 스피드보다 자신의 체력 안배가 중요한데 이렇게 빠른걸 보니 다들 체력이 좋은가 보다. 낮은 경사의 도로를 따라 꾸준하게 올라가다 송강저수지 앞에서 첫 휴식을 맞이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모두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식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잘 걷는 분도 계시겠지만 첫 장거리에 도전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리 준비 많이했어도 발바닥에 열이나고 물집생기는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저 이를 견디는 수 밖에...


  15분여 휴식을 취하고 다시 트레킹화를 신으니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뭐 익숙하다. 좀 걷다보면 다시 발바닥이 멀쩡해지리라는 것도 안다. 좀더 가면 건봉사에 다다른다고 한다. 걷는 내내 도로 옆 오른쪽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단순히 낙석을 방지하기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였다. 민간인 통제를 위한 철책선이였다. 이 안쪽으로는 민통선이다. 순간 이렇게 가깝게 민통선이 있었나 싶었다. 차를 타고 갈때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처음 만난 건봉사

  

 진부령은 예전부터 몇 번을 건너다닌적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보아왔던 건봉사 입간판을 그냥 지나쳤어야했다. 혼자였으면 그냥 방문해볼텐데 일행하고 있다보면 그리 쉬운게 아니다. 그렇게 몇 번을 다닌 다음에야 인연이 이어져 건봉사에 다다랐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한다고 하니 그 사이 사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나오는 유명한 불교의 인물들이 여기를 거쳐갔다.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고려말에 나옹이 중건하면서 건봉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승병을 훈련시켰으며 이전에 세조가 방문 후 자신의 소원을 빌 원당사찰로 지정하기도 했다. 지역의 말사를 거느릴 정도로 거대한 사찰이였으나 전란과 산불로 소실되고 1879년 이후에 중건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는 민통선안에 갖혀있던 곳이라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곳이 아니였으나 1988년 이후 건봉사 출입을 위한 일부 구간만 민통선에서 해제되어 일반인 출입이 가능해진 곳이다. 어찌보면 민통선에 가장 근접한 사찰이다.


  중건한 사찰 경내는 넓었고 휴식처같은 느낌이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대웅전과 부속건물이 산속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어 자연과 거슬리지 않는다. 그 속에 살포시 앉아있는 모습이다. 대운전 앞 망루에 앉아 하염없이 비내리는 밖을 보는 것만으로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여유롭게 걸으면 좋을텐데... 휴식시간은 왜 이리 짧은지 이것도 시간의 상대성일지 모르겠다. 휴식을 마치고 나니 점심식사로 중식 볶음밥이 배달되어 도착해 있었다. 하나씩 집어들고 비를 피해 여기저기 앉아서 배고픔을 달랬다. 어느때보다 맛있게 먹은 볶음밥이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출발한다. 오후에 걸어야할 거리는 10km가 좀 넘는듯하다.  출발전에 조원들을 챙기며 인원을 파악했다. 식사를 잘했는지 상태는 어떤지 보며 준비를 서둘렀다.




환상의 2조, 조원과의 인연


 통일걷기에 신청하여 확정된 후 별도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번에 조별로 나누어 운영하게 되는데 조장을 해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난처해했다. 나름 주변을 둘러보며 코스 답사겸 걸으려는 목적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조장이 되면 조원들을 챙겨야하니 자잘하게 일이 많아질것이니 때문이다. 좀 생각할 시간을 요구하고 오후에는 결정을 내렸다. 조장을 하겠다고... 나름에 나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공덕을 쌓자는 이유였다. 그런데 첫날  출발선에 서보니 조장은 다른분이 선택되었다. 다행이다 싶었으나 첫쨋날 오후에 다시 나한테 넘어왔다. 그사이 통일교육원의 서정배부장님과 인사하면서 다시 정리가 되었다. 행정적인 오류였다고 한다. 결국 될것은 되어지는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겸허히 받아들였고 조원들과 사진찍고 이러한 상황을 재미로 만들다보니 한결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맡은 2조는 모두 9명으로 대부분 60대이자, 통일부 산하 공무원 또는 관련단체 임원, 심지어 개성공단에서 재직하던 분까지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 이셨다. 어쩌다 막내가 되어(?) 형님,누님들을 챙기게 되었는데 잘 따라주시니 뭐 힘들게 없었다. 신기한것은 나에대한 인적사항을 그새 파악하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다. 그 짧은 사이에.. 이날 저녁 조원들과 식사하며 재미있게 보내다보니 통일걷기 끝나고 같이 뒤풀이겸 여행가자는 말이 나왔고 지금 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졌다. 여행에서 길위에서 만들어진 인연이다.     


  우리는 선언하다시피 했다. 걷기하는 동안 맨앞에서 선두서기 보다 후미에서 즐기면서 걷자고...



산딸기 따먹으며 놀면서 걷자꾸나

    

  역시나 빨리 걷는것은 나하고 맞지 않는다. 게다가 아침부터 발목이 시끈거리고 아픈증상이 계속이어졌다. 이틀정도 지나면 없어질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결국 한 두시간을 걸은 후에야 풀려서 오후부터는 쌩쌩하게 잘 걸었다. 우리 조에는 나와 박형님 두 명이 이러하였다. 이렇게 통일걷기에서 후미팀(?)이 만들어졌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소똥령가는 길에 임도길을 만났다. 우회하는 도로보다 질러가는 임도길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숲길이였고, 나의 전문적인 길이였다. 설렁설렁 걸어야 하는 이길이 좋기만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나 빨리 앞만 보고 걷는다. 숲내음을 맡으며 산길에 보이는 꽃도 얘기하고 그 사이 산딸기가 줄지어 있는 곳도 보았다. 그냥 참지 못하고 산딸기를 따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선두와 간격이 벌어졌지만 괘의치 않았다. 그래봐야 5분 차이인데...


  광산리 마을에 다다를 때에 앵두나무를 만났다. 새빨갛게 익은 앵두가 너무나 탐스러웠는지 너도나도 달라붙어 연신 먹기에 바빴다. 이렇게 재미있게 걸을 수 있는데 이런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떠다닌다.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니 사람들이 앵두나무에서 벗어나 마저 길을 걸었다. 광산리 마을회관에 다다르니 선두는 각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힘듦이 역역히 보인다. 그러나 우리조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쉬는 내내 담소를 나누며 시끌벅적했다. 이것이 걷는 것인데.. 걷는 여행인데...


  이렇게 짧은 휴식을 마치고 소똥령마을까지 걸었다. 뒤에서 천천히 우리만에 속도로.. 그렇다고 선두와 완전히 벌어져서 가지는 않는다. 사진찍고 풍경보며 걷다보니 숙소에 다다랐다. 비는 그쳤다가 다시 사부작 내리기시작했다. 비가 그쳐야 빨래라도 해서 말릴텐데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답을 찾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소똥령 캠핑장 숙소에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할 방법을 찾아와 그리 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다. 대단한 사람들... 난 예전 생각에 빨래는 미루고 비내리는 식당옆에서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내 옆에 어린 대학생이 과제를 한다고 열심히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학생은 걸으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물어봤던 여학생이였다. 작가인 나에게도 글잘쓰는 법이 뭔가요 물어보기도 했었던... 지금은 과제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2일차 일정이 끝나가고 있다. 하루정도 비오는 날 텐트에서 잘것이라 생각했는데 이틀 연속이라니.. 잠자리가 굽굽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코로나여파로 단체인원을 받을 숙소가 없다보니 찾아낸 방법이란다. 비를 피할 작은 텐트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긴 밤을 그냥 보내야 하는것은 아쉽기만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때는 저녁마다 와인 한 잔 마시는게 즐거움이였는데 여기서는 그런게 없다.  긴긴 밤을 보내는 방법은 일찍 자는 방법뿐이다. 발바닥이 피곤하니 어여 침낭으로 들어가자. 빗소리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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