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터를 지나 감포가는 길
유흥준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내용중 경주 감은사로 답사를 갔을때의 에피소드가 기억났다. 감은사의 정취가 너무나 좋아 여기에 대한 글을 쓰라면, 오로지 "아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탑이여."라고만 쓰고 싶다고 술회하였었다. 책을 읽을때만해도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표현할까 싶었다. 찬란한 신라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폐사지에 덩그라니 남아있는 쌍탑만 있을 뿐인데라는 생각에 그 감흥를 느낄 수 없었다. 경주에 강의가 생겨 경주시내에서 감포로를 따라 동해안으로 가는 길 왼편에 감은사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급 브레이크를 밟고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감은사지터로 진입했다.
덩그라니 남아있는 석탑은 멀리서 보았을때도 크다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거대한 석탑이었다. 규모에 놀라고 그러한 탑이 쌍으로 보기좋게 존재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기울어가는 햇살이 가득히 내려앉은 감은사터는 따스한 온기가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는 구릉아래 명당처럼 보였다. 회랑터를 따라 외곽으로 돌아 정문의 자리가 있었던 곳에서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몇 명의 사람들이 구경하며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다니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석주가 늘어진 모습도 보고 감은사탑의 위용을 보며 여기서 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찍고보니 감은사탑만 보였다. 단순히 석탑이라 볼 수 있지만 이날 만큼은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감은사탑은 바다에서 보이지 않는다.
감은사는 신라의 문무대왕이 죽은 후 산골처인 수중문무대왕능이라 불리우는 바위가 있는 곳에서 뒤쪽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사찰이다. 능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비보사찰의 기능도 가졌지만 문무대왕의 용으로 변화하여 수시로 드나들며 쉬어가게 만든 곳이 감은사였다고 한다. 죽어서도 통일신라를 위해 바삐 움직여야만 했던 그분은 무척이나 나라를 사랑했던 분이였나 보다. 그래서 금당터를 보면 바닥에 석주가 깔려있고 그 사이에 공간이 비어 있다. 일설에는 문무대왕릉앞 까지 동굴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는지 사실여부는 모르겠다. 어쨋던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감은사는 더이상 건물은 소실되어 없어지고 육죽한 석탑만이 남아 있다. 불국사의 석가탑만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 규모에 먼저 놀랄 것이다. 예전 부여의 정림사지 5층탑을 처음 보았을때 규모에 매우 놀랐던 적이 있었다. 감은사지석탑은 3층 이지만 규모는 정림사지탑보다 더 커보였다. 3층의 단순화하면서 비율은 너무나 잘 어울려 뚱뚱해보이거나 그저 덩치큰 석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날렵하고 비율이 잘 맞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하늘이 가리고 내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기에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전체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주변 가을 벌판과 어우러진 석탑은 전혀 크게 보이지 않고 오롯히 비율에 맞게 잘 세운 석탑으로 보였다. 오히려 불국사의 석가탑 규모로 만들어서 세웠었다면 주변 풍경에 눌려 전혀 존재감을 뽐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감은사탑이 있는 금당자리에서 동편을 바라보니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낮은 구릉을 넘어가면 대왕릉이 있을텐데 실제로는 보이지 않았다. 낮은 건물이 늘어서서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방향에 맞춰 건축한 곳이 여기이지 않을까 싶다.
다시 시선을 돌려 마주친 감은사탑은 말없이 큰 위용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자신감은 있으되 자만심은 아니고 아름다우나 단정한 기품을 안고 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절제한 아름다움이 더욱 크게 보이는 순간이다. 찬찬히 석탑을 세울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돌을 손질하여 하나씩 짜맞추듯이 쌓아올리고 비율을 맞추며 다시 조금씩 손보며 다듬었을 탑일것이다. 좀 더 가까이서 보면 돌에 새겨진 문양은 많이 사라졌으나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보드랍게 만들어간 선이 그저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이제서야 그때 책에서 말하고자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난 글이 아닌 사진으로써 감은사탑을 외친다.
"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TIP. 읍천항 주상절리길
감은사지터를 지나 원래의 목적지인 읍천항에 차를 세우고 길위에 인문학강의를 위한 답사를 진행했다. 어디서 어떤 얘기를 할지 구상하고, 어디서 쉬어갈지를 생각해본다. 다행이 날이 춥지 않다고하니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자유롭게 앉게하고 난 강연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실내에서 하면 편할 수 있으나 사람들이 긴장하고 경직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야외에서 길위에서 강의를 만들어 보기위해 여러번 진행을 했었다. 길을 걸으면서 얘기하고 다시 자리잡고 쉬면서 강연을 이어하고.. 사람들의 모습도 편하고 강연하는 사람의 모습도 편하기만 하다. 그래야 진정한 열린마음으로 소통을 할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주상절리길은 동해안에서 보기쉽지 않은 절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검은 돌 푸른바다가 제주의 바다를 연상시킬만큼 바다풍경만 보면 제주였다. 독특한 주상절리를 보는 것도 재미이지만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며 들어보는 것도 마음속 굳어진 선입견을 깨어버릴 방법이다. 듣다보면 빠져드는 파도소리를 뒤로하고 하서항까지 약 2km 정도의 길을 걸으며 쉬며 즐기는 길이다. 여긴 해파랑길의 구간이기도 하지만 그냥 주상절리길이라는 이름이 더욱 와닿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