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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명리학 - 선택과 결정의 순간

사주대로 살아가는 사람 또는 그렇지 못한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주어진 사주명식을 그대로 따라서 살아간다고 하는데 대략 80%가 이에 해당하고 나머지 20% 정도는 사주명식에 따라가기보다 극복하여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가 대부분 우리가 아는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는게 특이하다. 상식적으로는 좋은 사주를 타고나야 위인이되고 높은자리에 올라가는 대통령이던, 대기업 임원이나 오너가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족이나 집안의 운을 타고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위인들은 고난과 역경속에서 이를 이겨내고 고생은 고생대로 겪은 후에야 우리가 아는 위인이 된다. 


  사주가 안좋은대도 이렇게 되는 경우는 좋은 선생을 만났거나 아니면 스스로 깨달음을 받아 실천하고 극복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인이 되려면 많은 시련을 받기때문에 미리 고통과 시련을 주어 감당할 수 있는지 하늘에서 확인하는 절차를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큰 인물들의 공통점은 시련의 정도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평범한 사주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다할 걱정이나 고민없이 술술풀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하는 고민이 없으니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잘 받아들이는 것도 일정부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때가 많다.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때 옆에서 제대로 조언해주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또는 선배가 있다면 이들의 충고나 조언을 듣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러한 부분은 사주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조언해준 사람의 사주에서 온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본인의 사주에있는 성격, 성향, 능력이 조언에 대한 신빙성을 판단하여 결정하게 될테니 자신의 운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 사주에 좋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조언이나 주변상황을 인지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좋지만 그렇지 않고 허황된 꿈을 꾸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은 충고나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이끌어 간다. 후자의 경우 대체로 후회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내 팔자가 왜이러냐라고 한다. 위인은 이러한 상황에서 조언을 듣고 극복하고 변화하려고 한다. 자신의 안좋은 습관과 버릇을 고치는 것에 진심을 다해 바꾼다. 이게 위인이 되는 길과 아닌 길의 차이다.



배우자 또는 주변 지인의 조언, 충고, 멘토


  어떠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상황에 본인이 결정하기도 하지만 외부요인에 의해 결정하기도 한다. 멘토 또는 부모의 권유나 강요을 따라 선택할 수도 있고, TV 또는 어떤 상황에 힌트를 얻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경우가 이렇다. 길여행이라는 분야에 들어와 시작하게 된 계기가 TV프로그램에서 방영한 프랑스의 랑도네라는 길을 소개하고 변산 마실길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결심을 했다.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순간에 탁치고 들어온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이 과연 운일까? 아니면 운을 벗어난 것 다른 무엇인건지? 과연 내가 그 순간에 무시하고 말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러한 선택은 과연 사주에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사주는 많은 의미를 압축하여 보관하고 있다. 인생의 길을 딱 하나만 정해서 주지는 않는다. 다른 길로 들어섰더라도 결국 사주에 주어진 길을 다른 모습으로 할 수도 있다. 주언진 사주에 방향으로 가면 잘 풀리는것처럼 느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꼬이고 안풀리고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사주따라 간다는 것은 아니다. 사주는 일정 방향을 알려주는 것뿐이고 그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을 잘 그리는 재주가 있는 아이에게 공부하여 법관이 되라고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법관이 되어도 취미로 그림그리는 일을 하던가 일직 퇴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방황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자 따뜻하게 얘기를 들어주고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를 해준다면 당사자는 고마워 할 것이다. 다시 길을 찾은 것처럼 기뻐할 수 있다. 사주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귀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결국 귀인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고 조언에 대한 선택을 하는 것도 본인의 판단이다. 그 판단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진다. 



상황의 선택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타의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겠냐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예측할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무얼까? 사주역학에서는 조심하면 일정부분 피해갈 수 있다고 한다. 아니면 강약의 정도를 줄일 수도 있거나 몸이 상하는 대신 급작스레 돈을 잃어버리거나 써야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그 상황을 대체시켜 주기도 한다.  또한 사소한 상황이 반복되는 경우 보다 큰 상황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징조'라고 한다. 쓰나미가 오기전에 물이 빠지거나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감지된다고 한다. 이를 알아차리면 쓰나미를 대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쓰나미의 충격을 그대로 받게 될 것이다. 


  생활하다보면 별것아닌것 같아도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무얼 잃어버렸다던가, 버스를 코앞에서 놓치는경우가 빈번하다 던가, 어느날 작은 선물을 계속 받는다던가 하는 현상들이다. 큰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자잘한 상황들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난다고 한다. 사주에서는 대운과 세운, 월운에 충, 형이 중첩되면 안좋은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알면 조심조심 그날을 보내면 큰 탈을 면하는 것을 종종 경험하고 주변으로 부터 얘기를 듣곤했다. 역학은 이러한 것을 사주 글자를 통해 알려주지만 이를 배우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보다 더 민감하고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별거 아닌듯 넘아가다가는 큰 상황에 맞닥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또한 자신의 선택문제이다. 준비하고 대비하는 사람한테는 해결할 방법이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방법이 없다. 그저 몸으로 경험(?)해야 한다. 


  선택의 순간은 항상 온다. 좋던 싫던 결정해야 한다. 남이 결정해주면 된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또한 본인의 선택이다. 남의 결정에 따른다는 선택을 한 셈이다. 사주는 하나의 방법만 표현한것처럼 보이지만 선택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도 있다. 간지는 압축된 글자이기 때문에 비슷한 현상중에 한 두개 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공부했거나 도사가 되면 더 많은 방향과 길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타고난 성향을 찾아서 쓰면서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 조언이나 엄마의 기대로 인해 나의 성향이나 능력이외에 다른 부분을 찾으려고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진행하게 되면 사주와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사주가 맞다 틀리다의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도 있다. 역학을 배우면서 사주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요한건 사주대로 흘러가는게 아니라 그걸 선택하는 본인과 본인의 자아의 결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옳바른 선택을 하려면 결국 공부하고 배우고 내 안에서 들여오는 자아의 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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