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매년 봄이 오기전에, 아니면 겨울에 숲이 색깔을 잃고 휑하니 보일때면 찾아가던 곳이 있다. 수원에 있는 행궁과 화성이다. 자주 찾아온 곳이지만 그저 아름다운 성곽, 벽돌로 만들어진 공격형 성이라는 말로만 들여다 봤고 그렇게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좀더 역사적인 얘기를 할 때면 정조의 행차에 대해서 말해주곤 하였다. 올해 다시 찾은 수원화성에서는 다른 것이 보였다. 화성의 아름다움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수원화성은 한양도성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다. 둘레가 5km 남짓하니 한양도성에 비해 1/4정도이다. 하지만 한양도성은 남산이나 백악산 곡장에 올라가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도성이 어떻게 지나가고 잇는지 세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수원화성은 서장대에 올라서면 한눈에 들어온다. 화성의 성곽이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모두 찾아 볼 수 있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을까? 수원화성이 있는 사대문안은 높은 건물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5층 이하의 건물들이다. 그리고 도로때문에 성곽이 끊어지지도 않느다. 차로는 성곽아래로 지나가며 그 위로 성곽은 그대로 놓여있다. 서울의 한양도성은 사대문안이 너무나 복잡하고 고층건물로 인해 도성이 가리워져 있다. 도심의 도성은 끊어져 도로나 건물이 들어섰고 인왕산이나 백악산 줄기에 낮은 도성만이 한양도성이 있음을 대변해 준다. 최근 도성주변을 공원화 하면서 점점 돋보이기는 하지만 멀리서 보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서울과 수원의 도성의 차이는 가치의 중점을 어디에 두었는지에 달려있다. 서울은 도심의 가치를 빌딩과 같은 경제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발굴이나 보존이 중요한게 아니라 건물을 짓고 월세를 얼마 받는지 빌딩의 가치가 얼마인지가 더 중요했다면 수원은 화성 자체에 가치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이 보일 수 있도록 주변에 높은 건물을 두지않고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하여 화성의 보존과 역사성에 가치를 두었다. 만약 수원도 마찬가지로 건물 등에 가치를 두었다면 헐리고 묻혀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화성을 바라보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화성의 아름다움은 주변을 낮추어 본체를 돋보이게 만든 행정과 생각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화성의 아름다움은 여타 읍성이나 산성에 비해 벽돌을 사용함으로써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매력이 더했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래서 이름마저 화성(華城, 빛날-찬란할 화, 도읍 성)이다.
요즘은 가치의 중점이 바뀌고 있다. 물질적인 것,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존과 사상, 철학적인 생각이 더 가치로 인정 받고 있다. 그래서 인문학,철학이라는 말이 심심치않게 여기저기에 붙혀서 나온다. 길을 걷다보면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서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이 성숙하고 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들어난 역사의 이야기도 좋지만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는것이 인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발상의 전환과 기록의 가치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원화성은 대부분 복원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원래의 건물이나 성곽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런대도 화성은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왜 그랬을까?
수원화성의 공사기간은 약 2년 8개월 정도였다고 한다. 애초에 계획은 5년 정도 예상했는데 계획한 일정보다 빨리 공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제도를 도입했는데 농사에 투입된 백성들에게 월급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급을 받기위해 추운 겨울에도 공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자본주의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것은 기록이 있기 때문에 알게된 것이다. 처음에 유네스코에 수원화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신청했을때는 거절 당했다고 한다. 모두가 복원 건물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가치,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하지만 재차 신청했을때 수원화성은 복원된 것이지만 기록에 의해 정해진 대로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옛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했고 이부분이 받아들여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수원화성은 공사기간 동안에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를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기록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화성을 복원한 것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역사기록물 또는 백업데이터를 보관한 셈이다. 즉 '기록정보의 가치'는 매우 큰 것이다. 당시 화성 건축 과정에서 사용된 각종 공사법과 적들이 성을 공략시 사용할 무기 체계의 대응방안, 공사에 사용된 기중기같은 기구와 자재의 상세한 모습과 사용방법, 축성 과정에서 매일 발생하는 일상을 기록한 일지, 그리고 각 담당 관청의 명칭과 관원들의 이름까지 기록하였으며 정조의 메시지 및 각종 전달사항문, 현장에서 왕 및 관련 부서에 올렸던 각종 보고문 및 장계, 축조 과정에서 사용된 물품의 종류와 수량 등 2년 8개월 공사기간에 있었던 모든 내용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수원화성의 모습은 첫 축성당시의 모습과 똑같을 수 밖에 없다. 기록에 따라, 즉 매뉴얼 및 공법을 그대로 따라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의 기록 문화는 대단하다. 현대사회에서도 가장 중요시 하는것은 정보(Information)이다. 누가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정리하여 매뉴얼화 하였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가공을 통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 콘텐츠(Contents)가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화성성역의궤처럼 세세히 기록하였지만 다시 사용이 가능하도록 정돈한것이 더욱 큰 가치이다. 낙서는 기록일 수 있지만 정보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낙서를 모아서 정리해 놓으면 통계의 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수원화성의 가치는 이렇게 기록과 생각의 전환을 통해 가치를 이끌어 냈다.
당신의 가치를 이끌어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지고 있는 정보를 어떻게 체게화할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고 소유한 것중에 어떠한 것이 더욱 가치가 있는지 찾아보고 어떻게 내세울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누구나 나름에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