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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역학 이야기 (11) -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서울 중심의 4개의 산을 이어 축성한 성이다. 일부 문화해설사들은 내사산이라고 말하는데 역사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내사산, 외사산이라고 정해놓은 것은 없다. 해설을 가르친답시고 어떤 사람이 만든 말이 정설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정하면서 궁궐을 짓고 성을 쌓을때도 그냥 정해서 쌓은 것이 아니라 나름 풍수와 규정에 따라 지은 것이다. 한양 도성을 잇는 4개의 산은 동쪽의 낙산(타락산), 북쪽의 북악산(백악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목멱산)을 말하며. 한양 도읍을 정할때 각 방위마다 주산을 정하고 풍수적인 방어막이 되도록 설정하였고 그 안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동쪽은 용마산과 망우산, 북쪽은 북한산, 서쪽은 덕양산, 남쪽은 관악산을 지칭한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배산임수라하여 청계천을 앞에 둠으로써 명당자리가 된 곳이 지금의 한양도성의 지역이다. 그리고 각 방위지역에는 풍수와 역학의 기운에 따라 약한곳은 보강하고 강한 곳은 억제하는 방식으로 성문을 축조하였다.



오방신이 서린 동서남북의 성문


 오방색이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한때 최**이 한국을 알리겠다면 오방색을 활용하여 특화된 기념품을 만들어서 홍보했다고 하는데 오방색은 역학에서 말하는 오행()과 연관이 있다. 오행은 우주만물의 변화를 나타내는 5가지의 기운을 말하며 각 기운을 색깔, 성정, 방위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를 역학에서는 5행의 생극제화로 해석을 한다. 이를 5가지 색깔로 구분하여 방위를 배정하는데 이를 오방색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동쪽은 청색이자 인(仁)의 성정을 가지고 있어서 동쪽의 성문을 흥인문이라 지었으나 동쪽의 산세가 약하여 글자로서 기운을 보충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흥인지문'이라고 붙였다. 게다가 흥인지문에 옹성을 더하여 약한 기운을 보강하려고 했다. 흥인지문의 옹성은 방어를 위한 성은 아니었던 셈이다.


  북쪽은 숙정문이 있는데,  실제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문이었다.  북쪽은 하늘과 닿는 길이기 때문에 죽은자만 나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시구문으로 쓰였던 문은 서소문과 광희문이었고 숙정문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북쪽은 지(智)의 성정을 가지는데 실제로 사용하였던 북쪽의 문은 탕춘대성 중간에 있는 홍지문으로 여기에 북쪽의 기운에 해당하는 지(智)를 넣어서 성문이름으로 사용했다. 


  서쪽은 의(義)의 성정이 있기 때문에 서대문이 아닌 돈의문(敦義門)이 원래의 명칭이다. 일제강점기에 전차선을 가설함에 따라 불필요한 성곽을 헐어버리면서 돈의문도 같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성문이 되어 버렸다. 

1900년대 돈의문의 모습


  남쪽은 에(禮)의 성정을 가지고 있어서 남대문의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다. 남쪽에 관악산의 화기운이 너무나 강하다고 하여 이를 막기위해 현판을 세로로 세워서 부착하였다.  실제로 숭례문은 근래에 들어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복원을 하였고 경복궁도 전란 등으로 화재가 빈번하게 있었던 궁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조선 500년 역사중에 경복궁에 왕이 기거했던 기간은 200년도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앙을 의미하는 오행은 토이자 성정으로는 신(信)을 의미하는데 이는 보신각에 표시를 해놓았다. 각 방위에는 지역을 관할하는 신이 있는데 이를 오방신이라고 하며 우리가 익히 들어서 사용하는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중앙 기린을 의미한다. 좌청룡은 인왕산이 있는 서쪽이며, 우백호는 동쪽 낙산이 있는 곳이다. 이처럼 조선을 건국할때 아무의미없이 건축한 것이 아닌 나름에 명분과 풍수를 통해 국정운영을 하려는 이념을 담고 있었다. 유교국가인데 무슨 역학이냐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유교의 근본이념을 담고있는 것이 주역이다. 역학은 주역에서 내려온 한 분야이다. 그래서 이황과 이이가 유교이념을 정쟁을 삼았다는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 이라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 하나인가? 아니면 두 개인가의 설전인 것이다. 


  수원화성에 가면 화성을 따라 깃발이 세워져 있는데 걸다보면 색깔이 바뀌는 것을 알게된다. 이것도 오방의 색깔을 상징하고 화서문에서는 흰색이, 팔달문 주변은 붉은색으로 설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위에 맞춰서 5가지 색깔의 깃발을 세운 것이다.


 화기가 넘쳐서 해태를 세웠다는 것도 풍수이론에 비롯된 것인데 관악산의 화기운이 강하여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남방은 화의 기운이 있고 이에 더하여 관악산같은 바위산은 더욱 더 화기를 가진 산이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기운을 막는 것이자 보다 명확하게 보면 조선왕조의 이()씨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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