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바라본 제주여행
제주 한라산 아래에 수없이 많은 오름이 퍼져 있다. 잔잔한 들판에 깔대기를 엎어놓은 듯한 오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 넘치는 제주만의 풍경이다.
그리고, 오름과 오름를 잇는, 아니면 오름과 잣성길을 잇는 숲길이 곳곳에 숨어 있다.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올레길이 제주의 바당풍경을 음미하며 동서남북 푸른 바당 모습을 비교하며 볼 수 있다면 내륙의 숲과오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길은 올레길만으로는 부족하다.
곳곳에 숨어 있는 제주의 숲길 중 내륙의 검은 돌과 오름이 어우러진 길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여기를 선택한다.
매년 가을이나 이른 겨울에 찾아가는 따라비오름과 사슴이오름을 잇는 '쫄븐갑마장길' 이다.
쫇븐갑마장길은 말을 사육하던 목장이 있던 곳으로 30km 가까운 갑마장길 중 짧게 10km 정도로 재구성한 길이 쫄븐갑마장길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을에 찾는 이유는 오름 전체가 억새로 가득한 오름이며, 차가운 공기가 휘감는 이 맘때라면 하늘도 맑아 한라산 백록담까지 한 눈에 올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쫄븐갑마장길의 시작은 따라비오름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입구 앞에서 오솔길을 따라 가면 말그림이 그려진 기둥표시물이 보인다. 낮은 계단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오름 정상에 다다른다. 대부분 오름이 하나의 분화구멍이 존재하는데, 따라비 오름은 3개의 화구가 모여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고 한다.
따라비오름에 올라 뒤편을 돌아보면 풍력발전기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고, 발전기 사이로 보이는 작은 산이 사슴이오름(대록산)이다. 그리고 그 뒤로 웅장하고 그릇위해 눈꽃빙수가 올려진듯한 정상에만 눈이 보이는 한라산의 전체 모습이 병풍처럼 서있다.
화구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딱히 정해진 길이 없으니 이리저리 왔다갔다해도 된다.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가면 삼나무숲길이 보이는 잣성길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만난다.
잣성은 말을 키우던 목장 사이에 경계석이자 말이 넘지 못하도록 현무암을 쌓아 만든 제주 중산간에 존재하는 담이다. 잣성옆에는 길이 존재하고 하늘 위로 삼나무가 줄 맞쳐 서 있어 멀리서 봐도 여기에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잣성길을 따라 사부작 걷다보면 탁트인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길게 쭉 뻗은 포장길은 사슴이오름까지 이어져 있다. 오름을 올라갈때를 제외하곤 오르막이라고는 없다.
그저 한가롭게 주변 풍경을 즐기며 산책하듯 걷는 길이다. 대부분 흙길이다 보니 푹신한 감촉에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슴이오름도 살짝 올라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올라왔던 방향으로 뒤돌아 보면 따라비오름에서와 반대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불어와도 차가운 기운이 담긴 바람이 아니라 시원하게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다.
여기서는 따라비오름의 온전한 모습이 보인다.
사슴이오름 앞과 발전기가 있는 이곳은 봄이면 유채꽃이 가득하여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내기준에 가장 아름다울때는 억새꽃이 피는 가을이다. 말 그대로 은빛 물결이 오름에 불어오는 바람을타고 일렁이기 때문이다.
올레길은 걸며 쉬며 걷는 길이라고 한다. 오름이 있는 내륙의 숲길은 걷고, 쉬며,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
좋은 풍경을 보고, 옆 사람과 즐겁게 수다를 떫며 걷는 갑마장길 같은 제주의 길은 몸을 강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이 쉬어가는 길이다.
다시 사슴이오름을 내려와 따라비오름이 보이는 왼쪽방향을 따라 걸어가면 반나절에 걸친 힐링둘레길을 마무리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