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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Sep 19. 2020

지금의 추억

<테스와 보낸 여름> 2019,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




가족여행 차 휴양지를 방문한 '샘'은 언젠가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해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는 중이다. 바다에서 가족들과 놀던 중에 형이 갑작스럽게 다리를 다치게 되고, 형을 데리고 간 병원에서 샘은 '테스'를 만나게 된다. 샘과 테스가 가까워질수록 샘의 본래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에 샘은 테스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게 되고, 이에 동참해 테스를 돕기로 결심한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샘이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겨질 것을 대비해 준비하는 '외로움 적응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테스가 자신의 아빠를 찾기 위해 벌이는 일이다. 샘은 자신이 집에서 막내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하나 둘 죽으면 자신이 가장 늦게 남아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언제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먼저 죽은 뒤 혼자 남겨질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펼쳐질 미래에 익숙해지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점차 늘려가는 외로움 적응 훈련을 계획하게 된다.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해나가던 중, 샘은 우연한 계기로 테스를 만나게 된다. 처음 만난 사이에 함께 살사를 추자는 등 샘 만큼이나 엉뚱해 보이는 테스와 샘은 점차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샘의 원래 계획 일정에는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의 원래 계획을 뒤로하고, 가족보다도 테스와 있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하던 샘은 테스와 함께 떠난 피크닉에서 큰 오해를 하게 되고 배신감을 느낀다. 피크닉 가방에 든 와인을 실수로 마신 샘은 테스가 휘호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그런 테스를 나무란다. 이때, 테스는 휘호는 사실 자신의 아빠고, 아빠를 직접 만나기 위해 이벤트 당첨을 이유로 휘호 커플을 자기 집의 펜션에 초대하게 된 것이라고 밝힌다. 이 순간을 계기로 테스의 진짜 계획을 알게 된 샘은 그런 테스를 돕기로 결심하고, 가족끼리 있자는 가족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샘은 테스와 함께 하며 테스가 무사히 아빠에게 자신이 그의 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도록 돕는다. 이때부터 샘의 외로움 적응 훈련은 샘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머릿속에서 잊히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샘과 테스의 만남만큼 인상적이게 다가오는 것은 샘과 힐러 할아버지의 만남이다. 샘은 바닷가를 거닐던 와중에 뻘에 다리가 깊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이때 힐러가 나타나 샘의 다리를 빼주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몸을 녹이도록 도와준다. 힐러의 아내 사진을 보고 아내가 그립지 않냐 묻는 샘에게 힐러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세상을 떠난 내 와이프와 행복한 추억이 아주 많아. 그 안에서 그녀는 살아 숨 쉬고 있어. 함께한 모든 순간이 소중하단다. 최대한 많은 추억을 채워가렴.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힐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캐릭터다. 직접적으로 내뱉는 대사만큼 이 영화의 메시지는 뚜렷하다. '지금'의 추억을 쌓아 나가자는 것. 영화 시작부에 나오는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라는 자막처럼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열심히 살아나가야 할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현재를 즐기며 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샘의 고민은 미래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추억과 행복을 제쳐둔 쓸데없는 고민이었을지도 모른다.

힐러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샘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곧장 할아버지의 집을 박차고 나서 테스에게로 간다. 그리고 테스에게 휘호 아저씨와 아직 추억이 없는 게 문제라고 얘기하고 추억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때의 샘의 결론은 약간 잘못 도출된 결론으로 보인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샘과 테스는 휘호 커플에게 찾아가 같이 피크닉을 가고, 게임을 하는 등 보다 가까워지려 애쓴다. 그리고 마을 축제 날, 테스는 휘호에게 자신이 그의 딸임을 고백하려 하지만, 옆 테이블에서 시끄럽게 우는 아이를 보고 휘호가 무심코 뱉은 말 "나는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야"에 테스는 상처를 받고 자리를 떠난다. 결국 휘호 커플은 진실을 듣지 못한 채 이벤트 마지막 날이 되어 떠나게 되고, 샘은 그들의 차를 세우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진실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휘호는 자신의 딸인 테스를 인정하고, 아빠가 되기로 약속한다. 모든 사건의 뒤에, 테스 가족이 마을 사람 모두를 초대해 파티를 벌이며 영화는 끝난다.

사실 <테스와 보낸 여름>은 특별히 뛰어날 것 없는, 아주 무난한 영화다. 여느 성장영화와 유사한 결의 스토리를 따르고 있으며, 스토리 자체가 새롭거나 참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 내에 소소한 갈등이 몇 군데 존재하긴 하지만, 결말부의 해피 엔딩으로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기 그지없어 그저 착하고 순진무구한 영화로 보이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영화가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또한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어느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아이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각자의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내가 이들과 함께 짧은 여정을 떠난 듯한 감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샘과 테스가 서로에게 지금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듯 <테스와 보낸 여름>이라는 영화가 관객이 현실을 살아가현재의 추억을 쌓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따뜻한 메시지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기분 좋게 다가온다.




*이 글은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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