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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Feb 22. 2020

인생이라는 길에서 우린 모두 초행이라서

<초행> 2017, 김대환 감독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7년 차 커플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기에 부딪히게 된다. 어느 날, 수현의 형에게서 아버지의 환갑일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라는 전화가 오고, 지영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결혼에 대해 압박한다. 둘의 마음은 복잡해지기만 하는데... 과연 이들은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초행(初行)'


동거 중인 지영과 수현은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집의 물건들을 하나 둘 정리 하던 와중에 수현의 형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오고, 수현은 아버지의 환갑일이 곧 다가온다는 것과 형이 지영도 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한다. 고양이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던 와중에 지영은 생리를 안 하고 있다고 말한다. 수현은 물을 마시고 온다며 자리를 피하고, 지영은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와 함께 닥쳐오는 결혼에 대한 걱정은 두 사람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연이어 영화의 제목 '초행'이 보인 후, 두 사람은 각자의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화의 제목 '초행(初行)'은 어떤 곳에 처음으로 가는 것 혹은 처음으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이는 두 사람이 수현의 아버지의 환갑잔치 때문에 삼척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보다 넓게 보자면 두 사람이 인생이라는 길에서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영과 수현은 사회초년생이다. 지영은 방송국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수현은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둘이지만, 세상의 기대치는 이들에게 벅차기만 하다. 지영의 어머니는 지영에게 내세울 것이 없어 어디 말하고 다닐 수도 없다는 말을 무심코 하고, 수현의 선배는 수현에게 대학원에 입학하려면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런 상황들은 임신과 결혼, 미래에 대한 이들의 걱정과 부담감을 가중시키게 된다. 영화는 그런 과정들을 하나씩 마주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포착하여 그대로 담아낸다.



사실적인 영화


김대환 감독은 영화에 다큐멘터리 느낌이 묻어나길 바랐고, 시나리오가 있는 상황에서 배우들에게 큰 상황만 제시하며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테이크를 반복하며 찍어 나갔다고 한다. 대부분의 장면이 기본적인 상황 아래에서 배우들의 즉흥 연기에 가깝게 완성된 원 테이크 장면인 셈이다. 영화는 여러 번 반복해서 촬영된 장면들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을 취합해 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의 연출은 배우가 영화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다. 배우는 장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고, 즉흥적으로 벌이는 연기가 보다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연기와 연출의 합일을 통해 배우는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게 된다. 지영과 수현에는 김새벽 배우와 조현철 배우의 일상과 생각, 감정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두 인물, 지영과 수현을 보고 있자면 두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두 인물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더불어 영화의 대부분의 장면은 핸드헬드로 촬영되었는데, 시종일관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인물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는 듯한 느낌을 물씬 주며 인물의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드는데 큰 몫을 한다.  



살아봐도 모르겠다면,


"살아보고 해."
"같이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



수현의 아버지의 환갑일, 살아보고 결혼하라는 수현 어머니의 말에 지영은 같이 살아봐도 모르겠으면 어떡하냐고 되묻는다. 질문에 대한 수현 어머니의 말이 들리지 않은 채 둘의 대화는 수현의 형의 말에 의해 중단된다. 이 질문에 대해 영화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지영과 수현은 7년 차 커플이고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둘은 현재 동거 중이라는 점이다. 둘은 함께 어느 정도 살아봤다. 그리고 지영은 수현의 복잡한 가정사를 7년을 만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7년을 만났지만 둘은 여전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에는 지영과 수현이 길을 헤매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차를 주차해놓고 어디에 주차해놓은 지 몰라 찾지 못하기도 하며, 내비게이션 없는 차 안에서 직진해야 할지 빠져야 할지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직진해야 되는지 빠져야 되는지 물어보는 수현의 말에 지영은 멈추면 된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 길을 잃었다는 말에 직진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 사람은 촛불 집회가 한창인 광화문 광장의 인파 속을 함께 걷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걷는 것을 느끼며 뒤로 돌아 걷는다. 그런데 그렇게 걸으면서 보니 사람들이 방금 전 자신들이 걸어가던 방향으로 가는 느낌이 든다. 이리로 가니 저리로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저리로 가니 이리로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던 와중에 "그럼 이리로 갈까" 하는 지영의 질문에 수현은 "모르겠다"고 답한다. 둘은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다. 하지만 함께 팔짱을 끼며 걷고 있다. 팔짱을 끼고 함께 걷고 있는 둘을 보며 답을 알 수 없는 현재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영화는 아무리 살아봐도 모르겠는, 순간순간의 답을 도무지 모르겠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만 같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우리는 모두 초행(初行)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다수가 걷는 길은 있어도 누구에게나 완벽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인생엔 정답이 없다고. 정답 없는 길 위에서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될 수도,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되는 순간순간, 옆에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는 그 안도감이 우리를 붙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하게 된다.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m.cafe.naver.com/ca-fe/web/cafes/25494727/articles/7553?fromList=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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