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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진우 Sep 15. 2020

탄광에서 현금을 파내라



'만약, 폐쇄된 탄광 깊은 곳에 화폐다발들을 묻어놓고, 그 입구를 적당한 양의 쓰레기로 막도록 한 뒤, '사기업(private enterpirse)'을 시켜 그 탄광을 파헤쳐 돈을 꺼내게 하면, 그 마을의 고용과 실질 수입은 모두 나아질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 생각이나 제안을 내가 한다면, 나를 아는 지인이건 아닌 사람이건 십중팔구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들은체도 논의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아마도 아담스미스에 이어 두번째쯤)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고용, 화폐, 금리에 관한 일반 이론' 이라는 책에서 실제로 쓴 말이다. 원시적인 경제학적 관점에서 생각하거나, 경제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대부분의 생각에는 노동=생산=화폐 가 비슷한 개념이고, 나라 혹은 개인은 '일한 만큼' 혹은 '만들어낸 만큼' 만 '쓰거나',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 경제에는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기업과 수많은 나라들이 얽혀있어 단순히 생산한 것이 모두 적재적소에 소비되지 않으며,소비와 필요에 의해 생산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거꾸로 생산에 의해 소비와 필요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화폐는 생산, 상품과 노동력과 유무형의 서비스를 값을 매기고 교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화폐 자체가 경제활동을 일으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컨데 오늘 물고기를 가진 사람과 다음달에 감자를 캘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각각 다른 것을 먹고싶지만, 있지도 않은 감자를 미리 받고 물고기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음달이면 상할 물고기를 그때 가서 교환할 수도 없다. 이 둘에게 각각 100달러씩을 주고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 둘의 거래는 이루어질 수도 있다. 화폐가 경제활동을 만드는 것이다.


 대공황 시절에는 금본위제의 영향으로 생산 능력이 남아도는데도, 소비와 지출이 점점 쪼그라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현상을 면밀히 관찰한 케인즈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금리와 재정지출에 관여하여 경제에 개입할 필요가 있는 '재정정책'을 말했고, 실제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등에 활용되어 적지않은 효과를 보았다. (참고로 케인즈는 미국이 아닌 영국의 경제학자다.)


이후, 금본위제- 즉 화폐에 금의 가치를 고정시키는 제도, 예를 들면 35USD를 1온스의 금으로 교환가치를 정하는-는 폐지되었다가, 브레턴우즈 체제 때 다시 부활했다가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닉슨 정부 때 다시 폐지되는 길을 밟는다.


이제 각국이 발행하는 화폐는 사실 '아무도 금이나 실물로 바꿔줄 것을 보증하지 않는' 화폐가 되었으나, 각국 정부가 '신뢰'에 기반해서 찍어내기 때문에 가치교환과 저장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금본위제가 사라진 이후의 화폐는 '신뢰'에 바탕하기 때문에 자칫 경제가 탄탄하지 않은 나라가 국채 또는 화폐찍기를 남발할 경우, 짐바브웨의 사례처럼 수억~수해%로 추산되는 엄청난 화폐가치 하락 (인플레이션)을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경제규모와 재정적자를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국채를 발행하거나 돈을 찍다가는, 하루아침에 오만원권 지폐가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케인즈가 제안한 '땅굴파서 돈 뿌리기'가 현재 코로나 경제 상황에는 필요한 수단인데, 짐바브웨식 인플레이션을 피하려면 재정정책도 잘 고민해서 해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수십 수백조원의 정부자금이 출산이건, 실업이건, 코로나 경제상황 살리기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로는 기술적인 문제- 실업자 급여를 준다고 하니 고용노동부 등의 관련부서에서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아우성이어 정작 공무원에만 돈이 뿌려진다던가/구조적인 문제- 코로가 경기 개선을 위해 대출금리를 낮추고 기업대출을 늘린다고 하나,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담보로 잡을 자산이 없어 1금융권 대출을 못 받고, 저리의 자금은 자본가들이나 큰 기업이 받아 자산에 투자하여 자산가치가 폭등하는 역설- 두가지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보같다(?)고 생각하는 케인즈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또 있으니, 그는

'할수만 있다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고싶다'

라는 말을 했다. 이 무슨 멍청하고 얼빠진 생각인가?

 이 어이없는 말은 무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가 한 말이다. (그 떄문에 한 때 '헬리콥터 벤'이라고도 불렸다.) 


 현재 재정정책을 써도 효율과 효과를 찾기 힘든 한국경제의 이런 상황을 종합한 개인적인 결론과 견해는, 차라리 5천만명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처럼 현금을 입금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는 벤버냉키의 헬리콥터 머니쪽에 가깝다. 그 사람이 남자건 여자건, 노인이건 아이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이런 방식으로 지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실업자를 선별해서 지급한다고 하다가, 구조적인 인건비만 더 투입되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실제 실업자인지 직업은 없는 자산가인지 위장해서 수당을 받는건지 알기힘든 모럴해저드나 탈법행위도 발생하지 않는다. 현금을 지급받은 개인은 각자 필요한 곳- 그것이 치킨이든, 옷이든, 핸드폰이든-에 지출할 것이고 그것은 그 행위 자체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살아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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