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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진우 Sep 17. 2020

#기본소득은 옳은가?


#기본소득은 옳은가?


 국가가 국민과 기업들에게 걷는 돈을 '세금'이라 하고, 이를 보관, 운용하는 것을 '재정'이라고 하며 이를 쓸 계획은 '예산'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여럿에게 돈을 걷어서 소수가 쓸 방법을 정하는 것인데, 이게 당위성을 가지는 근거는 이렇다


: 영국 철학자 홉스가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에 권력을 임시로 혹은 일부를 '맡겨'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금을 걷거나 추징하는 것이 강도행위가 아니고, 재정을 사용하는 것이 배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말 그대로 세금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세법의 원칙대로 걷고 사용할 때도 소수의 이익이나 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잘못 써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붙게 된다. 

 여기서 하나 더, 국가가 국민의 돈인 재정을 관리하는데 전제가 되어야할 조건은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만약에 100억원을 사용하여 같은 품질의 도로를 두개 깔 수 있는 업체와 한개를 깔 수 있는 업체가 있다면 당연히 정부는 먼저 업체를 선택하여 효율적으로 돈을 사용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가가 돈을 쓰는 기능을 크게 두가지로 나눠보면 


'사회 인프라 구축과 운영'

그리고

'소득재분배'

이다.


 고전적으로 정부의 기능은 앞의 것인 '사회 인프라 구축과 운영'만이 강조되었었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마음놓고 일을 하여 경제를 돌리고, 가정생활을 하여 세대를 이어나가려면 사람과 물자가 이동할 도로,  땅이 필요하고, 치안을 관리해줄 경찰, 외적으로 부터의 침략을 막아줄 군대, 먹는 물 버릴 물을 잘 관리해줄 상하수체계 등이 필요하다. 이런 사회 인프라를 만들고 잘 유지해주는 것이 정부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데 현대 국가에서는 자본과 기업활동으로 인한 빈부의 격차가 심해질 수 있는 기회가 커졌다. 국가 전체의 부는 국민 개개인의 부를 합한 합이므로, 소득이 심각하게 부족하여 교육이나 경제활동이 어려운 국민의 수가 는다면 국가 전체의 부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끝에는 가난해진 계층이 거리로 나오면서 치안과 위생에도 큰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지나친 양극화 (엄밀히 말하면 부유층이 더 부유해지는 것보다는 저소득층의 가난함이 더 깊어지는 것이 주요 문제다.) 때문에 사회 전체가 붕괴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레미제라블' 중


그래서 현대국가에서는 고전적인 국가와는 다르게 국가가 재정을 쓰는데 있어 '소득재분배'의 역할이 커졌다. 그래서 국가가 국민연금을 운영하고, 노인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며, 아이들의 보육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옳은가 틀린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 함은 국가 혹은 지방정부가 개개인에게 일정한 금액을 특별한 조건 없이 주기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야할 것은 기본소득의 반대말은 

'정부 및 공무원이 예산을 나눠줄 사람과 곳을 정한다'

는 말이다. 


기본소득의 반대말은 

'세금을 덜 걷고 덜 쓴다'

는 말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을 주지 않는다고 큰 정부가 그 권한을 스스로 줄이거나 예산을 줄일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에 쓸 돈은 정부의 손아귀로 넘어가 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일당 독재의 공산주의 국가처럼 그 예산이 사용되는데에 정치적, 연줄에 의한 폐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전 국민에게 똑같은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최소한 그 예산에 대해서 만큼은 정치나 누군가의 입김이나 권력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어진다. 기본소득이란 얼핏 큰 정부를 지향하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정책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정부의 분배에 대한 결정권한을 약화시키는 개념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는 많다. '자유주의의 대부'라고 할만한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선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위대한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소수 집단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다."

라고 말한 바 있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누구에게 복지 예산을 줄까 말까 결정하는 것이 '특정 소수 집단'이 필요 이상의 권한과 예산을 쥐었다 폈다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개인이 정부에 더 기대게 되어 자유주의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과 경제자유에 있어서는 가장 선진국 중 하나인 스위스에서도 2016년 6월에 기본소득을 담은 헌법 개정안에 대한 투표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부결되긴 했지만, 기본소득은 사회주의나 큰 정부의 상징이 아니라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또 한가지 기본소득이 아닌 선별적 지원의 문제점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즉 필요한 사람에 대한 지원금보다 그 지원금을 결정하는데 쓰이는 공무원 인력과 시간이 더 드는-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100만원 안되는 작은 바우처형태의 사업자 지원금을 신청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수십가지 서류에 신청 프로그램을 들어가면 온갖 액티브엑스 설치만 엄청난 시간이 걸릴 지경이었다. 막상 서류를 거의 준비하니 한참 시간걸려 검토한 공무원이,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처음부터 신청해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얼마 안 되는 지원금을 포기하고, 이런 불합리한 지원책은 프로그램 개발비와 공무원 인건비, 거기다 더해서 중소기업의 시간과 인력만 낭비하는 불합리한 지원 프로그램이므로 폐지가 적절할 것 같다는 민원을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정부는 2006년부터 1~3차에 걸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친해 작년까지 185조원을 저출산에 대한 사업비로 써왔다. 2016~2020년에 걸친 3차 기본계획에는 2019년까지 104조원을 썼다.


결과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2년 1.30에서 2019년 0.92명으로 세계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1년 출생아가 40만명이라고 할 때, 160조는 신생아 1인당 4억원을 줄 수 있는 금액이다. 10년간 나눠준다고 해도 아이 1인당 4천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돈이다. 아이를 낳은 부모가 이 금액을 얼마나 구경이나 했을까 싶다.


 실제로 정부와 정부 주위에는 공무원부터 시작해서 각종 공사와 위원회 등등 '궁리'와 '계획'을 한다며 엄청난 예산을 받아쓰는 부서와 사람들이 줄줄이 엮여있다. 저출산을 고민하고 이걸 쓰는 걸 '관리'하는데에 대부분의 돈이 들어갔을 수 있다.  


 엄청난 크기의 떡이 손 하나, 둘, 셋을 거치며 막상 아이와 부모에게는 콩알만한 떡만 떨어지게 된 지경인 것이다.


 돈은 정부나 소수의 사람들보다는 개개인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정부에서 뿌린 돈이 단계를 거치면서 그 돈은 누가 어떻게 쓰는지 관리되지 않고 효율은 급격히 떨어져갈 뿐이다. 한편 개개인이 가진 돈은 정말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돈이 흘러들어가게 하고 이들은 또다시 이 돈을 써서 경제를 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머리에서 짚은 세금 사용의 '효율성'문제를 다시 떠올려보자. 국민이 정부를 '믿고' 국민의 돈을 맡기고 사용하도록 허락해준 이유는 효율적인 사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같은 예산으로 훨씬 효과적으로 사회를 나아지게 하고 경제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놔두고 비효율적인 길을 가는 정부를 국민은 신뢰하고 용인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이 과연 개개인의 자유를 더욱 증진시키고 분배의 개선과 경제침체 개선에 기여할 것인가, 아니면 구시대적이고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공산주의적 개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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