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코치 #1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움말, #취향에 대하여

by 장진우

취향에는 종착역이나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에서 소위 '빌드업' 하는 것처럼 더 높은 레벨이나 낮은 레벨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각자가 좋아하는 말 그대로 '취향'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색깔과 같아서 어떤 것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다.


20대 후반 무렵, 강남의 술집들에는 과일 소주가 유행이었다. 한 번은 압구정 로데오의 대로변 지하에 있는 과일소주 전문점에서 친구들과 과일 소주를 먹었는데, 실제 사과를 컵처럼 깎은 것을 접시 삼아 술이 나왔다. (아마도) 진로 소주와 과일(지금 생각하면 주스였을 것이다.)을 섞어 달달하고 술맛이 잘 안 느껴지는 술을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다. 생각만 해도 숙취가 심할 것 같지만,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다. 한잔, 두 잔 음료수처럼 마시면 점점 취하는 줄도 모르고 일어날 때는 다들 비틀거렸다. (당시에는 소주보다 훨씬 비쌌다. 지금은 그냥 줘도 안 마실 술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와인을 먼저 좋아하게 되었고 그다음으로는 위스키로 넘어왔다. 알겠지만 와인과 위스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술 취향 같은 것에 종착역이나 끝, 소위 ‘만렙’ 같은 것은 없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가 비싼 프랑스 그랑크뤼급 와인에 대하여 다양한 표현으로 맛을 설명하고 한 모금 마시면 천상의 경험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와, 저 사람은 대단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뛰어난 입맛과 술 경험을 가졌을 테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입맛 따위야 보잘것없다.


본인의 입에 맞는 술이 최고의 술이다.


물론 음식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술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코크 형제는 미국의 손꼽히는 거부이자 엄청난 와인을 가진 수집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포브스 인터뷰에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본인 입에 맞는 와인이 가장 좋은 와인이다. “


그 뒤로 나는 무통 로쉴드나 페트뤼스 등 소위 ‘그랑 크뤼’라 하는 와인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고, 한국에는 들어오지도 않는 나파밸리의 고가 와인을 먹어본 적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초고가의 와인의 술맛은 때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맛을 주지만 때로는 3만 원짜리 와인보다 맛이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입맛을 구성하는 것은 혀의 미각세포와 후각이지만,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장내 세균과 건강상태나 심리상태 등도 영향을 미친다. (Nutrients. 2021 Jul. 'Do Gut Microbes Taste?) 예를 들어 입사한 회사의 첫 회식 같은 불편한 자리에서 먹는 술맛과 비 오는 날 오랜만에 만난 좋아하는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마시는 술맛이 같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결국 이런 종합적인 정보들이 모여 뇌에서 구성되는 감각과 느낌이 ‘맛’이기 때문에 맛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나의 맛과 너의 맛이 다른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천국의 술이 나에겐 쓰고 텁텁한 술일 수 있다.


언제까지 로버트 파커나 제임스 서클링 같은 나와는 다른 입맛을 가진 아저씨들의 입맛에 기대어 아까운 돈을 쓸 것인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술맛을 늘어보면, 처음 보르도에 가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고 동네 술가게에서 사 마신 40유로 정도의 어떤 와이너리의 세컨드 레이블의 화이트 와인, 아말피의 바다가 보이는 호텔 밥집에서 순전히 직원의 추천에 의해 마셔봤던 30유로 대의 동네 화이트 와인, 그리고 베니스에서 마신 네그로니 칵테일 등이다. 이런 술들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뒤에 마신 100만 원 이상의 와인보다 훨씬 맛나고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영원히 와인과 위스키를 좋아할 것 같던 내 입맛도 어느 순간 보니 진(Gin)과 리큐르(Liquor)를 섞어 마시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다. 진이나 리큐르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재료의 증류주가 아닌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들기에 맛의 다양성이 더 큰데, 영연방 국가에서는 진을 잘 만들고 이탈리아에서는 리몬치노, 캄파리, 아퍼롤 같은 리큐르를 잘 만든다. 기본적으로 이런 술은 술값도 만만하고 위스키나 와인보다는 ‘순수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멀리하던 술인데, 어쨌든 요즘은 비싼 와인이나 위스키보다 이런 게 더 맛있다.

한 번은 지인이 ’ 술값 보고 더 비싼 술 마시니 못 하니 나는 루저다 ‘라는 식으로 스스로 비하를 하는 말을 하길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부자들도 와인이나 위스키 맛도 모르면서 그냥 비싸니까 좋은 건 줄 알고 마시는 사람 많다.’라고 말해줬다.


예컨대 프랑스 와인에 대해 엄청난 전문가라 하더라도,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의 와인에 대해서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동네에는 우리로 치면 각 구나 면 단위로 와이너리나 양조장이 넘쳐나 곳곳마다 술맛도 천차만별이며, 그 동네에서 다 소비되기에 그 동네 아니면 맛도 볼 수 없는 와인들이 넘쳐난다. (상인들은 당연하지만 맛나고 생산량이 좋은 술보다는 많은 양을 확보하고 적당히 포장해 비싼 가격에 '눈탱이'를 칠 수 있는 술을 좋아할 것이고 당신에게 그게 정말 좋은 술이라고 홍보할 것이다.)

본인의 취향이나 입맛을 비하하거나 아쉬워하지 마라. 물론 세상의 좋은 술, 음식과 취향을 무시하거나 눈과 귀를 닫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술이든 음식이든 미술이든, 어린 나이에는 최대한 경험하고 생각하고 안목을 넓히면 좋다. 다른 사람의 취향은 그 취향대로 인정하되 그것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본인의 입맛에 맞고 지금 같이 있는 사람과 즐겁게 하는 술과 음식이 최고의 술과 음식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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