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하고 영원이 친구가 돼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 #1

by 장진우

'할머니가 100살까지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따금씩 아이가 외할머니에게 하는 말이다.


나이 들면 더 잘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더 못 하는 것들도 있다.


나무보다 숲을 보는 것들, 기업 경영이나 자산 관리 등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서 통합적인 사고를 통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릴 때보다 나이가 들어 잘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들면 못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못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갈망, 그에 따르는 상실감이나 슬픔 같은 감정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예를 들어 연애소설을 쓴다고 해보자. 50대에 쓰는 연애소설과 20대 초반 글 마무리는 서툴지만 복잡하고 기복이 심한 감정이 넘쳐나는 나이에 쓴 연애소설 중에 어떤 것이 더 재미있고 읽고 싶은가?


사람과 한두 번 헤어지거나 상실감을 겪으면 어렸을 때는 그렇게 힘들고, 영원할 것만 같던 안타까움이 나이가 들수록 덤덤해진다. 점점 누군가와 멀어지거나 어떤 것을 잃어도 별다른 감정이 안 생긴다는 건 생존에 유리할 수도 있지만 매우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원숙해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중요한 능력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나' 싱클레어는 매우 어리숙하고 전전긍긍하는 아이다. 반면 데미안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어른스럽다. 재미있는 건 어려서 데미안을 읽으면 데미안처럼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 되고 싶지만, 나이 들어 읽으면 싱클레어처럼 어리숙하고 전전긍긍하던 시절의 모습이 그리워진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길 저편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만 봐도 아련하고, 계속 바라보고 싶은 마음. 어느 날인가 하늘에 구름이나 별들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끝나지도 않을 고민과 번뇌를 하던 그 순간순간들이 좀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일 때, 아이였던 어렸던 그 시절이 정말 소중했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둘째와 셋째가 태어나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주말에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된 첫째 아이는 어느샌가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가 더 좋다는 말도 많이 한다. 스케이트를 타러 가도 할머니와 같이 가고 싶어 하고, 누구랑 여행 갈래? 하면 할머니와 가고 싶다고 하며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집에서 며칠 있다 올 수도 있다고 한다. 하루는 할머니와 함께 정처 없이 전철을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아무 곳이나 가보고 싶은 데를 가보고 싶다고 다녀와서는 다리가 아프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배우는 것은 많지만 나에게 소중하고 아끼는 것들, 사람들이 참 많던 그 순간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하는 건 정말 큰 배움이다. 세상은 이렇게 소중하고 예쁜 것이었지.


할머니하고 영원이 친구가 돼고 싶어요



크리스마스 즈음, 실내 놀이터에 가서 소망을 적어보는 공간에 남긴 글, 할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아련하고 소중하게 바라고 아끼고 사랑했던 적이 있었던가,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언제 또 누군가 나를 저렇게 시간도 멈출 것 같은 간절함으로 사랑해 줄 수 있을까.


할머니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나도 한 때 엄마나 할머니 손을 잡고 저렇게 걸었다가 어느 순간인가 친구들이 좋다고 더 이상 손을 잡지 않았겠지. 내 손을 잡는 아이도 언젠가는 손을 놓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 또 다른 작은 손을 잡고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둘의 뒷모습에서 나의 언젠가 뒷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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