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수, 진보, 우파, 좌파의 뜻은 무엇일까

닥터장의 나라 사용 설명서

by 장진우

2025년 대한민국의 대선 투표율 79.4%로 얼마 전 영국에서 치러진 총선투표율(59.4%) 보다 월등히 높다. 그러나, 높은 투표율이 높은 민주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정말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나라살림에 대해 고민하고 찍은 표가 많아야 높은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정치에 대해 관심은 누구보다 높으면서도 정치에 대한 공부는 누구보다 하지 않는 우리나라, 정치에서 흔히 쓰이는 보수, 진보, 우파, 좌파라는 용어의 뜻은 무엇일까


https://brunch.co.kr/@korgwc/17

지난번에 올린 글이 생각보다 많은 조회수를 보였다. 이 글의 핵심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전제적인 '공산당'의 존재 유무에서 차이가 있으며, 민주주의란 체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처럼 민주주의만 들어갈 뿐 사실상 국민들에게 정치권력이 없는 가짜 민주주의도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민주주의, 사회주의라는 말만큼 많이 사용되는 보수, 진보, 우파, 좌파 등의 뜻을

알아보자.


#보수(Conservatism)

보수 정치의 대표적인 정치인 마가렛 데처(좌)와 로널드 레이건(우)

정치적 용어로 '보수(Conservatism)'라는 말은 에드문드 버크(Edmund Burke)라는 정치철학자가 프랑스혁명 이후의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을 보면서 변화는 작고 점진적으로 일어나야 할 필요를 말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물론 초기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현대의 보수주의는 개념이 많이 변화해 왔다. 이 글에서는 현대의 보수주의를 설명하지만 철학적인 뼈대는 에드문드 버크의 사상을 계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정치적인 보수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전통과 관행을 중요시한다. 2. 인간의 불완전성과 한계를 인정 3. 유기적인 사회관, 즉 어느 정도의 계층과 불평등은 필연적이라는 생각 4. 권위, 질서, 법치주의를 중시 5.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 6. 변화는 점진적으로 천천히 일어나야 함


영국의 보수당(Conservative Party), 미국의 공화당(Republican Party), 일본의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ic Party) 등이 일반적으로 보수주의를 계승하는 정당이라 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보수정치의 대표적 사례로는 영국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ntcher)가 주요 국영기업을 대규모로 민영화하고 복지 혜택을 축소했던 정책,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이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율 인하, 규제 완화를 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정치적으로 두 정부 모두 반공주의를 표방하며 소련 등 공산주의 진영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존 스튜어트 밀

한편 '자유주의(Liberalism)'는 종종 보수주의와 혼동되는 용어인데, 존 스튜어트 밀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인류 중 단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 말은 권위, 체계,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의 생각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자유주의는 1. 개인의 자유가 핵심가치이다. 2. 변화와 진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는 점에서 사회 질서와 전통을 더 강조하는 보수주의와는 다른 점이 많다. 물론 시장의 자율성을 지지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종종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진보(Progressivism)

정치에서 '진보(Prgressivism)'라는 용어는 보수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의 용어보다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 농민 조합(National Granges)이 미서부에서 주최한 회의, 1867

마치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반작용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떠오르듯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만들었고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진보주의(Progressive Movement)'이다.

1890년대에 미국의 부유한 1%는 전체 자산의 59%가량을 소유한 반면 하위 44%는 1.2%의 자산을 소유하였으며, 40%가량의 노동자가 연수입 $500 이하의 빈곤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양극화가 발생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풍부한 자원과 기업환경에 좋은 인프라로 세계의 강국으로 떠오르던 미국이 내부적으로는 몸살을 앓으면서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필요한 시대였다.

실제로 '진보당(Progressive Party)'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20세기 초중반 미국에 존재했으나 현재는 쇠퇴했다.


진보주의의 시대를 연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거대 기업들을 해체하는 '셔먼 독점 금지법(Sherman Antitrust Act)', 기업 통제, 자원 보존, 소비자 보호의 내용을 담은 '공정 거래(Square Deal)'정책 등으로 미국 사회 문제를 폭발 직전까지 끌고 간 브레이크 없는 산업화에 제동을 건다.


진보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1. 자유와 권리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주의의 시작점이 독과점 기업에 반대하는 데에 있다는 걸 기억하자) 2. 정부가 규제, 공공재, 재정지출 등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경제 문제에 개입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의 작은 정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3. 이념적으로 더 공정하고 포괄적인 사회를 추구하며 그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진보(Progressive)'가 탄생했던 미국 20세기 초기의 시대상황과 현대는 많이 달라졌으며 진보에 대한 개념이나 성격도 현대에는 많이 달라졌고, 각 정당마다 진보라는 개념을 필요에 의해 가져다 쓰지만 실제 정치이념이나 정책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현대적인 '진보'의 개념에는 '기후 변화 대응',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소수자 권리 보호와 평등' 등의 개념이 추가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우파와 좌파, 정치적 스펙트럼의 문제(Political Spectrum)


현대에는 진보, 사회주의, 공산주의, 분배, 평등 쪽의 사상을 대체로 '좌파', 보수, 자유주의, 자본주의, 작은 정부 등의 사상을 대체로 '우파'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표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의회(National Assembly)

프랑스혁명(1789) 당시의 국민의회(National Assembly)에서 '좌파', '우파'의 개념이 기원한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미 100년 전에 명예혁명으로 입헌군주제를 만든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시대적 변화를 귀족 등 특권층이 받아들이지 않고 제3신분(평민)과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층 간 갈등과 저항이 심했고 진행과정 또한 격렬한 면이 많았다. 당시 국민의회에서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왼쪽에, 왕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른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것이 오늘날의 정치적 '좌파', '우파'로 굳어졌다고 알려졌다.


좌파, 우파의 정치적 스펙트럼 (출처: 브리타니카)

예를 들어 미국의 민주당(Democratic Party)은 일반적으로 중도-좌파(Center-left)적 정치성향을 가진 정당이라고 표현되고 공화당 (Republican Party)는 우파(Right-wing)적 정치성향이라고 표현된다.

정치적 스펙트럼은 사람이나 문화마다 정의하는 바가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파적 정치 성향은 1. 사회적 계층과 불평등이 피할 수 없는 점으로 인정 2. 시장경제에 의한 자유경쟁을 옹호 3. 개인의 책임과 사유재산권을 강조 4. 자국 또는 민족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좌파적 정치 성향은 1. 사회적 평등을 강조, 종종 기회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까지 이야기함 2. 소수자 권리를 옹호 3. 시장이나 불평등 문제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옹호 4. 다문화주의, 난민과 이민자 등에 대한 포용적 접근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단순히 한축만으로 설명하는 오른쪽-왼쪽의 정치 스펙트럼 구분은 자칫 현대의 다양하고 복잡한 정치적 성향과 입장들을 구분하거나 설명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의 좌파성향 정당들은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종종 일본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차별적 견해를 보이는 극우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나 전체주의적 성향의 북한, 러시아 등 정부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한편 한국의 우파성향 정당도 세제나 복지 등에 있어서 분배성향 또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지향하는 등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상당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미국적 정치 스펙트럼에서는 자유주의를 좌파적인 성향으로, 보수주의를 우파적 성향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지만 초기 공산주의나 유럽 일부에서는 자유주의를 중도적 성향으로, 보수주의를 우파적 성향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수, 진보, 오른쪽, 왼쪽- 흑백처럼 구분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의 정치이념이 지향하는 바가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모습과 맞는 방향인가 아닌가를 생각해 볼 때 알아둬야 할 개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철학산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