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2개월 차
"세탁소나 할 텐데 괜찮아?"
"제일 잘 돼 봐야 구멍가게 차리던데..."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축복해주는데 적당히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이런저런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주류에 속하지 못 한 채 영영 주변부에 살게 될 거라는 진심 어린 걱정이 내심 재미있었다. 어차피 난 한국에서도 주류가 아니고 주류가 되고 싶지 않은데, 하고 대꾸를 하려다 웃고 말았다. 이민 생활에 대해 별 다른 환상은 없다. 서울에서 다짐했듯 여기, LA에서도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려 용쓰며 살지 않는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길을 따라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헐겁고 성긴 이 도시 어딘가 있겠지, 내 자리
요즘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당분간 살 곳, LA를 알아가는 거다. 사실 LA를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라이브 재즈바나 미술관이 넘쳐나는 뉴욕도, 구불구불한 스트리트에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샌프란시스코도 아닌 LA에서 살게 되다니! 강북의 비좁은 골목들에 익숙한 내게 LA는 지나치다 싶게 컸다. 집에서 한 블록만 나가도 고속도로가 이어지는 거대한 도시에서의 생활은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났다.
미루고 미루다 입국 시한이 끝나기 직전에 들어와 시작된 LA 생활은 뜻밖에 유쾌하다. 연애하고 결혼한 지금까지 몇 년간 LA는 한결같이 투박하지만, 이 도시와 사람들을 생각하면 든든하다. 모두 제각각인만큼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서로 알기에 그렇다. 케이타운에 가느라 이용한 우버의 드라이버 아저씨는 남아공에서 왔고 자식이 7명이라고 했다. 운전하는 내내 아저씨는 아시아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입에 잘 맞는지 모른다며 코레안 비비큐를 극찬했다. 20년 차 이민자이기도 한 아저씨는 내릴 때쯤 두 달 전 LA에 왔다는 신참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LA는 헐겁고 성기다. 다들 달라서 하나의 기준이 없다. 나같은 이방인에게는 차라리 편하다. 크고 더운 팝콘 기계 같은 이 곳에서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는 개인들이 팝콘이 팡팡 튀겨지 듯 사방으로 스치며 산다. 현관문을 나서면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종횡으로 교차한다. 빠른 걸음, 무뚝뚝한 표정으로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칠다고 오해할 때도 있었지만, 이젠 아니라는 걸 안다.
LA, 다국적 '아 마시따'가 넘쳐나는 곳.
LA에 사는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사람들을 좋아라 하게 된 건 여러 대중식당들을 다니면서부터다. 우리로 치면 백반집 정도 되는 다국적 레스토랑들을 가는 게 신나고 즐겁다. (갈 때마다 남편의 한국어 발음을 놀리느라 '아 마시따 먹으러 가자' 하는데 토라지는 척하다가도 웃음을 빵빵 터뜨린다.) 2주 전 금요일엔 남편의 이란계 독일인 동료가 추천한 페르시안 푸드를 먹으러 갔고, 지난주엔 교회 모임의 중국계 부부도 매주 간다는 중국집 'Mama Liu'에 갔다. 태국계 할머니가 하는 'The Saap&Coffee Shop'은 달콤짭쪼름한 맛이 자꾸만 생각나서 벌써 여러 번 갔다.
디저트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서부 날씨는 늘 햇빛이 쨍쨍해서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 먹는다. 여러 아이스크림 집을 다녔지만, 계속 가게 되는 곳은 미국 아이스크림 집 'Salt&Straw'와 페르시안 아이스크림 집 'Shafron&Rose'다. 쓰다 보니 꿀에 재운 오이가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맛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샤프론 담뿍 들어간 장미맛 아이스크림도! 음식이건, 디저트 건 낯선 향으로 가득 찬 공간 한 구석에 앉아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면 어느새 그 안의 사람들이 친숙해진다. 여전히 서울이 많이 그립지만, 내가 살아갈 곳 LA에 조금씩 마음을 내어주어야겠지.
그나저나 아, 차리고 싶다,
내 작은 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