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사람 박코리 Nov 01. 2017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보이차

온탕에 들어갔다 나온 듯 온기가 돌아요.

9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홍대 앞 플리마켓에서 보틀 밀크티를 팔았다. 홍대 앞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동인구가 적어서 막막했는데, 디선가 불쑥 '밀크티 한 병 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병도 안 팔릴까 싶어 걱정했는데 내 딴엔 의외의 선전이었다. 서울에서 있는 동안 놀기도 잘 놀고 묵었던 숙제도 하나 하고 온 것 같아 기쁘다.

아, 기뻤던 나의 젊은 날! 2017년 가을의 토요일!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친구들이 보이차에 대해서 많이 물어봤다. LA에서는 존재감이 없지만, '효리네 민박' 덕분에 서울에선 다들 아는 차가 됐다. 마트부터 심지어는 경동시장까지 가루 보이차, 귤피 보이차 등 보이차가 어딜 가나 보였다. 파는 곳이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뜻 권하기는 조심스러운 게 중국차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이차에 대해서 알기 쉽게 정리해봤다.

생차는 향긋하고, 숙차는 진하니 달큰했던 곳, 홍콩 Lock Cha Tea House 앞에서 (2015년)



온탕에 들어갔다 나온 듯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데워주는 차, '보이차'

왼쪽에서부터 보이 숙차와 생차이다. 숙차도 좋았지만, 생차가 잘 익었는지 전혀 아리지 않고 향긋했다.   

보이차는 중국 운남 지역에서 나는 대엽종, 즉 큰 찻잎을 햇볕에 말린 쇄청모차를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든 차를 말한다. 생차와 숙차로 나누는데 생차는 발효 과정을 아직 거치지 않은 것, 숙차는 발효된 것을 말한다. 생차는 '생'차인 만큼 그냥 먹으면 맛이 세고 아리지만, 10년 이상 자연 발효되게 두면 인위적인 발효 과정(악퇴)을 거친 숙차보다 훨씬 더 향긋하고 달큼하다. 다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발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생차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보이차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효를 거친 숙차를 말한다.



안전하고 맛있는 보이차 고르는 법,
내 후각과 미각을 믿기.

왼쪽부터 보이차 건차, 개완, 찻잔, 공도배, 자사호(시계 방향)

보이차는 향보다는 맛으로 마시는 차다. 그래서 보이차를 고를 때는 꼭 직접 마셔봐야 한다. 잘 익은 보이차는 맛이 쫀득쫀득하니 점성이 느껴지면서 끝은 다. 향은 '악퇴'라는 발효 과정을 거치다 보니 특유의 지푸라기 섞인 흙냄새가 난다. 보이차의 향과 맛을 곰팡이 냄새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차에 곰팡이가 펴 있을 수 있으니 주의! 특히 차를 많이 마시는 어른들 사이에서 보이차의 맛과 향을 곰팡이 냄새가 나야 제대로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다.

잘 익은 보이차는 와인처럼 투명하고 다크초콜릿처럼 색이 진하다. 연하게 우리면 투명한 오렌지빛이 돈다.

차는 기호식품이다. 비싸고 귀하다는 차가 더 맛있거나 몸에 좋은 건 아니다. 마셔보고 취향 따라 고르면 된다.



보이차를 맛있게 마시는 비결은 '6g!'

보이차는 보통 375g씩을 눌러서 '병차' 형태로 유통된다. 그래서 대개는 위의 사진처럼 동그랗다.

보이차는 화선지 비슷한 얇은 종이에 싸인 채로 유통된다. 종이에 싼 채로 보관하되 지퍼백 등에 넣어 습기나 잡내로부터 차단해야 한다. 어느 차나 그렇듯 보이차도 잡내가 섞이면 고유의 맛이 상한다. 따로 특별한 레시피는 없다. 펄펄 끓는 물에 6g을 넣는다. 진하게 마시고 싶으면 우리는 시간을 좀 더 길게 하고, 아니면 몇 초 지나서 얼른 찻잎을 빼주면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전기포트에 100도씨로 물을 끓인 후 찻잎을 넣어 우린다. 병차를 6g씩 떼어 마시다 보면 마지막엔 가루만 남는다. 가루가 된 보이차는 물에 닿는 단면적이 넓은만큼 빠르게 우려 주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보이차는 다른 차와 다르게 꼭 한 번 뜨거운 물로 헹군 후에(세차) 마셔야 한다는 걸 잊지 말 것! 발효 과정에서 쌓인 먼지도 씻어줄 수 있고, 긴압 과정에서 잔뜩 눌린 찻잎을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멋있게 마시고 싶다면, '자사호'나 '개완'을! (그렇지만 주전자도 오케이-)  

북경 차 시장에서 찻집을 찾아 헤메다 들어간 곳. 저 조그만 '자사호'로 차를 얼마나 많이 마셨던지!
사진 속에 보이는 뚜껑 덮인 종모양 잔이 '개완'이다. 차 종류에 상관없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중국의 다구이다.

자사호는 중국 강소성 의흥시에서 나는 원석을 깎아 만든 다구이다. 흙으로 빚어 만든 게 아니다. 매일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전용 수건으로 닦아줘야 곰팡이가 슬지 않고 점점 더 매끈하니 윤기가 난다. 아무 차나 다 우려도 괜찮은 자기 소재의 개완과 달리 자사호는 차맛을 머금기에 하나의 자사호에는 한 종류의 차만 우리는 게 좋다. 철분 성분이 많아서 차 맛을 부드럽게 해주기에 홍차, 보이차, 암차를 우리는 것을 추천한다. 녹차나 우롱차의 경우엔 맛을 밍밍하게 만들 수 있어서 별로다.


*진짜 원석을 쓴 자사호는

자사호는 붉은 원석으로 차호라는 뜻이지만, 원석 색에 따라 여러가지  색이 있다.

밑바닥, 몸통, 주둥이, 뚜껑 다 따로 손으로 만든다. 다 따로 만든 후 이어 붙이기 때문에 진짜 자사호는 언제나 밑바닥에 조각칼 자국이 보인다. 기계에 넣어 돌린 듯 물레 자국이 동그랗게 있는 건 사면 안 된다. 내가 처음 산 자사호가 그랬다. (그래서 버렸다...)

진짜 자사호는 청량한 소리가 나면서 뚜껑이 매끈하게 잘 돌아간다. 처음으로 샀다 버린 자사호는 뚜껑을 끼워 돌리면 쇠 긁히는 소리가 났다.

자사호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형태의 균형감이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특이한 모양이 많이 나오지만, 매일 마시기에는 양쪽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 자사호가 적합하다. 눈으로 확인해도 잘 모르겠다면, 자사호를 뚜껑을 빼고선 식탁 위에 엎어볼 것. 흔들림 없이 바닥에 안정감 있게 선다면 안심해도 좋다.

뚜껑 손잡이에 있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았을 때 즉각 절수가 되는지 확인할 것.



이효리는 빈 속으로 아침에 마시지만,
보이차는 '식후'나 '밤'에 마시면 더 좋은 차 :)

중국에서 보이차는 '다이어트 차'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살이 잘 빠진다는데 살이 빠지는 건 모르겠지만, 기름진 음식과 함께 먹으면 기름기를 싹 걷어주는 느낌이 든다. 소화도 잘 되는 것 같고. 이 포스팅을 쓰는 지금도 점심을 먹고선, 혼자서 보이차를 홀짝이고 있다. 밤에 마시면 차맛이 묵직하니 기분을 차분하게 해준다. 특히나 추운 겨울밤에는 뜨거운 보이차를 호호 불어 마시다 보면, 몸에 열이 훅 돌면서 따뜻해진다.



보이차와 어울리는 티푸드는?
느끼하거나, 달거나, 고소하거나-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처음 알게 된 프랑스식 공갈빵, '슈케트'와 초콜릿이 콕콕 박힌 '뺑오쇼콜라'

보이차는 느끼함을 잡아주고, 달고 고소한 맛을 끌어올려준다. 달달한 디저트는 웬만해선 다 잘 어울린다. 신 맛 나는 과일만 피하면 된다. 몸에 좋고 살이 빠진다니 마시긴 해도 보이차 맛을 처음부터 알기가 쉽지 않다. 보이차 맛이 안 내킨다는 사람이 있을 때, 같이 먹을 다식으로 초콜릿 콕콕 박힌 뺑 오 쇼콜라를 추천한다. 얇은 겹겹마다 버터가 촉촉이 스며든 빵과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고선 보이차를 마시면 입 안에서 같이 살살 녹는다.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주인공이 피아노를 치기 싫을 때면 입 안에 하나씩 던져 넣던 프랑스식 공갈빵, 슈케트도 버터향이 나는 빵 위에 솔솔 뿌려진 우박 설탕 맛이 보이차와 딱이다.



잠을 깨느라 마시는 모닝커피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게 해준다 치면, 굳이 시간을 따로 내서 챙겨 마시는 차는 나만의 속도를 찾게 도와준달까. 바쁠 때나 심심할 때나 짬 내서 갖는 티타임이 큰 위안이 된다. 회사서 답답할 때면, 티백 한 봉지를 얼른 터서 텀블러에 호호 불며 마시곤 했다. 집에서 일하는 지금은 지루할 때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다구를 챙긴다. 손을 쓰다 보면 마음까지 경쾌해진다.



징글징글하게 추울 서울에서의 겨울,

보이차 한 잔으로 따듯하게 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호시절을 지내다, 서울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