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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Jul 26. 2015

꽃 같은 오늘도 유쾌하게, <소수의견>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머리가 아득해지면서 내 자신이 우주에 떠다니는 한 알의 먼지보다도 작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화가 많이 나거나 마음 깊숙이 좌절할 때 그렇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개인 작업을 하면서 혼자서 신나 하던 것이 무색해진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 거기에 부여한 의미들이 너무도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브런치에도 쓰고 싶은 글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 글들을 쓰고 싶었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정치, 경제 뉴스 몇 꼭지에 삼켜진 채 몇 날 며칠을 보냈다. 평소 가슴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치 뉴스에 흥분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내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지만, 요즘에는 그게 잘 안 된다. 가만히 듣자니 듣는 내가 더 이상해질 것 같은 이상한 변명들, (아마도) 거짓말들, 상식 밖의 뻔뻔함 등을 매일 마주한다. 또 상처를 잔뜩 받았나 보다. 아프다, 마음이. 몸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고.  


워낙 예민한 편이라, 영화 <소수의견>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나 남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느끼는 알량한 동정심 같은 감정들을 겪고 싶지 않았다. 상영관이 몇 개 없어 얼마 안 가 영화를 내릴 것 같다는 페이스북 포스팅에 마지못해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내리고 싶었다. 영화표를 끊고서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상영 전에 번개를 주최한 분을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용산참사를 다뤘음에도 영화는 의외로 많이 힘들지 않았다. 종종 유쾌하기까지 했다. 찔끔찔끔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빵빵 터지는 장면들이 제법 있었다. 내 앞자리의 대학생 두 명은 추리물이라도 본 듯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사건 정황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들을 쏟아냈다. 함께 영화를 본 누군가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 비해서 <소수의견>이 가벼워서 아쉽다고  토로했지만, 나로서는 그 덕분에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가난한 지방대 출신 국선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역), 아무데서나 버럭버럭 하는 기자 김수경(김옥빈), 돈 되는 소송만 한다는 치사스러운 변호사 유대석(유해진)이 온갖 위기와 방해를 헤쳐나가는 스토리라인이 통쾌했다. 실제 뉴스에서는 묻혀버린 진실이 영화에서는 간략하게나마 까발려졌다. 현실에서 루저 취급을 받던 철거민이 영화에서는 자식과 가정을 지키고 싶은 가장으로 그려졌다. 안다. 영화니깐 그럴 수 있는 거다.


픽션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희열을 느꼈다. 절망에 절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정의한 현실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을 때에도 나의 '지금, 여기'에서는 웃으며 살아야겠다. 거품 물고 화를 내거나 며칠 굶은 강아지마냥 힘없이 지내는 대신에 오늘을 더 신나고 힘차게 살아야지, 싶다. 그래야 현실이 아무리 꽃 같더라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들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낙숫물도 꾸준하면 돌을 뚫는다. 현실에 매일같이 절망하더라도 매일 다시 일어나야겠다. 나도, 당신도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권력을  꿈꾸는 대신에 잡초처럼 질겨지기를. 살고자 하는 민초의 생명력은 그 어떤 권력보다도  오래간다는 것을 알기에.


오랫만에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를 읽다 자야겠다.


영화를 만든 감독님, 출연한 배우님들, 스텝 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해요!(사진 출처:FB 공식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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