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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Mar 30. 2024

뜨락에 핀 봄꽃, 너의 이름을 보듬는다

우리 고유식물에 새겨진 일제의 잔재

마당에 핀 봄꽃이 예쁩니다. 생기가 전해집니다. 수선화,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큰개불알꽃. 참 다채롭죠? 한창일 땐 수많은 이름을 다 기억하기 벅찹니다. 내 뜰에서 자라도 틀리게 부르미안합니다. 아무튼 불러보면, 더 친근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하네요. 꽃 이름은 어디서 온 걸까요?


수선화(水仙花, Narcissus tazetta var. chinensis)는 봄의 전령사, 나팔수선화와 황수선화의 노란 부관이 봄을 불러냅니다. 조만간 한 꽃대에 여러 송이 방울수선화와 작은컵수선화도 볼 수 있겠죠?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각인되어 서양 꽃일 듯싶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입니다. 물가에 핀 선녀, 내겐 나르시서스보다 수선화가 더 운치 있게 느껴집니다. 어쨌든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아름다움은 천상에 닿아있네요.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 사랑은 지극해서 많은 편지와 시화로 그 마음을 남겼습니다. 제주도 유배 시절 지천으로 핀 수선화에 빠져 지냈는데, 한양에선 흔치 않던 수선화를 보리농사에 방해되는 ‘몰마농[말(몰)이 먹는 마늘. 제주방언]'이라며 잡초 뽑듯 해서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도 수선화 자생지임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홑동백은 간결한데 반해 원예종인 겹동백꽃은 화려합니다. 우리 집 마당 동백나무는 한 그루에서 흰 꽃과 붉은 꽃이 같이 핍니다. 신기하고 상서로운 일이죠. 사계절 윤기가 흐르는 진녹색 잎 사이로 붉은 꽃잎과 노란 꽃가루주머니까지, 충분히 동박새를 홀릴만합니다.


그 정열적인 붉은 색깔의 꽃 때문에 동백은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 <La Dame aux Camelias, 1848年>입니다. 동백을 椿(つばき)이라 부르는 일본에서 이를 ‘춘희椿姬’라고 번역했고 우리는 좇았습니다. 고백컨대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베르디(G. Verdi)의 〈라 트라비아라〉의 여주인공 이름이 춘희라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요즘엔 ‘동백아가씨’로 고쳐 쓰더군요.


동아시아가 원산인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L.)는 일본을 통해 카멜(Kamel)이 유럽에 소개했다 해서 카멜리아, japonica가 붙었습니다. ‘L.’은 학명을 붙인 식물분류학자 린네고요. 먼저 목록에 올린 사람이 그 식물 이름을 영구히 차지하는 바람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처럼 우리는 꽃을 보며 뉜지 모를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양 사람들에게 당한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후, 이런 행태를 그대로 시전합니다.



개나리도 피었습니다.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 있는 ‘암수한그루’로 수술의 모양으로 구분합니다. 무더기로 핀 개나리꽃 속에서 암수를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개나리의 학명은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입니다. 라틴식 표기인 koreana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고유 식물이지요. 나머지는 식물학자들의 이름이고요. 문제는 ‘Nakai’입니다.


나카이는 1909년부터 1940년까지 18번에 걸쳐 한반도에서 식물을 채집하고 그 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나카이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한반도에서 채집한 식물은 약 2만여 점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고유종 527종 가운데 나카이가 자신의 이름을 올린 식들만도 327종에 이른다.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korean rosebay’라 불리는 진달래의 학명에도 ‘Nakai’가 붙어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식물학자들이 우리 고유 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죠. ‘알면 진정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잘 보인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는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의 글처럼, 알고 나니 식민 잔재가 이렇게 뿌리 깊다는 사실에 화나고 서글퍼집니다.


뒷마당에 저절로 핀 큰개불알꽃. 이런 이름을 붙인 것도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입니다. 열매가 마치 개의 음낭을 닮았다 해서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우리라면 이 귀여운 꽃에 차마 그런 이름을 붙이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등의 노력으로 요즘에는 봄까치꽃이라고 불린다네요. 그렇게 고친 이름이 '며느리밑씻개→가시모밀', '소경불알→알더덕', '중대가리나무→구슬꽃나무' 등이 있습니다.


꽃 이름의 아픈 역사를 알고 나니 정원생활자라는 말도 자제하게 됩니다. 정원(庭園)이라는 용어도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생겨난 것이네요. 뜰, 뜨락, 마당 같은 부르기 좋고 듣기에도 정겨운 우리말이 많은데 굳이 정원이라는 일본식 낱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소심한 반감일까요?


나라를 빼앗긴 상처가 들판의 풀꽃에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에 맘이 저립니다. 다시 마당에 핀 봄꽃을 바라봅니다. 알아가며 사랑하고 보니 이제 전과 같지 않습니다. 꽃과 나무의 상처를 보듬는 손길이 애틋해졌습니다. 시골 살며 뜰을 가꾸는 삶의 의미가 한 꺼풀 더 단단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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