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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Apr 11. 2024

마당 있는 집에 살아 일어나는 일들

 이런! 밤새 원치 않는 꽃이 피었다. 동네 개와 고양이가 잔디마당에 똥을 질러놓고 간 것이다. 지나던 앞집 아주머니가 멀뚱히 선 내게 안부를 묻는다. “개똥 때문에 안 되겠어요. 저녁엔 대문을 닫아야지.” 슬쩍 하소연해 본다. “그러게... 돌아다니는 개들이 있어. 거름도 되고 좋지 뭐.” “에? 그럼 좀 나눠 드릴까요?” 아주머니의 놀란 눈이 금세 너털웃음으로 바뀐다.


개미들도 일을 냈다. 그네 기둥 밑동에 이끼가 짙어 발끝으로 툭툭 차보니 푸석거리며 부스러진다. 개미집이 들어선 통나무에 습기가 배어 썩었나 보다. 강풍에 넘어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무래도 그냥 두면 쓰러질 것 같아 들어내기로 했다. 땀 흘려 걷어낸 방부목 지붕은 나무 화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일하는 내내 날벌레가 따라다녔다. 요상하게도 내 눈 속으로 들어오지 못해 안달이 났다. 보안경을 써 헛수고로 만든다. 씻으려 욕실에 들어서니 기다란 지네 한 마리가 세숫대야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놀라 허둥지둥했겠지만 태연하게 변기에 털어 넣고 물을 내린다. 저리 기다란 놈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매일 적당한 일이 생기니 지루하지 않다. 자발적으로 끌려가는 삶이랄까? 어느 날은 쑥부쟁이와 쑥이 번져있고, 잔디밭에 이끼가, 말라붙은 흙이, 낙엽 밑에서 힘겨워하는 새순이 눈에 띈다. 보이는 대로 뽑아내고, 긁어내고, 물 주고, 걷어내는 것을 그날그날 한다. 뜰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나른한 피로가 뿌듯하게 느껴진다.


마당이 매정하게 일만 시키진 않는다. 꽃잔디가 몽글몽글 살이 올라 행운의 노랑나비를 부른다. 엄나무 순도 손짓한다. ‘이번엔 제때 따서 맛을 봐야지’하고 볼 때마다 되뇌곤 한다. 훌쩍 자란 열무와 부추도 입맛을 돌게 한다. 아스파라거스는 파종한 지 한 달 넘어 싹이 올라왔고, 장미조팝은 무려 2년 만에 꽃을 피웠다. 믿고 기다려 주는 마음을 배운다.


목련과 동백이 툭툭 꽃잎을 떨구는 지금, 모란과 작약은 또 다른 큰 꽃을 준비하고 있다. 여린 매화와 산수유가 지고 난 허공은 복사꽃과 자두꽃으로 채워졌다. 튤립과 무스카리, 이베리스와 이스라지, 할미꽃, 돌단풍, 앵초, 매발톱 등 봄꽃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꽃이 아니어도 싹을 틔우고 잎을 내며 힘쓰는 것이 느껴져 식물들을 응원하게 된다.


팍팍한 살림과 모진 스트레스로 삶이 고단한 세상이지만, 봄날은 다디단 초콜릿처럼 다가온다.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살다 보면 길티(guilty)를 플레져(pleasure)가 덮어버리고 만다. 첫 계절이 주는 설레임, 초기화된 자연의 극적인 변화가 혹독한 현실을 잊게 한다. 다시 따뜻해지고, 다시 꽃 피고, 다시 할 수 있음에 안도한다.


“기껏 가지 쳐서 저 구석에 처박았어.” 뭔 얘긴고 하니 윗집에서 쳐낸 개나리 가지를 우리 집 담 밑에 버렸다는 얘기다. 일러바치는 아주머니가 왜 고마울까? 은근히 지켜주는 느낌이다. 개똥도 치우는데... 마당 같은 마음으로 말없이 치우기로 한다. 벚꽃이 하늘을 덮었다. 쓰레기 실린 손수레를 잠시 멈춘다.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꽃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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