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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Apr 21. 2024

뜰이 있어 봄을 나눈다

“에고, 허리야.”

윗집에서 앓는 소리가 들린다. 뒤늦게 텃밭을 뒤집고 있다.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가 되어서야 게으름의 베개를 치웠구나 싶다. 본격적인 농사철을 알리는 시기니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어차피 혼자 먹을 만큼 가꾸는 것이다. 매달릴 필요 없고 욕심부리지 않는 편이 수월하다.


달포간 공들여 키운 상추와 오이, 애호박을 나눈다. “이것도 가져다 심으세요.” 흔치 않은 치커리,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모종도 드려본다. 시골에 온 지 두 해 만에 이웃들에게 모종을 선사할 만큼 기량이 늘다니... 너 대견하다. 우쭐한 뒷모습 들킬세라 부리나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앞집 할머니가 오셨다. 부직포 화분, 플랜터 박스, 수경화분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여기저기 곁눈질로 배운 솜씨인데 당신 눈엔 제법이다 싶은지 볼 때마다 칭찬이다. 그때마다 나는 춤추는 고래가 되고... 윗집과 나눈 모종 때문인가 싶어 얼른 인심 한 번 더 쓴다. 이러려고 넉넉히 심어두었다.


얼마 전엔 동네 분들에게 동백 묘목을 나눠드렸다. 한 가지에서 흰 꽃과 붉은 꽃이 나오는 희귀종이다. 나무 밑에 씨가 떨어져 훌쩍 자란 것을 화분에 담아 드렸다. 사실 이분들이 그냥 받기만 하진 않는다. 특히 앞집은 어디서 선물을 받으면 우리 것까지 꼭 챙긴다. 가끔 식사 직후에 짜장면이나 부침개를 가져와서 난처하기도 하지만...     

 


뜰과 나누는 봄


뜰은 뭘 하든 다 받아준다. 가꿈이 수고롭지 않은 이유다. 오히려 내어주는 것이 훨씬 많다. 벌써 첫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마침 내려온 아내에게 열무김치를 담가달라고 부탁했다. 마트에서 파는 건장한 상품이 아니라 한 뼘 남짓 야들야들한 열무다. 여린 잎과 아삭한 줄기에 손맛이 더해져 매 끼니가 기다려진다.


꽃밭과 텃밭에서 밭일을 한다. 물 주기를 시작으로 잔디밭에 공기구멍을 내주고, 엉뚱한 데서 자란 풀을 매고, 때론 쳐내기도 한다. 묵은 잎을 털어내고, 순을 지르고, 가지를 다듬고, 시든 꽃대를 잘라준다. 약 치기 싫어 수십 마리의 명나방 애벌레를 손으로 잡아 없애기도 했다. 지주대를 세우고, 모종을 옮겨 심고, 비료도 주고, 밥때가 되어 들어오는 길에 아스파라거스 새순 몇 개를 툭 끊어온다.


이런 날을 기다리며 모를 키웠다. 뒤뜰에 해바라기를, 앞뜰엔 오월에 필 꽃들을 심고 내처 텃밭에 양배추와 고수, 옥수수를 이식했다. 어느덧 텃밭이 꽉 찼다. 상상은 앞날에 먼저 가 있다. 아스파라거스 작은 잎에서 수풀을 보고, 삽목한 철쭉에선 꽃동산을 떠올린다. 작은 호박순이 쑥쑥 자라나 거칠게 지주대 멱살을 잡던 기억을 꺼내 든다.


앙증맞은 으름꽃이 땀에 젖은 나를 불러 세운다. “뭐가 그리 바빠서 나를 못 알아보니?” 마침내 껍질을 벗은 알리움, 저절로 솟아난 노랑 뱀딸기꽃 앞에 쪼그려 앉는다. 손길을 주고 결실을 얻는 것에 정신 팔려 가끔 중요한 걸 잊는다. 이처럼 마음이 쨍한 뜻밖의 순간이야말로 뜰 있는 집에 사는 이유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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