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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Jun 05. 2024

나이 들면 어디서 살아야 하나

“답답혀서 못 살어.”


아흔 넘은 할머니에게 도시 사는 딸 네 집은 그런 곳이었나 보다. 여생은 하늘의 뜻이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해낼 수 있으니 몸이 아파도 복작거리지 않는 시골의 삶이 편하다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도시에서 살아야지”


친구들은 다르다. 늙으면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니 도시에 사는 것이 낫다고 얘기한다.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는 한 주변 환경과 인프라, 교통 편의성을 따진다. 게다가 아파트는 관리가 편하고, 환금성이 뛰어난 장점이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은퇴한 동료들의 경우를 봐도 기존의 생활 습관과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주거 변화를 모색한다. 살던 집을 리모델링 한다든지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는 정도다. 아이들의 취업과 결혼 등으로 구성원의 변화는 생기지만 도시를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어디에 살면 어떤가? 살던 데서 사는 것이 맘 편하다. 집을 마련하기도 어렵지만 맘에 드는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사도 어디 보통 일인가? 부동산 물색부터 계약과 수리, 이삿짐 정리까지 아니 그 후로도 안정되기까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실제로 2020년도 65세 이상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현재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의견이 83.8%다.


거처에 대한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가      


그럼에도 ‘노후에 어디서 살까’하는 고민이 계속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겉으론 ‘100세 시대’가 당연한 것처럼 지내지만 내심 걱정스럽다. 당장은 아니지만 노년에 대한 각종 보도와 통계자료를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이미 2005년에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일본에서는 만 75세를 기준으로 전후기고령자를 나눈다. 개인차는 있지만 보통 이 나이가 되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나면서 사회활동에 대한 의욕도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도 노인인구 비율 20%의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와 있다. 2030년 이후엔 욜드(yold, ‘young old’)라 불리는 1차 베이비부머(1955~1964년 출생)가 75세의 문턱을 넘어선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평균 1.9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섰지만 건강 수명이 65세 전후인 것을 감안하면 15년 이상 환자로서, 삶의 질이 떨어진 노후를 보내게 된다. 혼자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노인들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거주해야 한다. 장기간 침대에서 누워 지내는 와상환자가 대표적이다.


한편 노인의 대부분은 혼자(19.8%) 살거나 부부형태(58.4%)로 살고 있다. 여기에 비혼과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 등으로 인해 가족관계가 무너지면서 혼자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예상되는 여생의 일정표를 보면 ‘현재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노인들의 바람은 희망 사항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사는 곳이 삶에 대한 태도와 취향을 반영한다     


젊은 노인들, 욜드는 이전 노인 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자산을 가지고 퇴직하는 세대로, 타인이나 자녀에게 노후를 의존하거나 부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러 굶기도 할 만큼 먹고사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GDP에 따른 대중 콘텐츠의 흐름이 의→식→주의 단계로 흘러간다고 한다. 어떤 문화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소득과 정서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웰빙’이 사회적 트렌드로 급부상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가드닝’은 최상위 레벨에 속하는 콘텐츠로 욜드의 등장과 함께 관심을 끌고 있다. 개개인의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성향이 그들의 경제력과 맞물려 노후의 전원생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을 일이라고만 여기고 자기들 기준으로 쉽게 말하죠. 나는 이걸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형극 씨의 얘기다. 


KBS <다큐 인사이트>에 소개된 안홍선 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의사가 10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랬던 그녀는 40년 넘게 들꽃 정원을 가꾸고 ‘스토리 퀼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얻은 집    

 

은퇴 후,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 보자 맘먹었다. 평생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믿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에 슬펐다. 때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에, 때론 온 힘을 쏟아부어도 꿈쩍 않는 현실에 괴로웠다.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일 년 반가량 5도 2촌 생활을 해보았다. "어라?" 시나브로 시골살이가 즐거워졌다. 슈트를 걸치고 밭으로 갈 수는 없기에 지난 시절의 가식적인 대인관계도 정리했다. 이제 뜨락의 주인이 되어 다시 2년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침내 남을 위한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환갑을 맞았다. 누군가는 인생의 빛나는 황혼이라 말하기도 한다. 앞으로 남은 생의 출발선에서 섰고 은퇴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 딱 좋은 기회였다. 어찌 보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시기가 이때다 싶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호스피스 간병인 출신 심리학자 브로니 웨어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했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용기”였다고 말한다.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은 결심이었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집이고 뭐고 언젠간 떠날 날이 온다. 그때에 혹시 이곳 어느 나무 아래에 아늑한 거처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36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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