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풀꽃 이야기, 그들에게 전하는 고마움
예초기(刈草機)는 이름부터 사납다. 예(刈)에는 乂(벨 예)와 刀(칼 도)가 붙어있다. 예전 이맘 때라면 기계를 둘러메고 뒤꼍에 풀바람을 일으켰을 것이다. 인간의 성정이 원래 그러한지 잡초를 뽑으면 뿌리 끝까지 쑤욱 빼내고 싶고, 칼을 들면 자꾸 잘라내고 싶은 마음이 불쑥거린다. 그 바람에 애꿎은 식물을 다치게도 한다.
풀이 무성하면 기계적으로 쳐냈다. 알지 못하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고, 단정해 보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올해는 달리 맘을 먹었다. 기다려야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고 지켜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열무나 갓이 꽃으로 기억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도 알고 싶었다. 때가 되니 제비꽃을 필두로 괭이밥, 광대나물, 뽀리뱅이, 민들레, 개망초 같은 풀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를 처음 만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큰방가지똥이라고 합니다!” 고개 숙인 풀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큰방가지똥이라고? 내가 가진 책엔 꽃만 보여서 몰라봤다. ‘식물 찾기 앱’으로 확인해 본다. 뾰족뾰족 거친 톱니 모양의 이파리, 키 크고 머리 작은 체구가 썩 맘에 들진 않는다. 방가지는 방아깨비의 방언이다. 방아깨비똥. 수백 년을 그리 불렸다.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여기저기 모르던 녀석들이 우르르 얼굴을 디밀고 인사를 한다. 파드득나물, 긴병꽃풀, 산괴불주머니, 고들빼기, 선개불알풀, 종지나물... 안면은 있지만 이름을 몰랐던 친구들이다. 개모시풀, 개대황, 사위질빵, 개똥쑥, 배풍등, 비수리, 미국쥐손이, 서양꼭두서니는 초면인데 이름도 참 별나다. 궁금해졌다. 어떤 풀들일까?
파드득나물은 줄기 끝에 세 잎이 모여 나와 삼엽채로도 불린다. 유사 참나물이라 해야 할까? 일본에서 들여와 생김새만 비슷하다. 전이나 나물로 손색이 없지만 우리나라 원산의 귀한 참나물을 닮다 보니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 아무래도 상술의 영향이 크리라 생각하지만 ‘참’을 빼앗긴 참나물은 어떤 마음일지?
접두사 ‘참-’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진짜’ 또는 ‘품질이 우수한’, ‘먹을 수 있는’의 뜻을 더하는데 쓰인다. 예를 들면 진달래꽃은 따 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못 먹는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참꽃, 철쭉꽃을 개꽃이라 한다. ‘개-’는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얹는다.
그럼에도 개모시풀은 당당했다. 번지르르한 잎은 나중을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허세다. 모시풀은 실을 잣는데 쓰이지만 개모시풀은 섬유질이 적어 그런 쓸모를 갖지 못한다. 긴 꽃대에 꽃꼭지가 여러 개 있는 풀이다. 개대황도 이런 모양의 꽃을 피운다. 대황(大黃)과 비슷하지만 그만 못하다는 이름. 약효가 그만 못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변비에 좋다.
반대로 설사엔 사위질빵의 효능이 알려져 있다. 추수한 곡식을 나를 때 머슴에겐 단단한 칡넝쿨로, 사위에게는 잘 끊어지는 이 풀로 질빵을 지게 해 붙은 이름이란다. 짐을 덜어주려 한 장모의 사위 사랑과 건너편 머슴의 슬픈 엘레지가 엇갈린 잎 마디에 깃들어 있다. 꽃도 예쁘지만 사연이 식물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면 개똥쑥은 어떤 풀일까? 개땅쑥이라고도 불리는 걸 보면 개똥과는 무관한 듯하다. 중국의 약리학자·식물화학자인 투유유 [Tu Youyou, 屠呦呦(도유유)]가 이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의 특효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했다. 그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배풍등(排風藤)은 중풍을 물리치는(排) 덩굴성 식물(藤)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효능을 갖고 있지만 독성이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비수리는 약재명 ‘야관문(夜關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밤에 서로 잎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정작 성기능 개선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산호초 모양으로 갈라진 잎을 가진 쥐손이풀은 열매자루가 익으면 다섯으로 갈라지는 모양이 쥐의 발바닥과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이며 긴병꽃풀은 동글동글한 잎 모양 때문에 금전초라 불리기도 한다. 길게 땅바닥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개체 수가 많아 보인다. 서양꼭두서니의 꼭두서니는 붉은색을 뜻하는 옛말, '꼭두색'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뜰에서 나는 풀, 소용없는 것이 드물다. 꽃은 물론 나물로 먹고 약재로 쓰며 장아찌나 효소를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다. 따지고 보면 어려운 시절의 음식이 더 다채롭고 몸에 이로운 것이 많았다. 어쩌면 생각 없이 쳐냈을 풀들, 함부로 대하지 않아 내 안의 자연이 좀 더 넓어졌다. 주어진 삶을 지켜낸 뒤꼍의 식물들이 고맙다. 사는 동안에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앞뜰 가득 작약이 만발했다. 이건 또 이대로 좋다. 마치 음악 같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만큼, 취향에 맞는 음악을 발견했을 때도 짜릿한 흥분이 돋는다. 세상엔 좋은 노래가 셀 수 없이 많다. 풀꽃도 그렇다. 맘에 드는 친구들을 새로 알게 되어 호들갑 떠는 요즘이다.
[참고 문헌] 두산백과 두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