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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Dec 03. 2022

음악과 닮은 정원

씨앗 같은 음악, 음악 같은 정원

2020년 가을, 나는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넘게 기거하며 한편으로는 그곳에서 살아 볼까 하는 마음도 한 구석에 간직한 채. 437km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내내 듣던 곡이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Vivaldi : Concerto for 2 Cellos in G Minor, RV 531: I. Allegro >》.


Bonnie Hampton과 그녀의 제자인 김경화가 <California Philharmonic Youth Orchestra>와 협연한 것을 들었는데, 두 대의 첼로가 대화하듯 또 경쟁하듯 긴장감을 유지하며 진행되는 두 사람의 연주는 내 발걸음에 맞는 살짝 느린 템포와, 첼로음이 잘 부각된 사운드가 상쾌해서 특히 들판길에서 바람을 맞으며 혼자 걷는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오솔길에서 듣던 <백예린>의 리메이크 곡 <산책>도 빼놓을 수 없다. 가사가 너무나 선명하게 그리움을 전하고 있어 살짝 감상적인 분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포슬포슬한 음색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음악은 시간 속을 흐른다. 어디에 있든 멜로디를 따라 그 길 위로, 오름과 섬으로 나는 돌아간다.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어느 마을 대신 나는 이곳의 산과 호수 그리고 정원을 택했다. 물론 음악도 같이 왔다. 이곳에서 함께 한 음악은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이다.  Mozart가 죽기 두 달 전에 작곡된 이 곡은 2악장 아다지오(Adagio)》의 서정적인 선율이 영화 <Out of Africa>의 OST에 사용되어 대중에 많이 알려졌다. 마당으로 나서면 독백처럼 들려오는 클라리넷의 음색과 선율이 종이에 물감 스며들듯 나도 정원의 꽃과 나무에 둘러싸여 물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도시에 있을 때 보다 음악을 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공간이 주는 심리적 여유 때문일까? 기후와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직접 느끼기 때문일까? 다양한 곡들로 매일이 채워진다. 비 오는 날엔  Sarah Vaughan의 노래 <A Lover's Concerto>로 더 많이 알려진 Bach의 《미뉴엣 G장조 <Minuet in G major, BWV Anh. 114> 을 듣는다.  바람 부는 날엔 착 가라앉는 Kansas의 <Dust in the Wind>가 좋고, 햇볕 가득한 날엔 Carpe Diem, John Denver의 <Today>를 목청껏 따라 부른다. 흐린 날이면 Antonín Dvorák, 《슬라브 무곡(Slavonic Dances Op.72 No.2)》의 서정적이고 애수 띤 분위기에 푹 젖는다.


이른 봄에는 꽃이 피길 노심초사하며 Chris De Burgh<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Simon and Garfunkel<April Come She Will>을 흥얼거렸고, 한여름엔 호접몽(夢)과도 같은 김동률<여름의 끝자락>을 들으며 나비가 되어 화단에서 즐겁게 놀았다. Bee Gees<August October>를 듣다 보면 어느새 붉은 단풍이 Yves   Montand Les Feuilles Mortes(枯葉)》을 따라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깊숙이 와있다. 


이 겨울 첫눈이라도 온다면 70년대 포크 가수 <송창식><밤눈>이 어울리지 않을까? 

눈발을 흩이고 옛 얘길 꺼내

아직 얼지 않았거덩 들고 오리다 ♬♪

소설가 최인호(음반에는 ‘최영호’로 표기)의 서정적인 노랫말에 송창식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입힌 곡이다.


이웃집에선 트로트 가요가 흘러 넘어온다. 도시에서 서점을 운영하다가 최근에 정리한 분이다. 마당에서 일하실 때마다 허리춤에 노래를 차고 나오신다. 역시 음악은 피로회복제. 트로트 하면 60~70년대 대중음악의 아이콘이자 엘레지(elegy, 悲歌)의 여왕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 <동백아가씨>가 떠오른다. 


이미자의 곡이 Alexandre Dumas, fils의 소설 《동백 아가씨 (La Dame aux camélias)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이 원작 소설을 춘희(椿姬)라 번역하는 바람에(심지어 椿은 참죽나무) Verdi의 오페라 《La Traviata (길 잃은 여인)》가 <춘희>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오페라는 본 적 없어도Brindisi (이탈리아 말로 축배), <축배의 노래>는 익숙하다. 태극전사가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오늘 밤엔 곳곳에서 이 음악이 들리지 않을까?   


Ah, godiamo, la tazza, la tazza e il cantico, la notte abbella e il riso
즐기세 춤과 노래로, 이러한 기쁨이
In questo, in questo paradiso ne scopra il nuovo dì
우리를 낙원으로 안내하리라 이 밤이 새도록 ♬♪


즐거운 기억만 음악으로 되살아 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에는 힘들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꽃이 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무나 풀이 영양이 부족해지거나 기온 조건이 맞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 꽃을 피워 씨를 다른 지역으로 날림으로써 다음 세대에 대비한다고 한다. 100년 만에 상서로운 꽃이 피었다고 감탄하고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꽃이 피는 것은 기온의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와 생존본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도 아픈 추억의 꽃을 틔운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던 날 공교롭게도 저녁 거실에는 Jacques Offenbach《자클린의 눈물 <Les Larmes De Jacqueline>》이 흐르고 있었다. 80년대 말에 무전여행을 하며 두 달 내내 들었던 곡이 Roxette<It must have been love>Debbie Gibson<Lost in your eyes>다. 하나는 이별을, 다른 하나는 사랑에 빠진 감정을 노래했지만 나에게는 노래 가사의 의미보다 쉽지 않았던 여행기간 동안 애썼다고 토닥여주었던 곡으로 남아 있다. 


크로스오버 연주자 Maksim Mrvica<Croatian Rhapsody>는 빠른 연주에서 격정이 느껴지는데 크로아티아의 작곡가인 톤치 훌리치(Tonči Huljić)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을 소재로 비 오듯 떨어지는 폭탄에 잿더미가 된 도시, 그 속에서 살아남은 시민들의 고통과 그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어쩌면 음악은 씨앗과 같다.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마음과 음악에 담아 씨를 뿌리면,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번지고 커져서, 시간이 흘러 다시 음악을 들으면 환호나 격정, 아픔이나 슬픔이 걸러진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인생 곳곳에 심어진 씨앗이 음악이다. 때로는 움조차 틔우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다시 그 시간, 그 향기를 느끼게 해 준다.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듣는다. 정원에 피고 지는, 꽃도 잎도 다채롭다. 특별히 마음 가는 꽃(음악)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꽃(음악)이 반갑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멜로디, 가사, 연주, 목소리 화음이 모두 사람의 마음을 끌리게 하듯 어떤 것은 꽃이, 어떤 것은 단풍이, 어떤 것은 다른 꽃들과 어우러져서, 어떤 것은 그 하나로도, 어떤 것은 열매가, 어떤 것은 수피가, 어떤 것은 향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편협한 취향은 선택하는 쪽이지만 그렇다고 투덜대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그저 꽃은 살아가고, 음악은 노래하고 연주할 뿐이다. 


나는 어쩌다 산과 하늘과 호수가 있는 이곳에 와 있는 걸까. 스스로 한 선택이라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 더 놀랍다.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진 않기 때문이다. 음악은 정원과도 닮아 있다.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 모두가 함께 모여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다. 이 정원이 나를 작곡가로 받아들여 준다면 다양한 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서 함께 어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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