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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Dec 15. 2022

60세가 된다는 것

When I Get Old,  Christopher&청하 

Oh, when I get old

I'll be lookin' back, wishin' it could last forever

Oh, yesterday, seem so far away


Where did it go all of thе nights

All the time we spеnt together?     

Oh, yesterday, seem so far away     


2022.10월 발매한 Christopher와 청하의 듀엣곡 <When I Get Old>를 듣는다. 가사는 안타까운데 자꾸 몸이 까닥까닥 멜로디만을 쫒는다. 아직 늙지 않은 걸까?


60세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전엔 환갑잔치를 하며 장수를 축하했지만 지금의 60세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아직 팔팔한 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환갑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은 크게 세 번의 급진적인 노화 시기를 거친다는 것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의해 알려졌다. 


과학자들이 알아낸 세 번의 노화 촉진시기는 정확히 몇 살일까? 바로 34살, 60살, 78살이다. 34살부터 근육과 뼈가 노화한다. 그리고 두 번째 노화 시기인 60세에 탈모 및 신장과 혈관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78세에는 이러한 노화의 축적인 신체 노쇠현상이 급격히 진행된다고 한다. 단백질 수치의 변화와 관련이 있지만 아직 그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늙는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털이 빠지고 힘이 줄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받아들여야지 피하려 하면 어딘가 고장이 난다. 하지만 늘어나는 것도 있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시간이다. 넉넉해진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재단하는 것에 익숙지가 않을 뿐. 


우리나라 인구 네 명중 하나는 60세가 넘었다. 2022년 11월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145만 명이고 이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구성비는 17.5%(60세 이상은 25.6%)이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평균 83.5세(남자 80.6세)이니 대략 2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컵에 담긴 물처럼 20년이나 남았다고 할 수 있지만 20년밖에 시간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평균치이므로 얼마를 더 사느냐보다는 사는 동안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씨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지나가는 말 비슷하게 한 것이 계속 머리에 남는다. "빅데이터를 연구하다 보면 인생을 미리 보게 되고요. 그러다 보면 뭘 알게 되냐 하면 사람 사는 거 똑같구나... 재산이 몇 조가 있건 연봉이 몇백억이건 다 똑같습니다. 다 애들 걱정하고, 건강 생각하고, 어제 먹은 맛있는 거 얘기하고요. 그걸 알고 나면 세상 사는 게 별게 아니란 걸 알게 되죠." 돈이든 지위든 무엇 하나 확실하게 이루어야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냐 싶어도 아니 설령 이루었다 하더라도 크게 대단할 것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개인의 삶 자체가 중요하고 지금 만족스럽게 잘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어른에 대한 연관검색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걱정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지내온 많은 분들이 과거에 자식들 교육문제로 걱정을 많이 하고 살았다. 물론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아이들이 졸업 후 어디 취직했다는 것이 축하받을 큰 자랑거리였고 얼마 전부터는 결혼문제로 걱정이 옮겨갔다. 이미 출가시킨 분들도 있고 앞두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어쨌든 자녀들 독립의 기준이 결혼이 되었다. 서른이든 마흔이든 결혼 전까지 부모가 돌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고. 아니 결혼에 드는 비용까지도 부모가 신경 써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걱정 때문에 독립한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과 아이 돌봄과 같은 육체적 노동도 불사한다. 


자신이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자녀를 두고 볼 수 없다는 부모들이 많다. 어떻게든 어려움을 헤치고 내 자식이 자신의 훌륭한 인생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기엔 내 걱정이 앞선다. 그들의 가치와 행복을 내가 담보해줄 수 없음을 주지 시킴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독려하기엔 내가 너무 모진 것만 같다. 그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 지나쳐 자식이 곧 나이고 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껏 상황에 이끌려 살아왔다면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옆집엔 도시에서 서점을 4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최근에 접고 들어오신, 72세의 구사장님이 사신다. 가끔 같이 커피도 마시고 수확한 채소나 먹을 것을 나누기도 한다. 은퇴 후엔 도시와 농촌을 보름 단위로 오가고 있는데 최근 친구분이 돌아가셨다. 병환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친구분 중 첫 장례라서 무척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고인이 되신 친구가 이곳에 가족들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요양차 여기 내려와서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여러 차례 물어봤다고 한다. 방은 내줄 테니 본인도 혼자라서 삼시 세끼 차려 먹는 것이 쉽지 않으니 가족 중에 누구라도 같이 오면 어떻겠냐고 한 것이 석 달 전인데 그 새 상황이 달라졌다. 중환자실로 간지 한 달만에 돌아가셨고 그것이 그분의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여행이었다고 한다.  


구사장님도 조금 일찍 귀촌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가끔 육체적 한계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들이 있을 때 속상하다고 한다. 어느새 훌쩍 자라 버린 소나무 가지치기가 엄두가 안나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곰팡이 핀 본채 벽지를 뜯어내고 도배를 해야 하는데 쉽게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말이다. 사실은 10년 전에 내려올 수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것이 후회된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죽음을 앞두고 더 열심히 일을 했어야 했다거나 돈을 더 모았어야 했다거나 하는 후회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게 되면 물건, 재산과 같은 것들에 대한 후회가 아니고 주로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후회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는 회한. 


‘황금빛 화가’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화가 Gustav Klimt(1682~1918)는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는 작품세계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Kiss(1907)나 Tree of Life(1905~1909) 등으로 익숙한 화가인데 우리 집 거실에도 그의 작품 세 개가 걸려있지만 황금색은 없다. Attersee(1900), Farmhouse with Birch Trees(1900), The Park(1909~1910). 세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풍경화이면서 사람이나 동물이 없다는 것과 그림의 대상을 화면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호수의 물결, 자작나무와 풀밭, 나뭇잎이 캔버스의 90%를 차지하고 나머지 10%는 대상을 확인시키고 강조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만 그렸다.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나는 이 호수가, 자작나무와 이파리가 좋다, 보여주고 싶다.  

Klimt 스타일로 찍은 눈내린 마당

나이 육십쯤이면 이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이나 남의 이야기 말고. 60년을 살았으면 어떠한 선택이든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남들의 말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바로 Gustav Klimt의 그림처럼 말이다.


어른의 걱정은 불안함에서 온다.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불안 등 우리는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걱정을 하며 산다. 나중에 부동산 처분이 쉽지 않다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가 용이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시골생활을 극구 말리는 입장도 있다. 1년 전 KBS 인생 정원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안홍선 님의 경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의사가 10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던 그녀가 40년 넘게 들꽃 정원을 가꾸었다.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정원이 예쁘다고 말해주지만, 그 외 한두 명은 '이거 힘들어서 어떻게 가꿔요', '나는 이런 거 못 해'라는 둥 사서 고생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식물 키워봐야 고생만 한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에요. 나는 좋아하기 때문에 일을 만들어서 하고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데… 그런 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을 일이라고만 여기고 자기들 기준으로 쉽게 말하죠. 나는 이걸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형극 정원주 씨의 이야기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나도 60세가 된다. 그냥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맞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남은 여생 20년, 30년의 출발선에서 본격적인 은퇴 후 생활이 시작된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다. 곶감처럼 새로이 익어가면서.


여기서 남은 여생을 잘 가꾸며 살고 싶다. 자신의 다비(茶毘)를 위한 장작을 마련해 놓았던 어느 스님처럼 나도 이곳에 내가 죽어도 자랄 나무 한 그루 아래 수목장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나이가 더 들고 힘이 부쳐 정원이 엉망인 채 지낼 수도 있고, 병들어 다시 도시를 향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어떤 인생의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내가 죽고 나면 휑하니 큰 집이 부담스러워 팔아치울 수도 있고 잘 팔리지 않아 가족들이 나를 탓할 수도 있겠다. 태어날 때부터 내 의사와 무관하게 탯줄에 연결되어 왔듯이 갈 때도 내 장례를 내가 치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Memento mori, Carpe Diem! 60의 나,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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