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이다. 눈이 온다. 눈이 내렸다. 눈발이 날리며 그칠 듯하더니 어느새 다시 쏟아졌다. 망막으로 왈칵 달려드는 하얀빛. 세상에! 마치 처음 마주친 세상인 듯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이런 것이구나. 아무것도 아닌 듯, 아무것도 없는 듯, 눈이 눈을 덮고 다시 쌓이기를 반복하여 두둑한 언덕과 판판한 마당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눈 감아 보지 않는 것과는 또 다른... 그나저나 사람의 눈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이렇게 죽죽 하얀색으로 칠해버리면 근심도 염려도 한순간에 정리되는 것을. 이것이 빼기의 힘인가? 눈으로 덮어 눈에서 지워지니 머릿속이 깨끗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너무 많은 생각으로 우리가 혼란스럽구나 싶다. 지독히 힘들 때 차라리 눈을 감는 이유를 알겠다.
겨울이다. 본래 이런 겨울이 있었다. 떨어지는 눈발의 종착점을 바라볼 수 있는 겨울. 도시에 살며 잊었던 기쁨이다. 베란다 창밖으로 네온사인에 걸리듯 풀풀 날리는 눈발.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눈을 피해 종종걸음으로 걷고 자동차 라이트에 젖은 아스팔트 도로가 반짝이던 도시. 시커먼 먼지와 뒤섞인 채 질척이는 자동차 바퀴에 매달려가던 천더기 날씨. 쌓일까 얼어버릴까 내일을 근심하게 하는 일기예보에 거추장스러움이 묻어나던 눈.
이른 아침 아이 같은 마음으로 내 마당에 내 발자국을 찍는다. 넉가래로 길을 낸다. 드러나는 붉은 벽돌과 시멘트 바닥이 새로 낸 길 같다. 넉가래에 밀려 옆으로 뒹굴더니 도톰하게 쌓인다. 손으로 뭉치니 시원하고 꾸덕하게 잘 말린다. 허공으로 던져 하늘을 보고 벽에 터뜨려 '눈도장'을 찍는다. 똑같은 눈인데 도시와 달리 받아 먹고 싶고, 뭉치고 싶고, 드러눕고 싶다. 눈 내리고 눈 치우고 눈 내리고 눈 치우고를 반복하는 것이 볼이 붉어질 만큼 즐겁다. 넉가래에 뭉텅뭉텅 감겨드는 눈뭉치의 감각을 손끝에 느끼며 마을 어귀까지 눈을 밀었다. 사흘 내내.
새로운 정원이 만들어졌다. 나무들은 제 모양대로 눈을 받아낸다. 둥그런 것은 둥그렇게 삐죽한 것은 듬성듬성, 바위에는 처덕처덕.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눈꽃을 털어낸다. 헉! 아까워서 감히 건드리지 못한 눈 덮인 잔디밭 위를 어디서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터벅터벅 무심히 걸어간다.
먼산에 쌓인 눈은 숲이 우거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여실히 드러낸다. 호수는 밤새 추위에 떨다가 고된 몸을 누인 채 움직임이 없다. 햇살이 나오고 흰 눈에 푸르스름한 빛이 살짝 더해진다. 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 속의 꽃, 물속의 달처럼 저 색깔은 어느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모네가 그린 <까치(La Pie)>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검은색을 다 쓰고 나야 인상주의가 시작된다”라고 했던 그는 설경 속 시시각각 변화하는 흰색과 눈밭에 비친 그림자를 여러 가지 색깔로 표현했다. 절대적인 고정관념의 상징이었던 그림자의 색상을 진실의 색상으로 바꾸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인지 당시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더랬다. 이른 아침 산을 넘어오는 햇살에 비친 눈밭이 서슬 퍼렇게 빛나는 것을 보기 전엔 내 게도 눈은 그저 하얀색이었다.
처마 쪽 고드름 내려온 길을 따라 물방울이 떨어진다. 산들바람이 가지 끝 쌓인 눈을 흩뜨린다. 소나무가 간지럼을 견디지 못하고 눈더미를 툭하고 아래로 떨군다. 나무 그림자가 풀밭에 드리운다. 눈 녹은 자리는 생각지 못한 형태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하얀 도화지에 햇살이 그리는 그림이다.
고맙게도 단순한 세상이 됐다. 저 눈 밑에 있던 흙먼지, 빨간 벽돌과 시멘트 길, 미처 치우지 못한 낙엽, 겨울에도 성성한 이름 모를 풀들과 가지치기 후 떨어진 잔가지, 뒤뜰 화덕에 타고 남은 재. 지붕도 테이블도 바위도 눈 아래 숨었다. 밤새 밤마저 지우려 이렇게 흠뻑 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눈이 녹아 밖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눈이 나를 쉬게 한다.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염려가 돋아날 것이다. 무화과가 얼어 죽을지 모르니 짧게 가지를 치고 흙을 덮어주어야겠다. 배롱나무를 잊었구나, 보온재로 감싸주어야지. 치자나무도 위험하니 투명비닐로 작은 온실을 만들어주자. 부동급수전(不凍給水栓)이지만 마당의 수도도 보온재로 감싸주는 것이 안전하겠지? 쓰지 않고 있는 별채 수도도 조금 열어 놓고 보일러에 부동액도 조금 넣어주어야겠다. 옥상 배수구가 낙엽과 얼음으로 막혀버렸을지도 몰라, 얼른 올라가보아야겠네. 참, 옥상 화분에 블루베리는 잘 살아내고 있겠지?
눈 녹듯 일상은 일상대로 흘러간다. 다만 겨울에는 다른 계절에서 느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특히 눈 비 온 후 맑게 개인 날은 유리잔처럼 쨍한 기운이 있다. 살아있어야 대항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계절의 독기에 더욱 마음가짐이 단단해진다. 어느 책 어느 영상 속에서든 가장 말수가 적은 계절. 하지만 눈이 내려도 컬러가 살아남는 도시의 표정보다 무채색에 가깝지만 자연스러운 자연에 내가 있어 감사하다.
[추기]
며칠째 내린 눈. 그칠 것을 알지만 그치지 않을 것처럼 하염없이 내림으로써 감사함을 넘어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자연은 이런 예상치 못한 힘으로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교만한 짐승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보면 이런 것 같고, 저렇게 보면 저런 것 같은 것이, 세상엔 똑 부러지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눈이 흠뻑 내린 날들이 그랬습니다. 푸근하게 쌓인 눈이 너무 좋아 눈사람도 만들고 사진도 찍고 밖에 나가 넉가래로 길을 치우기도 하면서 이 즐거운 마을 풍경을 글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뉴스에 나온 어느 곳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고 고립되고 폭설로 힘들어 보였습니다. 아무리 읽는 이 몇 안 되는 글이지만 이렇게 좋아라 하면서 쓰는 것이 송구했습니다. 글쓰기를 멈추었습니다.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그분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