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한’과 경기도 다낭시

by 잼스

다낭에 왔음을 느낀다. 뗏 연휴를 앞두고 있음에도 미케비치엔 한인 관광객, 한글 간판과 호객이 넘쳐난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호기를 부리고 있지만, 베트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에서, 불과 60여 년 전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원됐던 나라의 국민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1963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다낭을 통해 베트남에 상륙했다. 주요 공군 기지였고, 많은 피난민들로 인구가 급증했다. 미케 해변은 미군 장교들의 휴양지로 개발되었고, 1973년 패퇴했다. 1975년 3월, 북베트남군의 다낭 점령은 전쟁을 끝낸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미케비치 끝 선짜반도에 우뚝 선 링응寺(Linh Ứng)는 이때 희생된 약 45만 명 보트피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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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만의 미군 다음으로 많은 38만여 명이 파병된 한국군 전투부대(청룡·맹호·백마부대)는 호이안 인근 베트남 5개 성(꽝남성·꽝응아이성·빈딘성·카인호 아성·푸옌성)에 주둔했다. 어릴 적엔 이들 ‘따이한’(大韓·한국군을 지칭)이 '월남(越南)'의 영웅이라 배웠다. 한때 라이따이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더니, 최근엔 청룡부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1968년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2심 판결이 있었다.


물론 군사작전이 아닌 대민작전과 지원이 현지인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파월 군인과 근로자들의 희생이 경제 발전의 계기가 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베트남 역사를 전쟁으로 어지럽힌 프랑스, 미국, 중국, 한국이 이 지역 관광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복잡한 마음이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당해본 나라의 국민이라서 더욱.


참고 : 베트남 전쟁/한국군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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