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피하러 와선 더위를 피하며 살고 있다. 작년보다 길어진 일정 때문이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한다. 그마저도 오전 9시가 넘으면 한쪽 얼굴이 벌겋게 익는다. 빨래를 널면 한두 시간 만에 바짝 마른다. 그 시간을 빼곤 뜨거운 햇볕을 감싸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는 햇볕 알레르기가 심해서, 나는 게으름 병이 도져서 햇살이 뉘엿해져야 움직인다. 꼭대기층 전망의 기쁨도 옥상 열기의 압박감에 누그러졌다. 발코니 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들으며 eBook을 읽고 글을 쓰다가 졸리면 잔다. 빨래와 밥 하기, 설거지처럼 소일거리도 있다. 돌아다녀야 여행인지 타국 하늘 아래에만 있어도 여행인지 잘 모르겠다.
스쿠터의 나라에서 길을 걷는다. 걸음은 작년보다 느려졌다. 속도를 늦추면 위험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쉽다. 그냥 천천히 걷는 게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며 걷는다. 특히 사람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재미와 예의를 위해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 우릴 보는 스쿠터는 얼마나 답답할까.
빌딩 숲을 걷는다. 높은 건물은 호기심을 일으킨다. 훼와 호이안엔 이처럼 높은 건물이 드물다. 하지만 그곳엔 골목이 있다. 둘 다 선뜻 다가서기 어렵지만 높이엔 돈이 들고 걸음도 멈추어야 한다. 고개를 들면 각진 건물이 시선을 막아선다. 그래서 한강으로 간다. 호이안 호아이 강 건너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도 하나의 풍경이었다. 그러기에 한강은 너무 넓다.
시장에서 사탕을 샀다. 인기 쇼핑템이다. 흥정은 늘 1만 동을 깎는데서 비롯된다. 여기저기 기웃거렸고 마침내 성공했다. 상점 주인은 끝까지 1만 동을 두고 머뭇거렸다. 모처럼 고기를 굽는 한식당에 갔다. 실컷 먹고 나니 100만 동이 넘는 식사비가 나왔다. 거스름돈은 1만 동. 놔두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왜 이 1만 동은 어디에선 더 너그러워지는 걸까? 속이 더부룩해졌다.
떡볶이집에 앉았다. 한국에도 있는 대형 체인점이다. 대기실이 장사진인데 우리 빼곤 거의 현지인들이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음식을 즐기는데 오히려 내가 부자연스럽다. 먹는 방법을 잊은 것처럼. 젊은이들이 좋아하니 미래가 밝다는 둥 분위기 깨는 생각에 더 그렇다. 보이지 않는 벽을 쳐 동양인을 밀어내던 서양 식당이 떠오른다. 모두 아는 얘기지만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