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의 세 번째 인연

by 잼스

"이 꽃 이름 알아?" 대문 밖에 붉게 핀 식물을 보고 삼촌이 물었다. 중학생이 되던 해의 늦여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꽃은 개나리와 맨드라미 정도가 다인데...' 삼촌은 빈정대는 투로 "아니, 이 꽃 이름도 몰라?" 하며 샾(#)을 6개쯤 붙였다. 지금도 그 꽃이 뭐였는지는 기억에 없고, 삑사리 났던 삼촌 목소리만 생생히 귓전에 남아있다.


그게 그렇게 혀를 찰 일이란 말인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시답잖은 변명거리가 있긴 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이다.' 도시아이들은 식물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닌가? 나만 그런 건가?


세월이 흘러 꽃 앞에 다시 나를 불러앉힌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빠, 이 꽃 뭐야?" 길가에 핀 꽃 이름을 물을 때마다 "모르겠는데..." 하며 군색한 표정 짓는 날 빤히 바라보던 눈동자. 순간 슈퍼맨의 비애가 스치고 갔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결국 몰래몰래 책을 뒤졌다. 현암사에서 출판한 『쉽게 찾는 야생화(걸어 다니는 식물도감 김태정 박사의 계절별 색깔별 야생화 사전)』가 그것이다.


원래 사전은 책꽂이에 있을 때 가장 볼품 있는 책이 아니었나? 두께나 무게가 있는 책일수록 깨끗하게 관리해 온 것이 내 평소 습관이다. 그런데 하필 그즈음 주 5일제가 시작되어 주말마다 아이들과 자연휴양림엘 갔는데, 그곳엔 어쩜 그리 모르는 꽃이 많은지... 나들이 필수 준비물이 야생화사전이었고, 제자리로 돌아갈 틈이 없어 너덜너덜해졌다.


덕분에 삼촌과 한번 겨뤄볼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았는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봄이면 양지꽃, 얼레지, 기린초, 괴불주머니, 현호색 등 난생처음 불러보는 꽃들에 내가 빠져들었고, 초여름엔 며느리밑씻개와 며느리배꼽, 애기똥풀 등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내심 흐뭇했다. 가을에도 마찬가지.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언어를 통해 존재가 인식된다는 것, 김춘수 시인의 '꽃'은 현실이란 것을. 슬프게도 인간의 관심은 이름 모를 꽃에 닿지 않는다. 아마도 삼촌의 삑사리는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 믿는다). 이제 이곳에서 은퇴생활을 하며 꽃과의 세 번째 인연이 생겨났다. 이전과 다른 것은 자발적 구애라 해야 할까? 꽃씨를 구입해서 파종하고, 모종을 사다 심고, 삽목과 포기나누기를 한다. 진심을 다해 꽃밭을 만든다.




서향과 재스민(화분), 매화, 산수유, 할미꽃, 돌단풍, 수선화(3), 히아신스, 무스카리, 개나리, 진달래, 목련(2), 이스라지, 꽃잔디, 튤립(6), 모과, 자두, 보리수, 배, 사과, 꽃사과, 살구, 딸기, 머위, 매발톱(2), 이베리스, 홍도화, 복숭아, 라일락(2), 동백(2), 골담초, 블루베리(3), 백리향, 황매화, 영산홍, 철쭉(2), 화살나무, 흰등, 모란, 패랭이, 은방울 (이른바 잡초라는 제비꽃, 주름잎, 광대나물, 민들레, 괭이밥, 산괴불주머니)까지.



올 들어 4월까지 차례로 핀 꽃들이다. 괄호 안 숫자는 같은 종이지만 다른 꽃이다. 작년에 이맘때 피었으나 올해 보지 못한 흰장미앵초, 왜성백합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납매, 고광나무, 왜성병꽃처럼 올해 심은 나무엔 꽃이 피지 않았다.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삽목의 기쁨을 알게 해 준 것은 송엽국이고 패랭이도 큰 몫을 했다. 우연히 꽃모종을 판다는 글을 SNS에서 보고 각 세 포트씩 사 왔는데 몇 달 만에 놀랄 만큼 번식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잘라 심으면 알아서 뿌리를 뻗는다. 꽃이 피는 기간도 길어서 5월부터 11월까지 계속 꽃을 낸다. 게다가 추위에도 강해서 노지에서 겨울을 난다. 키 작은 지피식물이라서 다른 꽃들의 시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올해 조바심을 내며 나와 밀당을 하는 녀석은 새깃유홍초다. 제주도에서 처음 보고 눈부신 붉은빛과 앙증맞은 외양에 반했던 기억이 있어 꼭 키워보리라 마음먹었다.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라서 모종을 길러내기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자랐나 싶어도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면 영락없이 한 두 녀석이 비실비실 시들어버린다.


그래도 잔디마당에 새로 만든 꽃밭은 아직까지 무난하다. 잔디를 걷어낸 사질토 위에 배양토를 깔아서인지, 겉흙이 마를 때마다 물세례로 축복한 때문인지, 파종한 대로 이름표에 맞춰 자라고 있다. 세례명은 버베나, 과꽃, 프릴드로즈, 버들마편초, 붉은꽃아마, 아프리칸 메리골드다.


앞뜰과 달리 뒤뜰에선 고전하고 있다. 책과 실제의 간극은 씨앗과 꽃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지난가을에 많은 씨를 뿌렸건만 올봄 너른 꽃밭은 이름 모를 풀들로 가득 차고, 군데군데 자운영과 수레국화가 버짐 피듯 자랐다. 파종했으나 종적을 감춘 녀석들, 에키네시아, 꽃양귀비, 라넌큘러스 등은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흙과 기후를 고려하지 않아 일어난 실종사건으로, 결론적으로 씨앗들에게 못할 짓을 한셈이다.


뒤뜰엔 주로 과실수가 자라고 있는데 흙 속에 돌이 너무 많아 여린 식물이 자라기엔 척박하다. 한 두해살이 화초 입장에선 내던져진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무들은 여러 해 동안 차근차근 속 깊이 뿌리를 박고 땅 주인이 되었다. 뒤늦게 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서 채를 쳐 돌을 골라내 보금자리를 조성하고 있다. 여기에 배양토나 상토를 섞으면 가버린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 한결 덜하겠다.


골라낸 돌을 깔아 보행로를 만들어보니 꽤 그럴듯해서 뻐근한 허리와 무릎통증이 살짝 잊힌다. 씨앗도 노지에 바로 뿌리는 것보다 모종판에서 어느 정도 키워낸 후 꽃밭에 이식하는 게 좋겠다. 황무지 같은 땅에 실험적인 정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열병식처럼 모종판이 주욱 늘어선 모습도 볼만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선룸을 벗어나 마당에 도열시켜도 괜찮다.


모종도 사 왔다. 월동 사투 끝에 장렬하게 전사한 잉글리시 라벤더, 바늘꽃이라 불리는 가우라, 꽃방망이 리아트리스, 앙증맞고 번식 잘하는 플록스. 다년생 화초는 씨앗을 심어도 일 년 후에나 꽃을 볼 수 있기에 몇천 원에 모종을 사서 번식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은방울꽃도 사 왔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미 꽃밭 구석에 숨어 있었다. 내가 이 공간을 아직도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 모두 기억하고 가꾸기엔 넓은 정원이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이름표를 사서 계속 꽂아주고 있다. 마침 Notion을 알게 되어 가든일기를 쓰는 한편 현재 정원에 있는 꽃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다. 파종시기와 개화시기, 키 높이, 월동여부 등과 함께 생장조건 검색자료와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리스트업 하고 있다.


작년에 집 앞 버스정류장에 피어난 프렌치 메리골드를 한 움큼 캐다가 플랜터에 옮겨 심었는데 봄이 되자 사방에 새싹이 돋아났다. 자연발아.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정원이지만 사람 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방법이란 생각이다. 키친가든과 달리 플라워가든은 기간의 정함이 없다. 잘 자라서 모습이 갖춰지면 꽃들이 스스로 화원을 꾸려가리라 믿는다.


씨앗은 획기적인 존재다. 씨앗은 딱딱한 껍질로 보호받으므로 건조에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씨앗 속에 들어 있는 싹은 껍질의 보호를 받으며 발아시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다. 식물은 물이 없으면 말라죽는데, 씨앗은 물이 없어도 긴 시간 기다릴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씨앗에서 싹이 났다는 뉴스를 종종 보듯이 씨앗은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캡슐과 같다. 그리고 오랜 시간 유지된다는 것은 그동안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씨앗이라는 타임캡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전략가, 잡초> 이나가키 히데히로


아침 호수에 물안개가 피었다. 일교차가 크면서 바람 잔잔하고 맑은 날씨에 물안개가 낀다 하니 오늘 낮엔 꽃과 잎들이 햇볕으로 목욕하겠다. 나도 같이.



<참고> 시골에 집을 살 때는 정원과 화단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것은 그곳의 수목과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령이 있고 관심이 깃든 나무는 그야말로 기품 있는 정원을 만든다. 집을 짓고 정원을 새로 조성하려면 몇 년간 휑한 마당을 감수해야 한다. 시간을 사려면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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