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Yuhki Kuramoto
이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은 포클레인을 이용하던가 아니면 아예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일의 효용성을 따진다면 말이다. 일은 지루하고, 온몸이 쑤시며, 땀은 비 오듯 흐른다. 무거운 흙을 채질 할 때마다 나이 듦을 실감하며 닷새 동안 흙을 파고 돌을 골랐다. 길을 낼만큼.
둘 중 하나다. 돌이 많은 흙이거나 아주 넓은 면적을 파헤쳤거나. 애초에 돌을 골라내려 한 것은 전자의 이유였다. 돌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생명경시뿐만 아니라 부양의 책임을 저버리는 짓이다. 앞뜰에 잔디를 걷어내고 화단을 만들 수도 있지만 뒤뜰에 과실수만 있는 것은 좀 심심했다. 철쭉이 지고 나면 쑥부쟁이가 필 때까지 온통 푸른빛만 감도는 북쪽 주방 창문이다.
처음부터 흙속 자갈로 길을 깔겠다는 생각을 했겠는가? 삽과 작은 괭이 하나 들고 나설 때만 해도 사실 한나절 일거리로 여겼다. 웬걸 삽을 찔러보니 제대로 박히지 않는다. 빽빽한 돌이 삽날 끝을 튕겨낼 때마다 턱턱 맥이 풀렸다. 굳이 이곳에 꽃을 심을 필요가 있을까? 갈등은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하는 데까지만 하자. 힘들어서 못하겠으면 없던 일로 하기로. 괭이로 돌밭을 파헤치고 작은 화분에 담아 흔들어서 흙과 돌을 분리하길 두어 시간, 작업 진도는 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처럼 척박한 땅에 뿌리박고 크게 자라 해마다 열매 맺는 과실수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했다.
꽃들이 편히 자라려면 최소 50cm 깊이는 파내야 한다. 근육이 놀라서 허리가 끊어질 듯 당기고 손이 저절로 떨려 물 잔을 놓칠 뻔했다. 쌓이는 돌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이 없었다. 다시 포기의 유혹이 귓전에 넘실댔다. '하루종일 이 작업만 할 순 없잖아. 화초와 채소에 물도 주고, 송홧가루 너저분한 집 청소도 해야지. 감자 줄기도 솎아내고 풀도 뽑아야 해'.
둘째 날 뒤뜰로 가면서 내 발과 머리는 계속 타협하고 있었다. 밀짚모자 아래서 눈을 꿈벅이며 좀 더 쉽고 빠르게 할 방법을 궁리하느라 걸음을 늦추면서. 궁즉통이라. 창고를 뒤지다가 득템을 했다. 플라스틱 우유 박스! 쇠스랑도 함께. 한 번에 서너 삽을 퍼담아 채를 치니 한결 일이 빨라졌다. 골라낸 돌로 보행로를 만들어보니 그럴싸하다! 지하의 돌을 끄집어내 지상의 길을 만드는 재배치의 미학. 돌밭 그레샴의 법칙이라 해도 좋고.
밉고 거추장스럽던 돌이 이젠 반갑다. 고되긴 마찬가지지만 꽃밭 만들고 길을 내는 일타쌍피, 일거양득, 꿩알, 님뽕의 기쁨에 샘솟는 아드레날린의 품에서 쉼 없이 우유박스를 흔들어댔다. 고운 흙보다 자갈길이 만들어지는 가시적인 성취감은 나를 무아지경의 단순반복 노동으로 이끌고.
사흘이 지나니 점점 일이 손에 익고 나흘째부턴 음악에 맞춰 콧노래 흥얼거리며 허리 아프지 않도록 제법 완급조절도 한다. 여유로운 마음은 산을 옮긴 우공이 실존인물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에 이른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정원을 가꾸다 보면 온통 관심과 사랑이 식물의 성장에 쏠려, 마치 갓난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사랑의 장애물을 걸러내는 중이다. '돌'. 그런데 훼방꾼으로 알았던 녀석과 신박한 로맨스가 생겨났으니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혼동이 생긴 것.
얼마 후엔 자갈길 끝, 새로 만든 꽃밭에 꽃들이 자리 잡을 것이다. 사랑해야 할 것은 정원이며 꽃만이 아님을 돌을 고르다가 깨우친다. 그러니 다시 보자, 어디 재배치할만한 것들이 숨어있지 않은지. 자른 나뭇가지로 만든 화단 경계목, 낙엽과 잡초로 만든 부숙 퇴비, 삽목과 포기나누기도 로맨스가 필요하진 않을까?
어느덧 닷새, 일이 마무리되어 가니 "좀 더 할까?" 하는 오만함이 고개를 쳐든다. "이쯤에서 끝내. 그렇지 않으면 네 오른손 중지의 방아쇠수지증후군은 평생 널 괴롭힐지 몰라. 통증만이 아니야,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 때문에 불경스러운 손짓으로 오해를 받을까 봐 그러지." 요즘 혼잣말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