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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Jul 15. 2023

비로소 알게 됨

Have you ever seen the rain, CCR

너무한다 싶을 만큼 비가 내립니다. 퍼붓고 있어요. 눅눅한 습기에 왠지 모르게 불쾌해지고요. 할 수 없이 온종일 집안에 머물게 되는 것도 답답하네요. 갑작스레 차양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이제 지겹고 두렵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물을 하늘이 머금고 있음에 새삼 놀랍니다. 


불행히도 괴담이 맞았습니다. 7월 한 달 내내 비가 온다던 AI의 예측을 기상전문기자는 괴담이라 웃어넘겼더랬습니다. 지난 6월 25일 이후 한 달 가까이 단 나흘만 맑은 날씨였으면 괴담은 아니지 않은가요? 요즘 들어 염려를 괴담으로 치부하는 소리를 자주 들으니 그 미욱한 태도들에 더욱 갑갑해집니다.


비가 샙니다. 선룸 차양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맑은 날에 실리콘과 방수제로 보수를 했지만 미숙한 솜씨는 금세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비가 오는 동안엔 빗물을 받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네요. 화목난로 굴뚝으로도 비가 들이쳤는지 방울방울 물이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연통을 막아버릴 수도 없어요. 꿉꿉한 실내 습기를 날리기 위해선 때때로 불을 지펴야 하기 때문이죠. 


거실 바닥에 물기가 흥건한 날도 있었습니다. 습한 기운 때문에 곳곳에 피어나는 곰팡이,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늘어가는 거미줄, 비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듯 늘어난 날벌레... 축축한 날씨 때문에 생각지 못한 불편함이 바짝 다가앉습니다. 날도 궂은데 혼자 해결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귀찮고 걱정스러운 거죠.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선 이처럼 궂은 일을 누군가에게 전가했던 것 아닌가. 그동안 나는 스스로 해결하는 태도를 잃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돈과 다른 이들에게 의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외면했던 스스로 살아가는 힘 말이죠. 시골생활은 잃어버린 나의 존재성을 다시 깨울 수 있을까요? 탈피한 완전체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노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요? 



간밤엔 정전이 있었어요. 한동안 멍하니 암흑 속에 놓였습니다. 잠깐이지만 그 어둠 속에 끼인 것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휴대폰 불빛을 비춰가며 초를 찾아 켜고 한밤중이지만 한전에 신고를 했습니다. 커피물을 끓이려다 멋쩍게 돌아서고, 노트북을 켰지만 와이파이가 안 돼서 다시 껐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걱정스러운 맘에 냉장고의 몇 가지 음식물을 냉동실로 옮긴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한 시간가량 지나 삑! 하고 다시 들어온 전기에 가전제품이 다시 작동했습니다. TV 속에선 곳곳에서 일어난 산사태와 혹시라도 하천이 범람할까 노심초사하는 뉴스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TV 화면이 비를 맞지 않듯 실감하지 못하고 간곡히 듣지 않습니다. 그저 전기가 복구된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오히려 안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젖지 않고 다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불행이란 조금 전의 갑작스런 정전같은 것 아니겠어요? 어쩌면 장대비를 피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죠. 무탈하고 평범한 삶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불이 들어오자마자 잊다니. 아둔한 인간의 시선은 그처럼 먼데까지 다다르질 못합니다. 조그만 땅덩어리, 폭우와 산사태 속에도 어딘가에선 프로야구 경기에 열광하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모습이니까요.



새벽녘 폭우에 불어난 계곡물은 맹렬하게 호수를 향해 흘러갑니다. 물살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기세에 내가 빨려 들어갈 듯해서 한 발 뒤로 물러섭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물만 바라보다간 어떤 위험에 휩싸일지 모를 일입니다. 모진 날씨든 화창한 날씨든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언제든 내게도 역경이 생길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은 놓지 않아야겠습니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 식물들이 버텨내는 모습은 대견하지만 안타깝습니다. 잠깐이라도 비가 잦아들면 어느새 나타나 먹이를 찾는 젖은 새들도 애처롭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고 사소한 것들은 잊히겠지만, 시골생활 첫 해에 맞이한 긴 장마와 그 시간을 버텨낸 자연의 움직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가뭄과 뙤약볕에 비가 오길 고대한 것이 언제였나 싶네요. 앞으로 땡볕에 지칠 때는 이 긴 장마를 떠올려야겠습니다. 그러면 더위가 한풀 꺾이지 않을까요?  


I want to know, Have you ever seen the rain

Comin' down on a sunn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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