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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스 Aug 02. 2023

각자도생

Questions, Manfred Mann's Earth Band

이번엔 폭염이다. 지긋지긋한 장마에 진저리 치니 '그래, 너희가 원한 것이 이거냐' 하며 불볕을 쏟아붓는다. '며칠 그러다 말겠지' 한 것이 예상을 훌쩍 넘어서자 서서히 폭우와 장마 때의 데자뷔와 불안감이 가슴을 조여 온다. 유례없는 폭우와 산사태로 지치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햇빛은 안도와 위로, 재기의 시그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염 속 땡볕은 온 세상을 태울 듯 이글이글 배신하며 좌절로 몰아간다. 자연의 린치. 


긴 장마와 폭염은 생체 리듬을 깨고 생활 의욕을 후줄근하게 만들었다. 쏟아붓는 비 때문에 그러던 것이 이젠 태양의 열기 때문에 문 밖을 나서지 못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찜통더위에 조금만 움직여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 불쾌하고 강렬한 햇살에 감히 하늘 쪽으로는 고개를 쳐들지 못한다. 잠시 장마에 망가진 화단을 돌보러 나갔다가 따가운 햇볕에 서둘러 집안으로 피신했다. 속속 사망자가 늘어나니 타는 듯한 열기가 두렵다. 


벌에 쏘였다. 벌집은 나무나 처마처럼 높은 곳에만 있는 줄 알았다. 장마 지나 텃밭에 무성해진 풀을 뽑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손등에 불똥이 튄 듯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지? 했는데 벌들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서야 알아챘다. 은근한 통증이 밤새 계속되더니 양손이 붉어지고 퉁퉁 부었다. 호흡곤란이나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벌침에 안전한 체질은 없다고 하니 유념할 일이 하나 늘었다. 혼자라서 위험할 수 있다.


독거 생활은 자신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를 유지하거나 바라보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능력말이다. 물론 이 같은 의도적인 고독에는 일정 수준의 건강과 돈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단체든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적어도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끈 말이다. 사회와 단절된 나만의 생활은 단단한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고립이니까.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자극 없는 생활은 대체로 평온하고 행복하다. 먹고사는 것의 수고로움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먹으려면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채소를 씻고, 도마를 꺼내 칼로 다듬고, 불을 키웠다가 줄이고, 정량의 양념을 순서대로 섞어야 제 맛이 난다. 스스로 맛을 낼 줄 알게 되면서 혼자 사는 생활에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지 다시 걱정스러워졌다. 나를 지키는 것이 염려스럽다.


긴 장마에 송엽국이 녹았고 루피너스는 피기도 전에 이파리가 사라졌다. 오이와 호박잎은 누렇게 떴고 비덴스, 스토크 등은 핀지 얼마 안 돼서 지고 말았다.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마당의 꽃도 그러한데 '내가 가도 상황은 달라질 것 없다'고 외면하고, 연이어 상처를 덧나게 하는 말과 행동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기가 차다. 언제나 당하는 것은 팍팍한 삶 속에서도 하루하루 내일의 희망을 품고 지내던 소시민들이다. 


폭우에 마당이 파이고 두더지굴이 곳곳에 드러났다. ‘논어 자한(子罕)’에서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고 인간의 본심이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남을 꼬집었다. 빗물에 파인 굴에서 그 속을 들여다본 것 같다. 그래도 강한 생명력을 가진 메리골드와 버들마편초는 다시 꽃을 피우고 오이와 호박도 말라붙은 줄기에 새로 열매를 단다.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의 몸부림이다. 


2017년 3월 15일 손석희는 '권력'을 주제로 한 앵커브리핑에서 "그 모든 질문의 본질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당신은 우리가 부여한 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중략>... 이것은 시민 사회로부터 대신 질문할 수 있는 권력을 위임받은 저희 언론도 역시 받아야 할 질문입니다"라고 멘트를 마무리했다.  


이 날 JTBC '뉴스룸'의 엔딩곡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Manfred Mann's Earth Band>가 1976년에 발표한  'Questions'였다. 


The power that bore me had left me alone 

나를 홀로 남겨 두고 

To figure out which way was right 

어떤 길이 옳은지 찾아내도록




은퇴 후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할 때 속마음은 원 없이 게으른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수십 년간 내 안 깊숙이 날염되어 온 자책하는 습관을 탈색하고 싶었다. 집단이 만들어낸 표준적인 삶의 태도와 양식에 순응하느라 60년 가까이 나를 질책했으니 이제 됐다. 강요당하지 않는 삶. 우선 시간부터 내 맘대로 쓰기로 했다. 그 좋은 음악 듣기도 글쓰기에게도 심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내킬 때까지 기다려주는 거다.


그런 여유로움이 요즘 같아선 하루를 살아낸 것도 운 좋은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엇을 갈구하기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아이러니하게도 폭우로 일어난 재난들이 그런 마음을 '또다시' 일깨웠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가는 존재다. 삶이 불확실하더라도. 올여름 날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한다. 끝장을 보여주는 듯하다. 태풍이 남아있다. 각자도생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독한 여름이다.




프렌치메리골드 꽃말 :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버들마편초 꽃말 :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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