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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Nov 18. 2023

글쓰기 - 정신줄 놓지 마!

글과 생각 (1)

한국 사회에서 수능 성적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불수능을 치러낸 학생들을 곧 만나게 될 텐데 이 학생들은 문해력이 어느 정도일까? 문장력은 또 어느 정도일까?


두 단락으로 구성된 아래의 글을 읽어 보기 바란다. 혹시 나는 이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실제로 이 글을 대학생들에게 읽히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이 거의 없다. 2년 동안 딱 1명 만났다. 대학생들의 문해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다 이해가 되는가? 스스로 대답해 본 후에 글을 계속 읽어 보길 바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대답했다면 대학생들의 문해력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자.


위 글 첫 단락의 두 문장까지의 내용인즉슨 이렇다. '고양이 밥 주지 마. 그거 남으면 다른 사람이 치워야 돼서 고양이가 위태로워지거든.' 여기까지 아무 문제 없이 이해가 되는가? 그렇다면 다시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평소 글을 읽는 습관도 점검해 보기 바란다.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남은 고양이 밥을 다른 사람이 치우는데 고양이가 위태로울 게 뭐란 말인가?


수업 시간에는 위 글 전체에서 문장/단락 작성 관련 문제점을 따져본 후에 학생들에게 자연스러운 한 단락으로 다시 쓴다고 생각하고 말로 풀어 보도록 한다. 5분 내에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학생이 한 반에 2명이 안 된다. 여기서 자세한 강의 내용을 풀어 놓자는 건 아니니 넘어가자.


핵심은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에는 지속적인 주의(자가 점검)를 요한다는 점이다. 위 글에서 주장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저렇게 적어 놓았다고 해서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대학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글을 쓰면서도 자신이 그런 줄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는 거다.


실제로 대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여 주면서 그런 사실을 설명해 주면 학생들이 문제 의식에 대해서 더 잘 공감하게 된다(그렇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래 예를 보자. 서울대학교 학생의 보고서다. 이번에는 좀 따지면서 읽어 보길 바란다.

서울대학교의 일부 하위권 학생들의 보고서가 아니라는 점만 언급해 두겠다. 수능 최상위권, 각종 논문 작성 유경험자, 기타 다양한 전형에서 특출났던 학생들 상당수가 이런 수준의 문장력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고양이 밥 주지 마시오' 글과 수준 차이가 느껴지는가?


어떤 수준이냐고? 보고서의 형식에 맞춰 쓴 것 같아도 근본적으로는 위 '고양이 밥 주지 마시오' 글과 다르지 않은 수준이라고나 할까? 왜 그런지를 일일이 다 설명하려니 무지무지 귀찮으니까 '고양이 밥 주지 마시오' 글처럼 시작 부분만 간단히 언급해 볼까 한다. (그래도 사례의 보고서를 읽어 보면 적어도 연구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을 거다.)


"한국이 선진국가로서 성장하면서"부터가 문법적으로는 잘못됐다. '로서'가 아니라 '로'다. 카페에서 멍때리기(카멍?) 정도라면 몰라도 '카페=여가생활'은 말이 안 된다. 게대가 '대표'씩이라니! 세 번째 문장. "한국에서 유명한 4대 커피 전문점에서는 ~ 금액의 커피를 팔았다"도 비슷하다. 보고서 주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라. '커피 전문점'과 '커피 전문 브랜드 업체'는 다르다. 한국의 4대 유명 카페가 하필 서울대학교입구역 근처에 다 있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자기가 무엇을 분석하는지 정확하게 개념을 못 잡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위에서 제시한 두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읽어 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수 있는데, 사실은 말에 조리가 없다는 거. 어쩌면 우리의 일상 대화도 이런 식의 대화들로 가득한지 점검해 볼 일이다.


텍스트와 생각, 곧, 언어와 사고는 점수-돈오 관계에 있다. 생각은 돈오적이고 글쓰기는 점수적이다. 생각은 크고 문장은 작다. 코끼리를 통째로 냉장고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건들을 아무리 던져도 정돈되지 않는다. 커다란 생각을 작은 텍스트로 표상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순리와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 순리와 질서는 글쓰기 시간에 열심히 가르치고 배운다.


글쓰기 시간에 정작 강조해야 할 요점은 따로 있다.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에는 지속적인 자가진단(자기검열)이 필요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배운 대로 행해야 한다는 거. 법을 알아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 글쓰기의 순리와 질서를 알아도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신경줄을 놓아 버릇하면 자기도 모르게 무뎌져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된다.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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