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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Mar 02. 2024

본성에 순응하는 글쓰기 (1) - 사고 단계

글과 생각 (2)

글 쓰는 방식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개인에 따라서 더 쉽게 쓸 수 있는 글의 장르가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 글 쓰는 사람들을 비교해 봐도 그렇고 학생들을 지도해 봐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전체적인 틀을 잡는 데 시간이 많이 들고, 어떤 사람은 세부 내용을 채우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어떤 사람은 수려한 문체를 구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논리적이고 딱딱한 문체만 구사한다. 논문을 쓰는 동료나 학생들을 보면 글을 쓰기 이전에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느끼게 된다. 사람마다 자기의 본성과 어울리는 혹은 본성을 반영하는 사고의 패턴과 표현의 패턴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대략적인 결론과 목차를 설정하고 세부 내용을 채워가는 식으로 글을 쓰는 편이다. 복잡하고 내용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글을 쓰는 경우에는 글을 쓰는 도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목차를 수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결론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관 의존적인 사고를 하고 직관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MBTI 심리 유형으로는 NT형인 듯하다.)


'글쓰기'라는 행위의 필요를 의식하고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쓰기의 왕도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훈련을 거듭하고 고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본성을 우선 파악해 보면 어떨까?


'글쓰기'라는 행위는 반드시 그 내용이 되는 '생각' 혹은 '사고'가 전제된다. 한데, 글로 쓸 만한 '생각' 혹은 아이디어는 대체로 불현듯 떠오른다. 잠자리, 산책 코스, 용 쓰는 자리, 멍 때리다가, 심지어는 꿈자리처럼 정작 노력할 때는 떠오르지 않다가 뜬금포로 터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뜬금포는 평소에 두뇌에 주어진 입력값들이 평온한 중에 정리가 되어 도출되는 출력값인 경우가 많아서 그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 과정을 알면 생산적인 사고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과정을 알기 어려우니 아쉬울 떄가 많다.


뜬금포로 터지는 생각의 형성 과정에 관한 뇌피셜 한 가지를 언급해 볼까 한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까? 나와 주변 사람들을 비교 관찰한 결과로 얻은 뇌피셜이다.


생각이 정리되는 과정은 알 수 없지만 평소 입력값으로 집어 넣는 데이터의 유형이나 입력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연구자는 연구 조사를 할 때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선호하는가 하면 또 어떤 연구자는 키워드만 맞으면 닥치는 대로 읽는다. 나중에 나오는 결론은 대동소이한데 입력 방식은 다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은 평소에 말하는 방식도 그 결대로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런 정보를 입력값으로 찾아 헤매고 두서 없는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은 두서 없는 정보를 마구잡이로 입력한다. 아마도 그들의 두뇌는 그런 유형의 정보를 선호하는 모양이다.


대형 서점에 가서 특정 주제와 관련된 교양서를 몇 권 찾아서 읽어 본 적이 있다면 정보의 유형에 차이가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은 한참 읽어도 도대체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쉽게 파악되지 않을 뿐더러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책이 있다. 반대로 어떤 책은 너무 깔끔하게 딱 떨어져서 해당 주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왜 그런지 몰라도 프랑스, 이탈리아 출신 저자들과 영국, 미국 출신 저자들의 글이 서로 다른 양상을 띠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를 '지중해 유럽식', 후자를 '영국-미국식'이라고 명명해서 분류한다. 독일 저자들은 두 유형을 넘나든다. (이런 경험은 번역 과정에서 생긴 문제일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 문헌이 내가 생각하고 글을 쓰기에 이로운지를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 개인적으로 내 경우에는 블로그에 글을 하나 올리려고 해도 어떤 유형에 속하는 문헌을 많이 접했는지, 혹은 어떤 유형의 문헌을 참고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쓸 수 있는 글의 양에 많은 차이가 생긴다. 체계적이고 딱 떨어지는 내용을 다는 문헌들을 읽을 때 빈틈이 더 잘 보이고 새로운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체계적이고 빈틈이 없어 보이는데 빈틈이 더 잘 보인다는 말을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세상에 완벽한 논의가 있을까?) 그런데 내 주변에는 그렇지 않은 동료도 있다. 무언가 빈틈이 많아 보이는 내용의 문헌을 읽을 때 쓰고 정리할 거리를 더 많이 발견하는 동료도 있다. 내 경우에는 그런 글은 조금 읽다가 이해가 안 되니 던져버린다. 논문의 경우에도 피인용지수가 높은 어떤 논문은 내가 보기에는 설명도 애매하고 논증도 엉성한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동료는 처음부터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뭐든 파면 나온다는 신념으로 우선 키워드를 정하고 문헌을 조사하고 정리하면서 주제를 탐색한다. 주제 탐색이 끝날 즈음에는 글이 완성된다. 이런 친구들은 글을 쓸 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신기하기 그지 없다. 저런 식으로 글을 쓰면 지쳐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싶은데, 연구 성과는 꾸준하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도출해 낸 팁이다. 글을 쓰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정리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이유는 충분한 정보가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분한 정보가 입력되면 입력량에 준하는 정도의 결과물이 나오는 게 인간의 두뇌라고 믿는다. 자신의 두뇌에 충분한 입력값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는 사람의 본성에 따라 효율성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요컨대 자신이 읽고 학습하는 텍스트가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두뇌가 선호하는 패턴으로 정보를 입력하면 글로 쓸 만한 정도로 정리된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인출할 수 있지 않을까 게 나름의 뇌피셜이다. 자신의 두뇌가 정리하고 재구성하기에 안성맞춤인 '선호되는 정보 유형'을 파악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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