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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Jul 12. 2024

"닭이 먼저냐 계란가 먼저냐" (2)

- 어휘부와 관용구

'관용어'란, 쉽게 말해서 '통째로 암기하고 있는 표현'이다. 흔히 말하는 영어의 'idiom'이 관용어인데 그 범위를 어떻게 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언어학적으로는 간단치 않을 수 있다. 관용어의 본질적 속성은 [+통째로 외움(wholly-memorizedness ?)] 정도라는 인식이 있으니 연어, 속담, 격언 등도 관용어의 범주에 넣을지 말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그래 보이지만 우리 인간의 머리는 언어, 속담, 격언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고, 인식적 경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관용어와 연어도 느낌적인 느낌으로 구별해 낸다. 왠지 그렇게 구별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이 사람마다 달라서 그 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고나 할까? 참 신기한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저렇게 해서 우리는 관용어라고 할 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미역국을 마시다' 등과 같은 속담도 아니고 격언도 아니고 연어도 아닌 어떤 표현들을 전형적인 것으로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는 관습적 함축(conventional implicature)은 아니지만 그런 함축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결과가 관용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아무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같은 관용어는 통사적으로 어떻게 처리될까?


가장 일반적인 설명 혹은 이해는 어휘부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에 따라서 통사부에서 가져와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계속 그에 반하는 현상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아니 그에 반하는 현상들을 관찰한 나로서는 계속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전에 올렸던 글("닭이 먼저냐 계란가 먼저냐" (1) (brunch.co.kr))도 의문을 갖게 하는 한 사례다.


흔히 알려진 관용어의 음성 형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이고(이하 '1형'이라 함)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가(이하 '2형')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1형을 압도적 고빈도로 경험한다. 누군가는 2형에 고빈도로 노출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개인 간의 차이는 어휘부의 개인 차에 관한 논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1형이 자연스럽고 익숙하니까 <"닭이 먼저냐 계란가 먼저냐" (1)>에서 다루었던 발상이 가능했다. 만약 2형에 익숙한 화자라면 '닭이 먼저냐 달걀 먼저냐'와 같은 발화 실수를 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걀이'(1형)의 조사가 '이'이기 때문에 '계란+이'는 문법적으로 자연스러운 구성이다. '달걀이'가 어휘부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달걀' 대신 '계란'이 나타났을 때 어색해진다. 그러니 주격 조사가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어휘부 내에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관용어가 어휘부에 저장될 때 '통째로 암기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제기하기보단 그렇다고 전제한 결과인 셈이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의문점이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서 '달걀' 대신 '계란'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가? 어휘부에 통째로 저장되어 있다면 (음성) 형태가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달걀'이 '계란'으로 바뀐 것은 형태 이전에 의미 혹은 개념적 형태로 저장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 형태가 의미, 개념, 관념, 혹은 그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어된 형태의 시냅스 활성화 상태일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닭이 낳은 알을 우리는 '달걀' 혹은 '계란'이라고 흔히 바꿔 말하니까 의미가 우선 활성화된 후에 이에 해당하는 어휘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달걀' 대신 실수로 '계란'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관용 표현이 통째로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용 표현이 나타내고자 하는 발화 의도(의미)가 우선 활성화되고 이를 표현하는데 최적화된 값(가중치 부여 등등의 신경망 작용에 의해 결정된 최적의 값)에 부합하는 언어 기호 즉, (음성) 형태의 연쇄 '닭+이+먼저+냐+달걀/계란+이+먼저+냐'를 통사적으로 조합하는 활성화 과정(통사 처리)을 거친 것이 아닐까? 아래 정도로 정리할 수 있으려냐?


        의미/개념 층위:                                [[ 알 수 없는 문제]]

                                                                                 ↙           ↘

               통사 층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or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

                                                 <1>                                                     <2>

                                                                [도식 1]


<1>과 <2>의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떤 이유에서인지 <1>을 선택했고, 이를 다시 통사적으로 하위 처리하는 중에 '달걀' 대신 '계란'을 가져왔는데 전체 통사 처리 과정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보니 이어지는 주격 조사는 '계란'에 어울리는 '가'로 올바로 처리된 것이 아닐까? '[[알]]+[[주격조사]]' 구성을 처리해야 하는데 [[알]] 부분을 보다 익숙한 '달걀'이 아니라 실수로 덜 익숙한 '계란'으로 처리해 놓고보니, '무언가 어색한데' 싶은 느낌이 들고, 이 어색함이 이어지는 [[주격조사]] 처리에 간섭을 일으켜서(방해해서) 연쇄적으로 실수를 유발하게 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계란가'가 나왔을 것이다.(밑줄 부분은 '사오 김'님의 조언을 반영하여 수정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광용어는 어휘부에 통째로 저장된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단지 해당 발화 의도와 관련하여 쉽게 활성화 혹은 처리될 수 있을 정도로 가중치 처리가 될 된 어떤 조합 과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볼 여지가 더 있다. 시험에 떨어졌을 때 흔히 사용하는 관용어인 '미역국을 마시다'를 보자.


    '이번까지 하면 미역국을 세 번이나 마신 셈이네.'

    '하하하. 배 부르겠다. 그러게 공부 좀 하지.'


뭐, 이런 정도의 대화가 가능하다. 친한 친구 사이에는 얄미운 소리를 하는 놈(?)이 꼭 있지 않던가. 이런 대화가 가능한 이유도 '미역국을 먹다'에 횟수를 계산하는 논리적 처리를 통사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번에도 미역국이네'처럼 '미역국'만으로 '미역국을 먹다'를 대신한다. (이 경우도 '먹다, 마시다'가 '달걀, 계란'과 동일한 현상이 있구나..!!) 관용어를 이용한 환유 현상이다.


그리고 관용어인지 아닌지 애매하지만 관용어처럼 보이는 현상도 있다. '샘이 깊은 물'이다. '그 사람은 샘이 깊은 물이야'와 같은 표현은 개인마도 소이할 수는 있으나 대체로 대동한 해석이 가능하다. ('대동소이'도 이렇게 활용이 되는구나!!)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표현인데 더 잘 알려진 표현은 '뿌리 깊은 나무'일 거다. 비유적인 표현이고 해당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다. 그 의미/개념/관념(시니피에 부분)이 분명하지 않음에도 사용되는 음성 형태(시니피앙)라고 할 수 있다. 어휘부에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시니피에(기의)-시니피앙(기표)의 쌍인 언어 기호로 설명하려고 하면 불가능할 것이다. 발화의도는 대화 상황에 기대허 적절히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위 [도식1]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보면 설명이 가능해 보인다.


관용어는 과연 통째로 머리 속에 저장되는 것일까? 아니면 발화 의도(의미/개념/관념)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거의 자동화에 가깝게 통사적으로 처리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경험된(고빈도로 학습된, 즉 가중치 처리 된) 형태들의 연쇄라서 '기억된 단위처럼 착각'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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