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인사이드>, 영혼의 동반자

- 우리를 바라보는 넷플릭스의 인문 시선 1.

by 콜랑


사춘기를 지나고 철이 들 때에 즈음한 연애 경험. 청춘 남녀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마련이다. 엉뚱한 사춘기를 보내지만 않았다면 상대인지 세상인지에 대한 갈피는 잡고 있겠지(?)만, 수시로 상대방이 마음에 들락거리고 어떤 때는 세상도 의미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경험을 하면 대부분이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니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헷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잘 해서 이 시기에도 비교적 쉽게 갈피를 잡고 영혼의 동반자를 얻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긴가민가 하다가 누군가는 평생 혼자 살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와 살면서 온갖 세상을 경험하며 또 누군가는 기력이 쇠할 때 쯤 '영혼의 동반자였구나'하며 살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남녀의 삶은 그래 보인다.


<뷰티 인사이드>. 제목 보고, 영화 시작하고, 우진이의 모습이 바뀌고, 그리고 몇 분 지나면 대충 무슨 영화인지 알 것 같다. '이 영화를 다 봐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한두 번 웃겨주길래 영화 중반까지 봤다. 이젠 진짜로 식상할 것 같아서 '다른 거 볼까' 싶을 즈음에 반전 매력이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코믹적 요소인 줄만 알았던 장면들이 의미를 얻기 시작한다. 웃고 넘어가면서 '역시 인간은 내면이 중요하지' 정도로 넘길 수 있는 연애물이 아님을 직감하게 한다. 우진이 부모의 삶, 이수 부모의 삶이 중간 중간 던지는 메시지는 이 영화가 단순히 젊은날의 연애 감정만을 주목하고 있는 영화가 아님을 시사한다.


연애 시절에 다들 비슷한 경험 해 봤을 거다. 여자는 매일같이 변하는 남자를 보면 좋으면서도 걱정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누가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닌데 영화 속 이수처럼 신경 쇠약에 시달리는 듯한 경험을 한다. 매일 매일 변하는 모습이 새로운 것 같기도 하고, 뜬금 없는 애정 공세가 그리 싫지는 않은데 같이 지내다 보면 이해하고 감내하고 보듬고 가르칠 것들 투성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감각이 부족한 남자는 좋게 말하면 '올곧다'고 봐 줄만 할까? 영화 속 우진이와 이수의 생은 묘하게 우진이 부모님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중간 중간 우진이 부모의 이야기나 이수 부모의 이야기가 비춰질 때면 앞으로의 우진이와 이수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진이와 이수의 이야기가 우진이 부모의 이야기로 투영되면 갑자기 '영화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소재를 다루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우진이의 어머니도 이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수와 우진이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못내 다 다루지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 펼쳐질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수의 아버지는 노년이 되어서는 사별한 부인과 같이 늙어가는 것이 생의 큰 축복임을 깨달은 경지에 이르러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이수는 어쩌면 그런 경지에서 우진이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우진이 부모님만 같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우리 부모님들, 우리들, 또 우리의 자녀들. 그렇게 대를 이어가면서 삶은 상당 부분 투영될 것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삶은 투영되고 우리네 삶은 인문학적 사료로 축적되고 있다. 지혜를 얻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제이며 몫이다.


<뷰티 인사이드>는 인생의 동반자를 발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젊은 시절의 연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중간 중간 투영되는 우진이 부모와 이수 부모의 사연은 젊은 시절의 인생 경험이 얼마나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인생의 동반자, 영혼의 반쪽을 발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긴가민가 하면서 노년에 가서야 발견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미운 정을 인정하고 사는 게 우리네 삶이다. 젊은 시절에 반드시 배워야 할 지혜는 전문 지식이 선사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예를 갖추고 사랑하려는 충실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노력이야 말로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희한하게 영화 속에서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에서는 우진이가 항상 여자의 모습이다. 어머니를 만나서 이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우진이가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뀐다는 사실을 이수가 알게 되는 장면에서도, 심지어 상백이가 우진이의 비밀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도.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 헤매고 만나고 함께 생을 엮어가는 과정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인간의 내면을 본능적으로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아무튼, '여성의 감수성이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작동(?)한다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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