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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Sep 21. 2015

'다르다'를 '틀리다'고 하면 정말 틀릴까?

언어 정책_하나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릅니다. '다르다'고 해야할 때 '틀리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익숙하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친구들 중에도 가끔 이런 말을 하는 녀석이 있다.    


    '나'와 '너'의 차이를 '틀렸다'고 규정하기보다는 '다르다'고 인정해 주면 어떨까요?


    처음 들었을 때는 인생의 정수와 비슴해 보였던 말이다. 요즘에는 식상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틀리다'와 '다르다'의 차이를 따지고 인식하는 것이 무언가 있어 보였던 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말이 발라야 세상도 바르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그렇게 쓰면 그 뜻을 그렇게 쓰이는 것이다. '너는 나랑 틀리게 살아야지.'라는 말에서 꼬투리를 잡는다고 틀려 보이던 것이 달리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달라 보이는 것을 틀려 보이는 것처럼 표현하기 시작한 지가 꽤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틀리다'를 '다르다'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언어적 사실은 한국어에서 '틀리다'는 'different'를 뜻하기 위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쯤이면 '짜장면'과 '자장면'의 대결 양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맛있게 잘 먹고 있던 짜장면이 언제부터인가 간이 덜 된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기억. 한 친구는 '자장면'이 표준어로 채택된 이후로는 언제나 간짜장만 먹는 일도 있었다.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한동안은 '짬뽕'만 먹었던 기억도 있다. '잠봉'이 아니라서 제대로 간이 되어 있다고 믿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하라고 해서 억지로 힘들게 '자장면'을 입에 붙여 놨더니 어느날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하더라!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바꿔 쓰라는 판단만큼은 너무 학자들의 지식을 표준으로 고수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언짢음을 떨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다르다' 대신에 널리 사용되는 '틀리다'가 '짜장면'과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는 '틀리다'도 좀 봐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논리적으로는 공감이 가지만 언어 현실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틀리다'를 '다르다'와 정확하게 구별해서 사용하라고들 한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하고 틀.리.게. 말하면 틀릴까?




    '틀리다'와 '다르다'의 용법을 정확하게 구별할 필요에 대해서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훨씬 더 많다. 철저한 교육 덕분인지 글을 쓰면서 '틀리다'와 '다르다'의 용법을 구별하지 못하면 문격(문격-아이패드는 한자 변환 어떻게 하나요?)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그러니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사용하는 언어 현실을 표준적인 언어 생활이라고 인정하기는 아직은 어려울 것이다. 언어 정책은 최대 다수의 최대 의사 소통을 지향한다.


    의사소통을 위한 표준적 어휘를 국가 정책 차원에서 선정하는 이유가 국민들의 언어 생활에 혼란을 주고자 함일 리 없다. 다만, 표준어를 선정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언어 사용 실태를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일부 지역, 집단,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세대의 언어 현실을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젊은 사람들이 외래어에 익숙하다고 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외래어들을 표준어로 선정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60대 이상의 노인 복지를 위해 '실버 홈케어 서비스'(정확한 명칭은 생각하지 않지만)를 신청하라는 지역 관공서의 현수막을 보고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저 말이 무슨 말이냐'며 물어 보신 적이 있다. 무슨 말인지 필자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적어도 공공 언어에서만큼은 '고령자(노인) 방문 건강 관리 제도' 정도로 순화하려는 언어 정책을 따를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떠올려 보면, 표준어 사정을 비롯한 언어 정책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 아니 보수적이어야 할 것 같다.


    가끔 뉴스에서 새로운 표준어 선정 결과가 발표되는 일이 있다. 드물지만 어문 규정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왜 이렇게 자주 바꾸지?

    헷갈려 죽겠네. 가만히 놔둬도 다 알아서 잘 사는데 뭐하러 자꾸 바꾸나?


앞으로는 시각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 언어 현상을 보다 교양 있게 바라봐 주는 쪽으로 아래와 같이.

아, 이렇게 표현하면 다른 세대들과도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는지 나도 시험해 봐야지.
요즘은 언어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외래어가 넘쳐나니까 이런 정책까지 등장하는구나.


    물론 언어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완벽할 수는 없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표준을 따르지 않겠다'는 식의 막무가내는 곤란하다. 무작정 이제는 바꾸자는 식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개인의 언어 생활을 공공의 언어 정책을 판단하는 잣대로 들이대는 것은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다른 정책은 모르겠지만 언어 정책은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다소 보수적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르다'를 '틀리다'고 하면 틀린다는 설명은 분명히 규범적이다.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을 인위적으로 강제하는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최대 다수의 최대 소통을 지향하고 있으니 조금 불편해도 따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래와 같이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 적어도 아직까지는,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하면 최대 다수의 최대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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