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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Sep 15. 2015

영하 20도 이상이면 몇 도냐?

언어의 논리, 하나

나: '유학생'은 어디서 왔어요?

유학생: 연변에서 왔어요.

나: 거긴 한국보다 많이 춥죠?

동료: 연변 안 가 보셨어요? 한국보다는 엄청 춥죠.

나: 음... 영하 20도쯤 되나요?

동료: 20도가 뭐예요? 훨씬 그 이상이죠.

나: 그럼 영하 10도?

동료: 아뇨. 영하 20도보다 더 춥다는 말이예요.

유학생: 예, 훨씬 더 추워요. ^^;

    유학생과 대화 중에 중국에 대해 조금 아는 동료가 끼어들었다. 분명 쌍방 간에 이해 방식(코드)이 달랐다.


        '이건 뭐지?'


의아하다.


        ' 영하의 온도에서 더 낮은 온도, 그러니까 더 추운 쪽을 말하려고 하면서 왜 '이상'이라는 단어를 쓸까?

          영하 20도 이상이면 '-19, -18, -17, ..., -10, ...'도를 말하는 것이 당연한데.'


    낮에 있었던 일이 찜찜했다. 얼른 사전에서 '이상'을 찾았다. 사전의 뜻풀이는 분명했다.

    이상(以上)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 기준이 수량으로 제시될 경우에는, 그 수량
            이 범위에 포함되면서 그 위인 경우.
        2. 순서나 위치가 일정한 기준보다 앞이나 위. 
        3. 이미 그렇게 된 바에는.                                   <표준국어대사전> 

역시 내가 이상할 리가 없었다. '나'의 반응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면서 합리적이기까지 한 교양 있는 표준어 화자로서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뿐이다. 순간, 교양 없고 무식한 무리배들이 하는 표현들이 용암처럼 대뇌 주름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나의 '교양'이 이성의 바닷물을 끌어다가 부려대느라 그나마 버티고는 있지만 다른 생각을 빨리 하지 않으면 자아가 붕괴될 것만 같다.


        '문 닫고 들어와.'

        '문을 닫고 어떻게 들어가라는 말이냐?'


        '꼼짝 말고 손 들어.'

        '손부터 들어야지 꼼짝하지 말라면서 손은 왜 들라고 하는 것이냐?'


        '나 요즘 썸 타고 있어.'

        '썸은 도대체 무슨 자동차냐? 처음 들어 본다.'


        '여기 자리 있나요?'

        '자리가 비었는지를 물어 봐라. 누구 자리인지를 묻던지. 자리인 것 뻔히 보면서 묻기는 왜 묻냐?'


        '혹시 불 있으세요?'

        '왜? 뺐으려고? 행여나 빌려달라고 하기만 해 봐라. 갚으라고 할 테니까.'


        .......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아가 붕괴될 것만 같다. 논리적인 사람들만 모여서 사는 그런 세상이 있다면 얼마나 교양이 넘치는 세상일지를 생각한다. 그제서야 이성의 힘이 끈적거리면서 대뇌 주름 사이를 비집고 나오던 마그마들을 진정시키는 것 같다. 행복한 상상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할 것만 같다.


    조용히, 행복감에 젖어들면서 생각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바른 말만 쓰겠노라 다짐하면서.


말은 곧 말하는 사람의 이성일지니!   




    말이 말하는 사람의 이성적 능력을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그러 것은 아니다. 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나, 동료, 유학생'의 대화 상황을 통해서 '개인에 따라서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언어의 논리는 철학의 논리와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특정한 맥락에서는 사전적 의미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용법과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최근에는 위에서 예로 든 대화와 같이 '이상'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용법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상'의 의미에 '어떤 정도나 성질이 더 강해지는 방향'정도의 맥락 의존적 의미가 추가되어 그렇게 자주 사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위 대화의 '나'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언어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변해가는 언어 감각을 따르지 않고 논리적인 의미에 맞추어 말하기를 고집하는 '나름 언어 전문가'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언어 전문가'의 사회사를 다룬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 보셔도... 이미지 크기는 조정할 수가 없는 건가요??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로 좀 알려 주세요. ^^;;



    일상 생활 중에 시작 부분에 예로 든 대화 상황과 유사한 경험을 혹시라도 하게 될 때, 간혹 사람들은 어떤 용법이 올바른 용법인지 내기를 걸어 놓고 '국립국어원' 등의 국어 상담소에 문의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전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해석에 기초를 둔 규범적인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일반인들은 언어는 변화한다는 언어학의 상식에 기초한 그 어떤 사유의 확장도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에는 '이상'의 의미가 사전의 그것으로 충분했다가 최근에는 '어떤 정도나 성질이 더 강해지는 방향' 정도의 맥락 의존적 의미가 추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위 대화의 '이상'을 가지고 말하자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상'의 새로운 의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수용되고 있는가 하는 정도의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이 '이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논리적) 의미인 '더 많거나 나음'을 특정한 맥락에서 그 유사한 의미인 '더 강함'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게 되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또 이런 사례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면 '이상'의 논리는 변하게 된다. '이상'이라는 단어의 문법이 조금 달라졌다고나 할까? 


    언어학자들은 이와 같은 변화가 관찰되면 이를 원래의 용법으로 되돌리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와 같은 다양한 변화들을 관찰하고 수집하며, 그 속에서 공통적인 변화의 양상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위 대화를 읽은 한국어 화자들 가운데 '나도 이상한데'라는 반응이 많으면 '이상'의 문법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고, '나는 괜찮은데'라는 반응이 많으면 '이상'의 문법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을 위 대화에서처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끝까지 버텨야만 하는 분야는 학술적인 글쓰기 분야나 공문서 작성 분야 정도일 것이다. 만약 국어 시험 문제에 위 대화와 같은 예문이 출제되었다면 '이상'을 잘못 사용했다고 해야 할까 바르게 썼다고 해야 할까? 이도 저도 아니면 출제를 제대로 못 한 것일 테다.


    언어의 논리는 논리학의 논리와는 차이가 있다. 논리학에서는 '이상'의 의미가 사전적으로 규정된 것 외에 다른 의미로 변화하면 기존의 '이상'의 의미를 담보하기 위해서 새로운 개념어를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언어학에서는 어떤 말의 의미가 변화하는 현상 자체가 흥미로운 관찰거리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정한 범주에 속하는 말들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일어나면 어느 정도의 일반화가 가능해진다. 규칙성이 발견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0년쯤 후에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상'의 의미(어떤 정도나 성질이 더 강해지는 방향)가 100년 전쯤부터 생겨난 의미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놀랄지도 모를 일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날 정도로 냉철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논리학과는 달리 언어학에서는 논리적 파격이 허용된다. 언어의 논리는 스스로의 파격을 허용할 정도로 유연하다. 어쩌면 그래서 언어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인지도... (쪼잔해 보이는 국어 전문가들도 알고 보면 논리적 파격을 허용할 정도로 인간적이라는 변을 내어 놓고 싶은 건 왜일까?)


다음은 예문은 어떤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한겨울에 날씨가 아주 춥다가 풀리면 여전히 영하의 날씨지만 그래도 살 만해진다. 곧 봄이 오겠구나 싶다. 한여름에도 비슷하다. 날씨가 아주 덥다가 날이 조금 풀리기 시작하면 이제 곧 가을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위 문장을 읽으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가? 한여름의 더위도 풀린다고 하는가? 필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표현한다. 이 말을 들은 옆에 있는 동료는 '어떻게 더위가 풀리냐?'고 나를 질타(?)한다. 


혹시 댓글 다시는 분은 '이상'과 '풀리다'가 이상한지 자연스러운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앞 문장에서 '~면 감사하겠습니다'와 같은 표현도 무언가 아주 어색하네요. 평소라면 '~면 좋겠습니다'라고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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