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에 대한 단상
'문법'. 참 따분한 말이다.
'문법 연구'? 떠 따분한 소리같다.
'따분한 말'과 '따분한 소리'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말'과 '소리'라는 개별 단어의 의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미묘한 어감(뉘앙스)의 변화가 있는 것도 같다.
'문법 연구'? 떠 따분한 소리같다.
'문법 연구'? 떠 따분한 말같다.
이렇게 대비해 보면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따분한 소리'가 '따분한 말'보다 조금 더 자연스럽다. 왜 그런지를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차이가 있다는 직관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무언가 차이가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런 차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기술하는 일은 언어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잊혀질 수도 있고(언어는 변하니까) 혹은 그런 차이가 더 커져서 다른 어떤 현상으로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 소소한 사실들은 자료로서는 분명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언어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학문적 가치로도 인정될 수 있을까? 가령 '~라는 말, ~라는 뜻, ~라는 의미' 중에서 어떤 표현은 구어에서 보다 자주 사용되고 나머지는 구어나 문어에서 두루 사용된다는 차이가 있다고 해 보자. 그런 사실을 발견하는 작업은 소소한 언어적 사실을 밝히는 작업으로서 언어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문적 발전은 정확한 자료에 기초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한국어 사용자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정도의 미묘한 차이를 밝히는 작업이 학문적인 보편성과 부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말하기를,
'한국어학의 어려운 전문용어를 쓰지는 못하지만 그런 정도의 차이를 밝히는 일은 저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 사람이라면 이런 느낌 차이는 다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어 교수님들이 논문을 쓰실 때에는 엄청난 무언가를 하는 줄 알았어요.'
갑자기 내가 읽고 있는 이 논문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작업은 사전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자료 조사는 국립국어원같은 정부 부처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이렇게 기초 사실을 밝히는 정도의 문을 써도 대학에서 주는 연구비를 받을 수도 있는 건가요?'
앞으로는 이런 질문을 자신있게 피해갈 수 있는 논문인지를 생각하면서 논문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