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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Jul 28. 2021

되므로 VS 됨으로

- 밥집에서 쓸데없는 생각을...국어학에 대한 단상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는데 눈에 들어온 문구다.


맞춤법이 잘못됐군( '*조리됨으로'가 아니라 '조리되므로'로 써야 어문규정에 맞다.)! 학교에서 문법 시간에는 가능하면 수동형을 쓰지 말라고 가르치니까, 나도 그래 왔으니까, '조리되다'보다는 '조리하다'가 더 좋겠다!

 

그런데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언어학적으로는 '조리되다'가 잘못은 아니다. '음식은' 또는 '주문하신 음식은' 정도가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이 경우 '음식이'나 '주문하신 음식이'처럼 '이'가 사용되면 어색한 이유는 뭘까?). 만약, '조리하다'의 경우라면 생략된 성분이 '음식은'이 아니라 식당 관련 주체('우리는, 저희는, 주방에서는, 주방장은, 요리사는' 등등)와 목적어('주문하신 음식을, 음식을' 정도)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주문되다'를 동사로 보고 문장 구조는 '[ [주문하신 음식은]e  [ [주문과 동시에]AdvP [조리되-]V] ]' 정도일 것 같다. 'e'는 생략된 성분 표지이다.


여기서 다른 한 가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왜 하필 '주문과 동시에 조리됨으로'에서 노란색으로 강조된 부분이 주목을 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됨'이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조리'이다. 업주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에서 '됨'이 빠져 있다. '조리되다'는 아무래도 '조리'와 '되다'로 분석될 수 있다는 인식이 증명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위 단락의 설명을 되짚어 보게 될 수밖에 없다. '조리되다'를 한 단어라고 하면 위 단락의 설명이 통하겠지만 '조리'와 '됨'(즉 '되다')를 분리하여 인식하면 위 단락의 내용은 성립하지 않는다. '조리' 행위는 행위자(요리사)와 대상(음식)을 요구하는 행위임은 분명한데 주체와 대상이 모호한 상황에서는 '조리'라는 행위가 능동적 행위인지 수동적 행위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업주가 강조하고자 한 내용('주문과 동시에 조리')은 태(voice) 관련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 태 관련 해석은 '되다'에 근거해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사진 속 문장의 구조는 위 단락의 설명처럼 분석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1) 같이 처음 보는 방식으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1)   [ [주문하신 음식은] + [[[주문과 동시에]AdvP + [조리]Stem/N ]StemP/NP + [되-]V  ]V' ]VP


여기서 '되다'는 태의 기능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는데(이런 동사를 '기능동사'라고 하는 견해도 있음) '주문과 동시에 조리'에 '되다'가 결합한 것으로 분석한 점은 기능동사설과는 차이가 있다. 사실 애초에 사진 속의 문장은 '되므로'가 아니라 '됨으로'임에 유의하자. 업주(화자)의 머리 속에서는 '주문과 동시에 조리'와 '되'가 결합한 후에 '-ㅁ'이 결합한 것이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조리'와 '됨'이 결합했을 가능성이 크다. (1)에서 밑줄 친 부분은 편의상의 분석이다. 맞춤범상의 실수까지 고려하여 분석하려면 아래 (2)와 같이 억지스러운 분석을 해야할지 모른다. 마지막의 '?P'는 '됨'이 명사구인지 동사구인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2) [ [주문하신 음식은] + [[[주문과 동시에]AdvP + [조리]Stem/N ]StemP/NP +  [[되-]V + [-ㅁ]]?P ]]


지금까지의 분석은 상당한 억지일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위 사진 속의 문구에서 노란색으로 강조한 부분은 화자(업주)가 말할 때 머리 속에서 일어난 언어적 처리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현수막을 만들 때 '요 부분을 강조해 주세요'라고 요구했을 수도 있으니까. 위 설명은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기로 전제할 경우에만 통할지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머리 속에서는 '주문과 동시에 조리'라는 핵심 내용이 능동이나 수동의 판단과는 무관하게 처리되는 것은 아닐까? 문법 시간에 배운 것처럼 '어근+파생접사'가 단일 동사가 되고 이 동사가 목적어나 주어와 결합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은 없을까? 머리 속에서 '[[~ 조리+되-]+-ㅁ]'의 구조가 아니라 '[[~ 조리]+[되-+-ㅁ]]'의 구조에 따라 언어를 처리했을 가능성은 정말로 전혀 없는 것일까? 다시 말해, '조리되-'가 한 단어라면 과연 화자는 '조리됨으로'라는 오류를 범했을까?


학교에서 배운 문법 지식으로는 도저히 위 사진 속의 표현을 설명할 수가 없는데, 현실에서는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행위의 결과가 존재한다. 사진에 찍힌 객관적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이론을 수정해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밥집에서 쓸데없는 생각을...밥집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 밥집에서 쓸 데 없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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