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잡기' VS '수용': 토론의 자세

- 의사소통론

by 콜랑

토론은 보다 나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소통 행위이다. 내 주장의 논거를 확보하고 상대의 논박을 경청하고 방어하면서 내 문제를 보완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발전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그렇다. 그.래.야.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토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선 토론회가 항간의 관심거리인 요즈음 합리적인 토론보다는 빈번한 정보 노출로 여론 몰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가 지나가면서 '박사모가 이재명을 지지한다는 말 들었냐'길래 '그게 무슨 소리냐'며 헛소리로 치부했다. 검색해 보라길래 구글에 검색했더니 달랑 하나 나왔다(아래 사진). 그런데 클릭해 보니 삭제된 게시글이라고 한다.

캡처.PNG

정확한 사실 여부보다는 어떤 정보이든 자주 노출시키거나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회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인터넷 시대, 플랫폼 기반 사회, 빅데이터 시대에 경계해야 할 일이 이미 일상이 되고 있으니 걱정일밖에.


이런 사회에서 정상적인 토론을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할까? 토론 참여자들은 상대방의 주장이나 논거의 타당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자기가 할 말을 반복한다. 무조건 자주 노출시키려는 의도인가 싶다. 그런 토론 방송을 본 여론 형성의 주체들은 어떤 판단을 할까?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괜한 어그로(aggro)만 끌 것 같으니 다른 문제를 보면 좋을 것 같다. 토론 참여자의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사건이 마침 하나 터졌다.

우선, 우피골드버그 관련 사건의 정확한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딱 위 두 기사만 놓고 생각해 보자. 홀로코스트가 인종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우피의 발언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발언일까? 혹시 우피의 진심은 인종 차별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었을까? 인종차별보다 더한 짓이라는 생각에서 한 발언은 아니었을까? 그런 발언의 배경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Mouse 쥐>와 관련해서 이미 머리 속에 떠올라 있는 유대인 학살, 인종 차별의 관점에서만 비판하다보니 우피가 당황해서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피력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위 두 기사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기사만 보면 우피가 무언가 심각한 잘못을 범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언론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있는 걸까? 본의는 아니겠지만 우피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건수에만 초점을 맞춰서 꼬투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의 흔적은 없다.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은 우피의 토론 상대도,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도 전혀 기울이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생긴 오해는 아닐런지...


물론 우피의 본심이 이 글의 핵심은 아니고 두 기사만으로는 알 수도 없다. 핵심은 본의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족이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다 언론까지 관련되면 위험한 나비효과도 생길지 모른다. 상대의 의도를, 언어적으로 불완전하게 표현되었을지 모를 상대의 그 의도를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 이게 중요하다.


토론에서는 그 노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그래서 오해에서 비롯되는 소모적인 논쟁이 오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생각해 보면, 인류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는데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세상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언어가 가진 진실 표상의 한계로 인해서, 특정 언어 표현에 관련된 프레임의 차이에 의해서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오해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토론 참여자들은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상적인(?) 토론의 결과에 이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토론 진행자들은 합리적 해결점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쌍방의 발언 시간을 관리하고 언쟁(논쟁이 아니다)을 중재하는 역할만 한 지 오래다. 학생들에게 토론 프로를 보면서 비판하라고 하기에는 쓸데없는 토론의 노출 빈도를 높일까 두려워 부끄럽기까지 하다.


친구 녀석을 오래 앞에다 앉혀 두고 혼자 커미 마시게 하려니 미안해서 두서없이 쓰느라 말이 정확하게 전달되는지도 모르겠다. 타고난 게으름에 나중에 다시 고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이야기 나누는 척하며 쓰려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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