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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Feb 14. 2022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얼마나 다른 건데?

- 문법과 텍스트의 경계

이런 말을 흔히들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한국어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다들 나름의 경험들이 있었겠지.


재미있는 건,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수없이 하기도 했지만 이런 질문은 안 해 봤다는 거. '그래서 얼마나 다른 건데?'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상당한 정도의 사례를 모아서 분석해 봐야겠지? 한 가지 예를 보자.



삶.


누군가는 태어났으니 살고, 누군가는 그냥 그냥 살고,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살고.

중간 중간 기쁨으로 주어지는 보상이 있기는 하지만 역경, 고난,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또 그렇게 힘겨워 하는 삶들을 보면서 살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에는 찰나의 기쁨의 보상은 부족하기만 한 것 같다.   ---> (1)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지만 삶은 정작 녹록치 않다.             ---> (2)


학교에 다니고, 졸업 후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그러다 보면 건강 문제로 고민하다 시나브로 예외 없는 결말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단순해 보이는 이 틀 속에서, 무슨 고난과 역경과 갈등이 그리도 많은지.

만족감으로 충만한 삶은 인생이라는 댓가를 요구하는 마약처럼 보이는 건 나뿐일까?


우선 (2)를 보자. '정작'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가능성을 따져보자.


    ㄱ.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지만 삶은 정작 녹록치 않다.

    ㄴ.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지만 정작 삶은 녹록치 않다.

    ㄷ. 정작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지만 삶은 녹록치 않다.


'정작'의 정확한 용법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다음 / 네이버 사전 참조) 우리에게는 감이 있다. 문법적으로는 ㄱ~ㄷ 다 괜찮다. 그런데 맥락을 고려하면 'ㄴ'이 가장 좋아 보인다. 문맥을 보면 내용상의 초점이 '삶'이기 때문이다. 


기왕에 강조를 할 셈이면 '녹록치 않다'보다는 '녹록치 않다'가 더 좋지 않았을까?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지만 정작 삶은 녹록치가 않다'가 가장 좋을 것 같은데... 한정이나 강조가 한 문장 내에 자주 나와서 불편해서였을까? 조사 '가' 한번 더 쓴다고 불편할 정도일까? 


원문의 필자는 나와는 감이 조금 달랐을까? 아니면 내가 오만하게 판단했을까? 아무튼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이런 감각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글을 쓰는 사람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문법이 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예가 아닐까 싶다.


(1)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로...

(약속 시간 전에 다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쓰려니 할 많이 많아질 것 같은데... 끄응...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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