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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Feb 15. 2022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얼마나 다른 건데?(2)

글쓰기(의식의 흐름)와 문법(언어 능력)

지난 포스트에 이어서 (1)에 대해서도 필자라고 생각하고 조금 고려해 보자.



삶.


누군가는 태어났으니 살고, 누군가는 그냥 그냥 살고,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살고.

중간 중간 기쁨으로 주어지는 보상이 있기는 하지만 역경, 고난,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또 그렇게 힘겨워 하는 삶들을 보면서 살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에는 찰나의 기쁨의 보상은 부족하기만 한 것 같다.   ---> (1)

기쁨으로 충만하고 싶지만 삶은 정작 녹록치 않다.             ---> (2)


학교에 다니고, 졸업 후 취직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그러다 보면 건강 문제로 고민하다 시나브로 예외 없는 결말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단순해 보이는 이 틀 속에서, 무슨 고난과 역경과 갈등이 그리도 많은지.

만족감으로 충만한 삶은 인생이라는 댓가를 요구하는 마약처럼 보이는 건 나뿐일까?



'찰나의 기쁨의 보상'. 필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살다 보면 가끔 기쁜 순간들도 있는데 그런 순간들만으로는 힘겨운 삶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이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보상으로 주어지는 찰나의 기쁨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기쁨, 찰나'와 같은 관념들이 '보상'을 수식하는 구조를 선택했을까?


맥락을 보면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초점은 아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지 '상처 받은 삶(마음) 치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면서 경험하는 때때로의 보상들이 삶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보상'이 피수식어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필자는 '살다 보면 가끔 기쁜 순간들도 있는데 그런 순간들만으로는 힘겨운 삶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이 아니라 '살다 보면 가끔 기쁜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은 힘겨운 삶을 견디게 하기에는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게다. 머리 속에 '보상이 되지 않는다(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관념이 떠오른 상태에서 '찰나의 기쁨이라는 보상'을 추가한 게 아닐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에는](부가 관념) + [찰나의 기쁨의 보상은 부족하기만 한](주관념)' 이런 식으로.


음... 그런데 글의 주제(맥락)를 고려해 보면 '~ 보상은'이 글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부가 관념'에 '는'이 있어서 겉으로는 글의 주제(주어)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덜 정리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글의 주제는 '~ 보상은(주관념)'이고 '~ 치유하기에는'(부가 관념)은 '~하기에 부족하다'라는 전체 서술 내용의 일부로 구성하는 게 더 좋아 보인다. 한국어 문법에서 주제 표지 '은/는'에 대해 설명할 때 '글의 주제'와 '문장의 주제'를 정확하게 구별하는지, 관련 개념을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감에 따르면 이런 구별은 꽤나 분명하다.


그리고 '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건 읽기에 거북하다. 아마도 위에 설명한 짐작이 얼추 맞다면 순각적으로 '의'의 반복을 대체할 구문을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았겠지.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경우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1)을 '찰나적 기쁨으로 주어지는 보상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에 부족하기만 한 것 같다' 정도로 고쳐 보면 어떨까? 혹시 '~치유하기에' 대신 '~치유하기에는'을 꼭 쓰고 싶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보상들은' 대신 '보상들이'나 '보상들도'를 쓰면 어떨까?


내가 글을 쓰고 있었다고 가정하면 위 내용들이 글쓰는 과정에서 머리 속에서 복잡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머리 속 생각은 깔끔하게 정리된 채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된 후에라도 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는 또 다른 의식(언어능력)이 관여하기 때문에 일필휘지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문장 하나 하나가 주제를 정확하게 끌고가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검토하면서 글을 써 나가고, 써 나가면서는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AI가 이 수준에 도달하면 진정한 사이보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퇴고'를 해야 하는 걸 게다. 문장 성분의 위치, 조사 사용과 같은 문법적 조작은 글의 주제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논점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의 의식을 이끌어 간다.  그러니 '아' 다르고 '어' 다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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