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재미를 갈구할 즈음 드는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단상
내가 겪은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독특했다. 학원 한 번 못 가 보고 과외 한 번 못 받아 본 나에게 교육은 공교육이 전부였는데... 아무튼.
음악 시간에 음악 이론이나 음악사를 가르치고 시험을 치르는데 정작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는다. 국민(초등)학교 때 리코더와 멜로디언 조금 구경한 게 전부로 기억한다. 체육 시간에 배구, 축구, 야구, 수영, 등등 각종 스포츠에 관한 지식은 가르치는데 정작 그런 운동을 하면서 즐거움을 얻은 경험은 없다. 점심 시간에 학교 운동장에 떼거지로 나가서 누가 누구 편인지도 헷갈리는 가운데 축구장을 공유했던 기억은 있다. 그래서였을까? 영어 공부를 지금도 하고 있지만 영어로 대화 한 마디 하는 게 쉽지 않고, 자막 없이 영어권 영화를 보는 건 언감생심이다. 생물 시간에 배운 지식들은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데 의사들은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설명도 안 해 준다. 정작 몸이 아플 때는 대충 위험한 병증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다. 세금 신고를 하려고 홈텍스에 접속해 보면 내가 아는 용어가 거의 없다. 진짜 뉴스니 가짜 뉴스니 하는데 어떤 뉴스가 어떤 뉴스인지 판단하는 일은 고스란히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이 운운하느냐에 따르는 게 속 편하다. 재테크의 종류나 방법 등은 사회 생활하면서 몸으로 체험하면서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불법인지 편법인지 경계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도대체 난 뭘 배웠던 걸까? '한국'이라는 사회에 태어나서 초등 교육, 중등 교육, 고등 교육 모든 과정을 거쳤는데 내 삶을 위해서 이 사회가 보장하는 권리와 이 사회의 수혜를 입는 자로서 내가 이행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방법은 물론 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여러 요인들을 상업적이지 않은 관점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만약 내 자식을 교육하라고 하면 어떤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싶을까? 대략적인 틀을 생각해 본다.
<초등 교육>
필수적인 교육 과정이다. 기초 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능력들을 기초적인 수준에서 가르쳐야 한다.
기본 예절 교육이 최우선이다. 우리 사회가 공통적으로 수용하고 공유하는 예절은 인간 관계 형성의 기초이다. 사상 교육을 말하는 건 아니다. '-주의, -ism' 이런 것들은 고등 교육 과정에서 논해야 할 거다.
언어 능력도 필수다. 사회가 공유하는 문자 체계는 알아야 문명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다. 문자를 아는 수준이 아니라 문장과 짧은 단락을 이해하고 구성할 줄 아는 정도의 문해력은 필수다.
산술 능력도 필수다. 소비 생활에 필요한 돈 계산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재테크에 필요한 수학은 중등교육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중학교 1학년 때 '1-(-1)=2'라는 사실을 배웠지만 살아 남았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분수, 기본 도형 정도의 개념과 100만 단위 까지의 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나머지는 몸을 써서 배우는 게 좋다. 컴퓨터로 검색하면, 노래나 춤은 따라 하면서 본능적으로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운동도 직접 하면서 뛰고 받고 받히고 물도 좀 먹어 보고 숨도 헐떡거려 봐야 한다. 벌레를 잡았을 때 손 안에서 꾸물텅대는 느낌이 어떤지, 강아지나 고양이는 어떻게 하면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싫어하는지, 이 녀석들은 왜 어른들과 나를 대할 때 다른지 등등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식물도 어떻게 하면 잘 자라고 어떻게 하면 시드는지, 다 같은지 아닌지. 일일이 외우면 더 좋지만 농부가 될 것도 아니니 외울 필요까지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친숙하게 느낄 수 있으면 된다. 뭐든 싫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들임을 깨닫게 하면 좋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은 게 안니고 내가 싫어도 남은 좋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하면 좋다.
<중등 교육>
이제는 교양인을 길러낼 준비를 시킬 단계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성적으로 갈등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문제는 곧 갈등이고,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고, 이 과정을 인내하는 데에는 끈기가 필요하다.
언어 능력은 여전히 필수다. 문명화된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모르는 말이 있으면 찾아 보고 스스로 학습해 가면서 문제를 다루는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 짧은 논평 정도 분량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문해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능력이 있으면 생소한 분야의 텍스트로 차근차근 소화할 수 있는 기본 언어 능력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능력이 필수다. 산술 능력이 아니다. 논리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수학을 교육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건 언어 능력을 통해서도 기를 수 있다. 확률, 통계처럼 삶에 필수적이지만 텍스트로 교육하기에 어려운 개념들은 수학을 통해서만 제대로 교육할 수 있다. 나아가 공리의 개념을 이해하고 자연의 질서가 수학 공식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고 표현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정도의 수학 교육은 필수다. 교양 수준의 공학, 자연과학 관련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능력이므로 인문학적인 소양을 위한 필수 능력이기도 하다. 고등 교육을 토대가 되는 건 물론이다.
정보 능력도 필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보 능력이 없으면 생존하기 어려울 거다. 어떤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가르쳐야 한다. 통계청 사이트도 들어가 보고, 지역 사회의 교통 정보나 날씨 정보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전자) 도서관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아야 한다. 역사, 철학, 문학 등에 관한 지식(정보)를 얻는 데 구색이 갖추어진 도서관이 얼마나 유용한지도 느껴 봐야 한다. 무언가를 해 보고 싶으면 오타쿠가 되어야 하는 현실도 느껴 봐야 고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게 아닌가?
운동 능력을 빼 놓으면 서럽다. 운동 선수가 될 필요는 없지만 건강을 위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취미를 통한 행복 증진을 위해서, 또는 원만한 커뮤니티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상명하복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 현행의 체육부 시스템은 절망적이다.) 운동 능력은 권장해야 한다. 어느 정도로 훈련해야 나에게 적당한지,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강도를 견뎌낼 수 있는지도 운동이라는 것을 해 봐야 가늠할 수 있다.
소통 능력도 빼 놓을 수 없다. 의사 소통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대 간 소통이 없는데 세대 간 갈등을 극복할 수는 없다. 부모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이성 간의 교제를 통해서도 서로 다른 종이 같은 공간을 점유할 때 나타나는 갈등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줄 필요가 있다. 반상회같은 공동체 활동이나 마을 회의에 함께 참석하고 청소년 단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직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사회적 갈등도 다룰 수 있고 토론이든 토의든 보다 나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기본 자질(소양)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런 소양이 없는데 어른이랍시고 선거권이 있다고 해서 시대와 사상을 논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복잡해지고 나뉘게 된다.
집 관리나 가사일도 가르쳐야 한다. 집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필수다. 마당, 계단, 진입로, 주차장, 가로등, 가로수나 정원수 등등 무관심하기 쉽지만 관리해야만 할 것들이 많다. 태풍, 홍수, 화재 등 재해 상황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관리되지 않아서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재해 상황을 대비하는 일도 집을 관리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고, 가사일을 하는 일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습관이 되지 않으면 생활이 복잡해지기 십상이다. 위생을 유지하는 일도 집안 청소같은 소일거리에서부터 시작함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나이가 들어서도 귀찮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가는 소양을 갖추게 길러야 한다. 그 정도를 중등 교육의 목표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중등 교육이 적절하면 인문학적 소양은 지식의 양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고등 교육>
흔히 대학 교육을 고등교육이라고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한국 대학에서는 위에서 말한 중등 교육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된다. 고등 교육 과정에서는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전문적인 지식들을 학습하고 이를 이용하여 보다 더 나은 가치나 기술을 창조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될 것 같다. 오늘날의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는 대학원 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중등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채로 고등 교육을 이수하면 선무당이 된다. 사람 잡을 수 있다. 중등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공부가 자기에게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점에서는 독일의 시스템이 참고할 만해 보인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수행하는 윤리적 판단을 하는 경험(시험)은 (분야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고등 교육 과정에서 포함시키면 좋겠다.
<평생 교육>
중등 교육을 제대로 이수한 후에 고등 교육을 받든 안 받든 모든 사람들이 평생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시민으로서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는 일은 일시적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한 평생을 살다 보면 세상도 변하고 문물도 변하고 자연히 생각하고 학습하는 방식도 변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체 생애 주기에서 이러한 변화를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면서 살 수 있다면 세대 간의 갈등도 상당히 줄어들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삶을 꾸려 나가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동아리 활동 이상의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변화하고 달라지는 세상, 다양한 사람들이 가꾸어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 이런 것들과 나의 삶이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삶을 주체적으로 개성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평생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국제 정세, 산업 발전, 중심 문화의 이동, 문화사, 사회 봉사, 첨단 기술의 이해 등등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인류 번영의 다양한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 중심의 교육의 장을 만들어 평생 교육을 실현하면 좋지 않을까? 대학의 교수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주도하는 강연도 좋지만 더 많은 기회를 마련하여 여러 분야에 종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배우는 교육의 장을 개발하고 매년 혹은 격년으로 일정 정도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마련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