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항간에 '유체이탈 화법'이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정확한 표현이 생긴 후로 대중은 그런 화법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다. '동문서답'과는 결이 조금 다른 특수한 화법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화법'이라기 보다는 '문체'에 가까워 보이지만 아무튼 사람들은 '화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화법'은 이야기 내용을 풀어내는 방식이라서 '문법'과는 다르다. 가끔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난다. 그런 사람도 우리와 동일한 문법을 사용한다. 화술(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화법'은 그런 면에서 '문법'과 다르다.
그런 면에서 '유체이탈 화법'은 있었도 '유체이탈 문법'은 있기 어렵다(이 경우 '-기 어렵다'가 유체이탈 문법인지도... ^^).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문법에도 '유체이탈'적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https://www.youtube.com/watch?v=LXk4cuaRU1M) 아래에 옮긴 재생구간을 들을 때 '이건 뭐지' 싶었다.
36:08
오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36: 09
오늘 분위기는, 오늘 분위기는 많은 분들이 우리가 지금 뭔 소리를 해도 헛소리로 들리셔. 지금 우리가 뭔 소리를 해도 헛소리로 들리는 분들이 내가 봐서는 한 1/3정도 되시고, 그래도 이제 꾸준히 봐 오셨던 분들은 우리의 실없는 개그에도 같이 웃어 주시고. 이 주말 시간을 갖다가 함께 보내고 계신 거여. 의미 없자녀.
36:9초 첫 문장. "오늘 분위기는 많은 분들이 우리가 지금 뭔 소리를 해도 헛소리로 들리셔." 학교에서 배운 문장론 지식을 동원해 보면, 주술 호응이나 주제의 일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들리는' 것은 '소리(말)'고 '분위기'는 '어떠어떠하다' 혹은 '어떠어떠한 분위기이다' 정도의 술부와 호응해야 한다. 아마 아래 정도로 고쳐야 할 것 같다.
ㄱ) 오늘 분위기는 우리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해도 그 소리가 많은 분들에게 헛소리로 들리는 분이기예요.
ㄴ) 오늘은 많은 분들이 우리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해도 (그 소리를) 다 헛소리로 들으시는 분위기예요.
밑줄과 색상을 이용하여 표시한 부분들에 유의해 볼 수 있다. 일일이 다 설명하기가 귀찮기도 하거니와 글도 길어지니까 각설하고, 원래의 문장이 '들리셔'로 끝나는 것만 보자. 원 발화의 이어지는 문장들에서도 '-시-'는 계속 사용된다. 화자(사회자)는 청자(게스트)가 아니라 유튜브 방송 청취자(제삼자?)를 고려하여 '-시-'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주술 호응(소리가 들리다)이나 주제 전개(분위기가 어떠하다)를 동시에 처리하여 문장을 완성하기가 어려웠나 보다. 모양만 보면 '많은 분들이 ~ 들리시다' 형식이라 주체 높임처럼 보이지만 이런 형식은 어색한 피동문 형식이다. 그렇다고 제삼자 높임의 '-시-'는 한국어 문법서 어디를 뒤져도 찾아볼 수 없다. 일전에 상대 높임의 '-시-'의 가능성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용법이다. 일종의 오용으로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용법들이 더 흥미롭다. 아무튼 피동, 주제, 높임의 세 가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즉석에서 문장을 만들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국어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상 언어에서는 이런 식의 문장 구성이 흔하다. 한국어 관련 논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장일 뿐 실제로는 많이 쓰고 있다. 그것이 설령 규범문법적으로는 비문으로 취급받는 문장들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많이 쓰인다. 그리고 이런 정도는 이해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어 문법서에서는 볼 수 없더라도 실제 생활에서 왕왕 사용되고 있는 정도의 문장 구성이라면 관점을 바꿔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이런 '유체이탈 문법'을 아직은 한국어 문법 연구자들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 아닐까?
뭐, 이 정도면 규범 문법적으로는 '유체이탈 문법'이 있을지 모른다고 할 수 있으려나?
말은 잘하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을 왕왕 본다.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바로 규범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문장을 잘 못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왕왕 있다. 그렇게 말 잘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작문 시간에 배운 문법을 위반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래도 맞는 말만 하면서 말을 잘 한다. 심지어는 재미까지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유체이탈 문법'이 완성된다면?? 그런데 구어와 문어는 정보 전달력이 달라서 상황을 생략하고 말만 그대로 옮겨 적으면 책으로 낼 수 없다. 그래도 오늘 이야기한 정도의 유체이탈 문법은 글에서도 허용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