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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AC Aug 14. 2019

최초의 블록체인 기술, 조선왕조실록

 블록체인으로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분산 원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실제 사례로서 가장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현실에서 사용되어 온 기술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왕조의 초대 임금인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주1)  실록은 원래 조선 이전의 고려에서도 편찬되었었으며 그 기원은 중국의 한나라였다. 왕실이나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매일 사초라고 불리는 일지 형태로 기록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책으로 편찬한 것이 실록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중국의 여러 왕조나 고려와는 달리, 기록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세웠다. 우선 사관들의 독립성과 기록의 비밀성이 엄격하게 보장되었다. 최고 권력자인 임금조차 쉽게 열람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물론, 실록의 편찬은 반드시 선대 임금이 죽은 다음에 이루어지도록 하였고, 나중에 실록 편찬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되는 사초는 사관 이외의 그 누구도 볼 수 없다는 특히 임금은 절대 봐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기록자들을 정치적 탄압으로부터 보호하고 기록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였다. 또한 실록 편찬 시에는 궁중 사관들에 의해 기록된 사초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각종 보고서, 재판 기록, 천문과 기상현상에 대한 기록, 민간의 기록 등을 모두 종합하여 임금 재위 기간에 있었던 나라 안의 온갖 사건과 생활상까지 망라한 기록을 포함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 서고에 분산하여 보관함으로써 472년 동안의 방대한 기록이 유실되지 않고 현재까지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모든 역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 특별함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편찬할 때마다 여러 부를 활자로 인쇄한 후 멀리 떨어진 여러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여 조선 시대 두 번의 큰 전쟁과 이후 일제 침략 시기와 625 전쟁을 겪은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성서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종교 경전들이 현재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여러 사본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기록의 유실을 염려하여 처음부터 여러 개의 동일한 사본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분산 보관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조선왕조실록》은 처음부터 블록체인처럼 단 하나의 사실 기록을 위해 여러 개의 동일한 장부를 만든 거의 최초의 성공적인 사례이다.



 처음에는 두 개의 사본을 만들어 각각 서울과 충주에 따로 보관하였으나, 2부의 실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매우 걱정되므로, 1445년(세종 27)에 다시 2부씩 더 등초하여 전주·성주에 사고(史庫)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으며, 이후 역대의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출판하여 춘추관·충주·전주·성주의 4사고에 각 1부씩 보관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의 실록이 모두 소실되는 경험을 한 선조 이후부터는 이마저도 불안하여 5개의 사고로 늘려서 보관하게 되었다.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주2)



 실록의 편찬을 위해 실록청 또는 찬수청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는 여러 개의 방을 두어 당상과 낭청이라는 기록자들을 배치한다. 방의 개수는 임금의 재위 기간이나 기초 자료의 분량에 따라 3개에서 6개로 유동적이다. 각 방에는 비슷한 분량을 배정하는데, 예를 들어 재위 기간이 22년이었던 명종의 경우 1방은 즉위년부터, 2방은 즉위 1년 차부터, 3방은 즉위 2년 차부터 매 두 해 건너 한 해씩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즉, 1방은 0, 3, 6, 9, 12, 15, 18, 21년의 8년, 2방은 1, 4, 7, 10, 13, 16, 19, 22의 8년, 3방은 2, 5, 8, 11, 14, 17, 20의 7년이 배정되었다. 연속된 기간을 담당하지 않고 두 해 건너 한 해씩 묶은 것은 각 방이 연속 3개년을 동시에 병행해서 기록한 후 그다음 작업 단계인 수정을 담당하는 도청에 함께 건네주는 방식을 통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편찬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각 방의 당상과 낭청이 모든 자료를 수집하여 연월일 순으로 1차 원고인 초초(初草)를 작성하여 도청(都廳)에 넘기면, 도청에서는 낭청이 초초를 정정, 추가, 삭제하는 교열 작업을 거쳐 2차 원고인 (中草)를 작성한다. 최고 책임자인 총재관과 도청당상이 중초를 교열하고 문장과 체제를 통일함으로써 마지막 원고인 정초(正草)를 만든다. 세 단계를 거쳐 완성한 정초는 활자로 인쇄하여 사고(史庫)에 봉안하고, 실록의 기본 자료였던 춘추관 시정기와 사관의 사초 및 실록의 초초와 중초, 정초 등은 모두 세초(洗草)하였다. 세초를 하는 이유는 종이를 재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누가 어떤 내용을 작성하였는지에 대한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기껏해야 5 부에 불과하지만 필사 대신 비용이 많이 드는 활자를 이용해 인쇄한 이유는 모든 사본의 내용이 정확하게 일치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동일한 기록을 여러 사본으로 분산 보관한 점, 최종 합의된 내용만 포함한 점, 나중에 변경할 수 없었던 점, 기록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든 점은 모두 블록체인이 핵심적인 특징이자 기술 개발의 목표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인류 최초의 블록체인 또는 블록체인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수천 개의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지만 대부분은 우리 삶의 실질적인 필요와 떨어진 채, 코인 발행 이익(시뇨리지), 채굴과 트랜잭션 처리에 대한 보상, 시세 차익 등 사람들의 탐욕을 채우는 목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우리의 실생활에 어떤 변화와 혜택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멋진 청사진들이 제시되지만 제대로 실현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과연 블록체인이 기존의 인터넷을 뛰어넘어 어떤 가치가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역사상 최초의 성공적인 블록체인 사례인 《조선왕조실록》을 상기하자. 먼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 정치, 사회, 문화, 과학, 경제, 외교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기록까지 다 담을 수 있는 왜곡 되거나 편향되지 않은 역사책, 가칭 《세계실록》을 남겨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멋진 일이 아닌가?




주1) 마지막 두 임금인 고종과 순종 기간에 대한 실록까지 포함하면 조선왕조의 시작에서 끝까지 27대에 걸쳐 모든 임금에 대한 실록이 편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병합한 이후에 일본의 감독하에 편찬됨으로써 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기록이 포함되었다. 따라서 기록의 공정성, 객관성, 비밀성 원칙 등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 규례를 지키지 않은 두 실록을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http://sillok.history.go.kr/intro/intro.do

주2) https://ko.wikipedia.org/wiki/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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