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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AC Aug 27. 2019

블록체인, 오직 사실만을 말하다 Part.1

1. 사실성의 성격


 블록체인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이다.주1)  세계라 함은 누군가의 주관적 견해나 믿음의 여부에 상관없는 객관적 사실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는 사건, 사물 또는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진술에 대한 기록이므로, 블록체인이 객관적 사실들로 구성된다는 말은 블록체인에 기록된 진술이 객관적인 사실을 표현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진술이 실제로 있었는지의 여부, 즉 진술 사건 자체의 사실성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는 'B가 C를 만났다'라고 말했다."라는 진술문은 'A가 ~라고 말했다'라는 진술 사건과 'B가 C를 만났다'라는 진술 내용으로 분리될 수 있는데, 이때 A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B가 C를 만난 것이 무조건 사실이라거나 거꾸로 실제 B가 C를 만난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A가 그렇게 말했다라고 확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세계가 보증하는 사실성은 진술 내용에 대한 것일까, 진술 사건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2. 암호화폐 거래의 사실성


 비트코인 원장에 기록되는 트랜잭션은, A가 B에게 얼마를 지불했다는 A의 진술이다. 일단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나면 A가 무엇이라고 진술했든지 상관없이, 즉 내용의 사실성과 상관없이 진술 사건 자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그렇다면 진술하는 내용의 사실성은 어떨까?


 A가 B에게 비트코인 m개를 지불했다는 진술이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자. 이때 진술 내용 중에서 어떤 것이 부정될 수 있고 어떤 것이 부정될 수 없는 것인가?

 첫째, 그 진술이 A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부정될 수 있는가? A의 서명이 되어 있고 A가 아닌 사람은 그 서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부정될 수 없다. 단, A가 아닌 사람이 A의 신원을 도용하여 그 서명을 몰래 사용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블록체인 세계에서는 A의 신원을 다루는 것이 아니며 A를 나타내는 서명이라는 것만이 중요하지 그게 실제로 누구에 의해 서명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둘째, 그 진술이 지시하는 지불 사건이 부정될 수 있는가? 아예 지불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대상이 B가 아니라 C였다라든지 비트코인 m개가 아니라 n개였다든지 말이다. 비트코인에서 m은 블록체인과 상관없이 따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고 바로 그 진술에 의해서만 실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진술이 이루어진 순간 m이 객관적 실체로 구현되는 것이다. m이 객관적 실체가 되는 것과 동시에 B에게 보내졌다는 내용도 사실이 된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의 설계상 화폐는 오직 두 거래자 사이의 트랜잭션 형식으로만 실체화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cogito,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는 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블록체인 세계는 실체로 간주되는 것 모두가 인간 관념의 도구인 수학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을 뿐이고 이것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들의 의도가 '진술이 사실을 구성'하는 자기규정적 세계이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는 논쟁거리일 수 있는 철학적 주장에 불과할 수 있지만 블록체인 세계에서는 진리가 된다. 현실에서는 A가 B에게 m을 지불했다는 진술만으로는 지불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블록체인에서는 적어도 암호화폐의 지불에 대한 경우에 진술 사건의 사실성과 진술 내용의 사실성은 불가분이다.


 결론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사실성 보증에 있어 블록체인은 진술 내용과 사건에 대한 사실성을 모두 보증할 수 있다. 다만, 블록체인 세계에서 그 진술 주체가 바깥의 현실 세계의 진술 주체와 동일시될 수 없으며 신원 도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원 도용조차도 암호화폐 거래에 관한 진술의 내용과 사건을 부정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블록체인은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진술을 넘어 모든 유형의 진술을 포함하도록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누구를 만났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사건을 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 다양한 진술이 블록체인에 기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를 넘어선 응용에 있어서도 블록체인은 진술 내용과 진술 사건 모두에 대하여 사실성을 보증할 수 있을까?



3. 외부 사건 기록의 사실성


 암호화폐의 지불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진술에 포함된 사건이 블록체인 세계 내부의 자기규정적인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진술 사건과 진술이 지시하는 사건을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증할 수 있다. 하지만 진술하고 있는 바가 블록체인에 의해 자기규정될 수 없는 블록체인 세계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경우에는 다르다. 그런 경우에 블록체인이 보증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진술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즉 진술 사건에 대한 사실성일 뿐이다. 진술 사건에 대한 사실성과 달리 진술이 지시하는 사건, 즉 진술 내용의 사실성은 블록체인만으로는 보증할 수 없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A는 'B가 C를 만났다'라고 말했다"라는 진술은 A에 의해서 'B가 C를 만났다'라는 형식으로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기록이 이루어진 순간 'A가 ~라고 말했다' 진술 사건을 의미하며 그 진술 사건은 사실이 된다. 블록체인에서는 A에 의한 기록 행위 자체가 A에 의한 진술 사건이다. 하지만 A가 그렇게 진술했다는 사실이 'B가 C를 만났다'라는 진술 내용을 사실로 보증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없었어도 A가 그렇게 진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거짓말의 정의이다.


 진술하는 내용이 블록체인 바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물을 지시하는 경우, 진술 사건의 사실성과 진술 내용의 사실성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 점에서 실제 세계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 세계와는 달리 블록체인 세계에서는 진술 내용의 사실성과 상관없이 진술 사건 자체는 절대적인 사실이 된다. 현실에서처럼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현실과 달리 거짓말을 한 사실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A가 진술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함없는 사실로 남게 될 것이다. 반면 실제 세계에서는 A가 어떤 진술을 했다는 명확한 사실조차도 언제든지 그 진술 사건이 없었던 것인 양 또는 다른 내용을 진술한 것인 양 부정될 수 있다. 모든 나라의 정치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우리 세계의 취약점이다. 사석에서 어떤 말을 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 심지어는 공개적인 진술에 대해서도 자신이 한 말이 다르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그렇게 발뺌할 수 없다.


 그러나 진술 사건의 사실성을 보증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조건 환영할만한 일일까? 사람들은 진술 사건이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 그 진술 내용마저 사실로 간주하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뉴스는 그 내용이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술이 언론 매체를 통해 전달된 사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 뉴스의 내용을 믿게 된다. 그 뉴스의 내용을 부정하는 뉴스가 함께 유포되어 이 두 가지 뉴스는 상충하는 내용을 두고 서로 사실로서 인정받기 위해 경쟁하게 되며, 대중들은 어떤 뉴스가 사실을 전하고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한다. 만약 가짜뉴스를 부정하는 뉴스가 유포되지 않는다면 가짜뉴스의 내용은 유일한 사실로서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블록체인 이전의 인터넷을 포함한 현실 세계에서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가 동시에 유통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맥락과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증거들과 뉴스 내용의 타당성을 토대로 둘 중 무엇이 사실을 전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경우에는 합의를 통해 하나의 시점에 오직 하나의 진술만 채택하므로, 거짓 진술이 참된 진술에 선행하여 사실성을 획득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블록체인과 유사한 사실성 보증 방식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영화는 일어날 일을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을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목격으로 바꾼다 해도 영화가 경고하는 메시지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시스템도 결함이 없을 수 없으며 더구나 인간이 개입되어 있는 시스템이라면 애당초 완벽을 기대할 수가 없다.



-> Part. 2 에서 계속 https://brunch.co.kr/@kosac/8


주1) 이전 글, ‘인간이 만든 세계, 블록체인’, https://brunch.co.kr/@kosac/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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