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판 약한 영웅, 슈퍼맨

권력과 힘의 책임을 묻다

by KOSAKA

이번 <슈퍼맨>의 첫 장면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슈퍼히어로가 패배하는 장면이라니.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중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을 것 같던 그가 무너진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와닿았다. 제임스 건은 관습적인 기원 서사를 모두 건너뛰고, “3분 전 첫 패배”라는 문장으로 관객에게 말한다. 이 모든 전조를 스크린 뒤의 자막으로만 전하며, 우리는 더 이상 ‘신화 속 영웅’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대신 방금 눈앞에서 호흡을 불어넣은, 상처 입은 존재를 대면한다.


패배한 슈퍼맨은 곧장 ‘고독의 요새’로 초대된다. 냉혹한 전쟁터에서 회복의 시간을 맞이하는 그에게서, 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았다. 빠르게 깎인 전투의 기억과 묵직한 죄책감 사이를 기어다니는 불안, 그리고 그를 보살피는 크립토라는 반려견의 따스함. 이 작은 위로는 마치 인간이 인간에게 가능한 일상의 친절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곧이어 돌아온 전장에서는, 더 가혹한 상대—렉스 루터가 기다리고 있다.


렉스 루터는 과학적 천재라는 명함 아래 “모든 선택지의 봉쇄”를 실험한다. 슈퍼맨의 표정과 동작을 예측해 정확히 대응하는 “주머니 우주”의 전략 앞에서, 영웅은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초인으로서의 무한한 힘을 소유하고도, 예측된 궤적에 갇혀야 한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우리 자신을 본 것만 같았다. 얼마나 많은 날,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 속에서 우리는 ‘A에서 A’, ‘B에서 B’로만 반응하며 살고 있는가.


<슈퍼맨>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힘이란 무엇인가.” 로이스 레인의 한마디, “네 행동이 미국을 대변할 수도 있다”는 조언은 곧장 내게도 향한다. 나의 말 한마디, 내 선택 하나가 어쩌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반대로 상처를 줄 수 있지 않은가. SNS의 거친 댓글과 언론의 프레임 전쟁 속에 내 존재를 가두며, 우리는 각자의 렉스 루터가 된다.


이 영화가 DC 스튜디오의 운명을 걸고 만든 리부트라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초인의 신화”를 내려놓고 “인간의 책임”을 물었다는 데 있다. 폭발하는 CG와 대규모 전투 장면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화면 너머로 떨리는 눈빛과 피로에 지친 어깨를 오래 바라본다. 이 작은 결핍과 갈등이야말로, <슈퍼맨>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다.


영웅이란, 실패를 감당할 용기를 갖는 사람이다. 힘을 얻는 대신 오히려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더 이상 먼 은하의 빛나는 상징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거울 속에 비친 낯익은 초상일지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샤갈과 토마호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