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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과 토마호크

그리고 빈 좌석의 풍경

by KOSAKA

어제는 아침부터 온 가족이 함께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예술의전당, 마르크 샤갈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일요일 오전이었지만 사람은 많았다. 아이 손을 꼭 잡고 들어가는 젊은 부부들, 중년의 부모를 모시고 온 성인 자녀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들까지. 전시장은 말 그대로 ‘바글바글’했다.

샤갈을 열망하는 모녀의 뒷자태

샤갈의 그림 앞에 서니, 솔직히 말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색은 아름답고 구성은 화려한데,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명확히 잡히지 않았다.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라지만, 대개 그렇듯 내 몫은 항상 모호하고 어설프다. 그래도 그림을 보는 일이 삶의 리듬을 잠시 멈춰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뉴스를 뒤적이며 넘겼을 시간. 그렇게 그림 앞에서 몇 분을 멈춘다.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이 어쩌면 이 전시의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괜한 생각도 들었다.

나에겐 난해한 그림들과 그 그림들을 그린 샤갈옹

전시를 마친 우리는 양재동 아웃백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딸아이의 요청이었다. 평소엔 좀처럼 하지 않는 고급 외식이지만,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였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도착해보니, 여기도 북적였다. 젊은 가족들, 데이트 중인 연인들, 생일을 맞은 친구들. 익숙한 체인 음식점 안에서 나는 오히려 조금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 북적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스테이크는 훌륭했다. 무겁고 커다란 뼈가 있는 접시를 중심으로 가족의 대화가 오갔다. 딸은 신촌으로 데이트를 가기 위해 식사를 마치자마자 먼저 일어났다. 요즘 딸은 식당 리뷰 캠페인에 선정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어딘가에서 식사를 하고 글을 쓴다. 본인의 말로는 ‘신종 효도’란다. 실제로 몇 달간 후기 마케팅을 통해 월 50만 원가량을 벌었다고 했다. 자기가 밥을 먹고 돈을 버는 것, 그리고 나중엔 가족을 위한 디저트라도 사 올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에 딸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토마호크 스테이크의 황홀한 모습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가 꼭 전통적 일터에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타이핑을 하고, 누군가는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소득을 올리고, 누군가는 말 한마디, 사진 한 장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디지털 세대에게 ‘글로소득’이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식사 후, 우리는 매제의 집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매제는 주말임에도 회사의 호출로 다시 출근 중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던 창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노트북을 켜고 집중하는 젊은이들, 아이 손을 잡고 간식거리를 나누는 가족들, 그리고 우리처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부부들.


그 공간은 일종의 교차점 같았다. 출근과 퇴근, 일과 쉼, 독서와 SNS, 소음과 집중, 젊음과 중년이 모호하게 뒤섞이는 장소. 누구도 시선을 뺏지 않고,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그럼에도 묘하게 각자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곳. 나는 이런 곳에서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 좋다. 조용히 앉아 생각하고, 타인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내 일상을 되돌아보는 시간.


저녁 무렵이 되어 신촌 형제갈비에 모두 모였다. 매제 부부, 우리 부부, 그리고 혼자 계시는 어머니까지. 어머니는 요즘 다니시는 동네 모 기관에서 진행하는 교육과정에서 얼마전 챗GPT 강연을 들으셨단다. 연세가 많으심에도 새 기술을 익히고자 하는 열정은 늘 놀랍다. 어쩌면 나보다도 트렌드에 민감한 분인지도 모르겠다.


식사 자리에서는 자연스레 건강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들어 부쩍 줄어든 나의 체중, 어머니가 가끔 앓는 무릎 통증, 집사람의 어깨 결림, 그리고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는 '중년의 피로'.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흐른다. 어느새 우리는 부모를 걱정하던 아이에서, 아이에게 걱정을 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식당을 나서며 문득 밖을 둘러보니, 신촌의 거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가게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예술의전당과 양재의 아웃백이 사람들로 들끓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신촌의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주말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림 끝에 돌아가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 우리는 다양한 얼굴의 도시를 보았다. 문화와 예술이 모인 공간, 소비와 여유가 흐르는 공간, 디지털 세대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그리고 조금은 외면받은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살짝 졸았다. 눈을 감고 잠시 쉬는 사이, 하루가 천천히 정리됐다. 딸과 함께 시작했던 아침, 도시의 얼굴들을 마주하며 지나온 낮, 가족과 함께 웃고 먹으며 끝낸 저녁.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특별한 감정은 있었다.


딸아, 후기 효도 고맙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아프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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