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 Endurance

버티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깊어진다

by KOSAKA

어릴 적엔 ‘버티는 사람’이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욕망이든, 분노든, 눈물이든 터뜨리는 사람이 정직하고, 솔직한 감정은 옳은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믿음이 단단한 오해였음을 안다. 성숙이란 종종 '터뜨리지 않는 힘'에서 비롯된다.


중년은 눈에 띄지 않는 내구성의 시기다. 반짝이는 시작도, 극적인 결말도 없다. 그저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해가 지고, 다음 날이 밝는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버틴다.


인내란 커다란 미덕으로 칭송되곤 하지만, 실은 아주 소소하고 자잘한 결정의 연속이다. 대답하지 않는 문자에 다시 답장을 보낼까 고민하다 멈추는 것.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받았을 때 심호흡 한 번으로 넘기는 것.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맞받아치지 않는 것. 그 모든 순간이 '참는다'는 말 대신 ‘견딘다’는 단어로 채워진다.


젊은 날의 인내는 ‘참으면 좋은 날이 온다’는 기대와 손잡고 있었다. 버티면 보상이 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중년의 인내는 다르다. 보상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도 버틴다. 오히려 보상이 없기에 더 단단하다. 남들이 모르는 무게를 혼자 감당하며, 오늘 하루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나는 요즘 '인내'를 ‘버틴 시간만큼 나를 보듬는 힘’으로 느낀다. 단단해진다는 건 아마도 속이 비워져 간다는 뜻일 것이다. 흥분도 덜하고, 분노도 덜하고, 조급함도 덜한 채로, 삶의 무게를 몸에 맞게 조정하는 일. 어릴 땐 안간힘으로 버티던 일이, 이제는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지나간다. 달라진 건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인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일이다. 고요히 들끓는 마음을 들여다보되, 거기서 빠져나올 출구를 알고 있는 것. 때로는 버티는 것이 도망치는 것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일임을 안다. 그리고 때로는, 버티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해답임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제 ‘견딘다’는 말을 더 소중히 여긴다. 누군가 내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묻는다면, "그럭저럭 견디며 살고 있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말에는 체념도, 무기력도 없다. 오히려 한 인간이 수많은 포기와 선택 끝에 다다른 문장이다.


결국 인생은 얼마나 잘 견디는가의 싸움이 아닐까. 불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불행에 휩쓸리지 않는 방식은 배울 수 있다. 아프지 않게 사는 법은 없지만, 아픔을 지나 사는 법은 익힐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인내’라고 부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그런 하루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큰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어디엔가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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