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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바료타로 3부작

명실상부 일본의 국민작가

by KOSAKA

시바료타로(1923~1996) 작가를 알게 된지도 10년이 넘는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중장편만 80여편, 단편/에세이/기행문이 약 50여편이니 아직 30%나 읽었을까. 요즘은 책장 공간도 모자란 데다 노안이 와서 전자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다.


그의 책들을 읽으며 얻은 느낌은, 일본사와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의 작품들은 필독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소설가를 넘어, 일본인의 역사 인식과 자의식을 새롭게 정립한 ‘국민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본명은 후쿠다 사다유키로, 오사카에서 태어나 교토 제국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뒤 기자 생활을 거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일본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정밀하게 복원하면서도,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해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역사적 디테일을 철저히 고증하는 동시에, 인물의 내면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여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특히 그는 거대한 시대 변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행동하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아, 변화를 만들어내는 개인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의 방대한 작품 중에서도 『坂の上の雲』, 『竜馬がゆく』, 『国取り物語』는 ‘시바 료타로 3대 걸작’으로 꼽힌다. 이 세 작품은 각각 메이지 일본의 근대화, 막말기의 혁신 정신, 전국시대의 권력 다툼이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공통적으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결단하고 움직이는지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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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읽었던 시바료타로의 작품들

『坂の上の雲』 – 근대 일본의 희망과 그림자

『坂の上の雲』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연재된 장편 역사소설로, 메이지 시대 일본의 군인 아키야마 형제와 시인 마사오카 시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시바 료타로는 이 작품에서 일본이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꿈을 꾸던 시기의 열정과 불안을 동시에 그렸다. 제목 속 ‘언덕 위의 구름’은 당시 일본인들이 동경했던 근대화의 이상향을 상징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전쟁과 정치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세대가 품었던 국가적 이상과 개인적 야망을 촘촘히 엮는다. 러일전쟁과 같은 대사건이 배경이지만,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아키야마 형제의 군인으로서의 결단과 고뇌, 그리고 마사오카 시키의 문학적 열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언덕 위의 구름’을 향해 나아간다. 시바는 이들의 삶을 통해 근대 일본의 가능성과, 동시에 제국주의로 향하게 되는 위험한 궤적을 암시했다.


『竜馬がゆく』 – 자유와 변혁을 향한 걸음
『竜馬がゆく』는 막말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소설이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연재되었으며, 료마가 어떻게 구시대의 막부 체제에 맞서 새로운 일본의 비전을 그려 나갔는지를 박진감 있게 묘사한다.


시바 료타로는 료마를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시대의 불확실성과 혼란 속에서 끝없이 배우고 실천하는 인물로 그린다. 그가 구상한 ‘해군 연합’과 ‘무역을 통한 부국강병’은 당대에는 혁신적이었으며, 일본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竜馬がゆく』는 단순한 전기소설이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리더십과 네트워크의 힘을 이야기한다. 독자는 료마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그가 품었던 자유와 개혁의 이상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国取り物語』 – 권력과 인간 욕망의 서사시
『国取り物語』는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권력 장악의 드라마다. 미노의 영주 사이토 도산과 그를 이어받은 오다 노부나가 등, 패권을 향해 나아가는 무장들의 냉혹한 정치술과 야심을 그린다. 시바 료타로는 이 작품에서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며, 무너지는지를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다른 두 작품이 비교적 ‘이상’을 강조했다면, 『国取り物語』는 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다. 사카노우에노쿠모의 이상향이나 료마가이쿠의 혁신 정신과 달리, 여기서는 힘을 얻기 위한 계산, 동맹과 배신, 피로 얼룩진 전쟁의 현실이 중심이다. 그러나 시바는 이러한 권력의 비극성 속에서도 인간다움의 흔적을 찾아낸다. 권력투쟁의 와중에도 서로를 인정하고, 때로는 용서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의 무대 뒤에서 숨 쉬는 생생한 인간 군상을 드러낸다.


시바 료타로는 철저한 역사 연구와 소설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일본인의 역사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과거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역사 속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오늘날의 독자와 대화하게 만들었다. 『坂の上の雲』에서는 근대화의 빛과 그림자를, 『竜馬がゆく』에서는 변혁의 에너지를, 『国取り物語』에서는 권력의 냉혹함을 그렸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깊고, 사건의 흐름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동시에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독자 스스로 역사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옛 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인간다움을 성찰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단순히 일본의 국민 작가가 아니라, 시대와 지역을 넘어 읽히는 세계적 작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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